글 하나를 겨우 마무리 짓고 하루쯤 지나 다시 그 글을 읽어본다. 기대도 실망도 없이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고 문장을 손본다. 한 시간쯤 문장 여기저기에 박음질을 하다가 가끔은 끔찍하게도 ‘재능’이란 단어와 맞닥뜨린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내 글에서는 재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럴 땐 내가 그다지 감정 폭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나쁜 감정 쪽으로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저 깊은 자괴감의 구덩이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감정에 최대한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를 다시 ‘기대도 실망도 없는’ 상태로 끌어올릴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의 '이상의 궁전'도 좌절이 바로 코 앞까지 닥쳐 왔을 때 내가 자주 떠올리는 이야기 중 하나다.
존 버거의 <랑데부>에서 읽은 이야기였다.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은 1836년에 태어나 1924년에 죽은 실존 인물이다. 평범한 우체부였던 그이지만 그가 평생에 걸쳐 건축한 건물은 나라에 의해 보호받는 역사적 유물이 되었다. 건축도, 예술도 배운 적 없던 가난한 농부 아들 슈발이 세운 이 위대하고 섬세한 궁전의 이름은 바로 ‘이상의 궁전.’ 슈발은 궁전을 직접 짓기 전까진 그저 꿈속에서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나는 꿈속에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궁전을 지었다. 소박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진정성을 동원하여 궁전을 세웠다. - 정원, 작은 동굴, 탑, 성, 박물관 조상 등. 너무 아름답고 그림 같아서 상상의 그림은 내 마음속에 적어도 10년도 넘게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슈발은 발부리에 무언가가 걸리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가, 그것이 희한하게 생긴 돌이였음을 알아챘다. 다음 날 그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돌들을 또 발견했다. 그는 그 돌들을 보며 감탄했고, 이젠 자진해서 더 많은 돌을 찾아 나섰다. 그날 이후로 그는 기나긴 여정 속으로 돌입한다. 꿈속에서 상상으로만 짓던 궁전을 고향 땅 프랑스 오트리브에 짓는 일.
그는 우편을 배달하러 다니는 길목 곳곳을 샅샅이 뒤져 돌을 발견하곤 그곳에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았다. 일을 마치면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 외바퀴 수레로 돌무더기를 날라오는 노동이 반복됐다. 가까우면 4,5킬로미터를 되돌아갔고, 때로는 10킬로미터를 되돌아간 적도 있었다. 새벽 2, 3시가 될 때까지 슈발은 이 일을 계속했다. 돌무더기가 궁전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3년이었다.
슈발은 궁전에 관해 말할 때 결코 “감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에 호소하”지 않았다. “엄청난 물리적인 노동을 강조”할 뿐이었다. 그에게 궁전을 짓는 과정은 ‘시련과 고난’의 과정이었다. ‘이상의 궁전’은 한 사람의 상상력과, 돌, 그리고 9만 3천 시간을 들인 고된 노동의 결과물이었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슈발은 "나의 계급 또한 에너지와 천재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살다가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매일마다 돌을 찾고 돌을 모으고 돌을 쌓았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하고 또 노동했다. 아래와 같이
"밤이 다가오는 저녁이면, 다른 사람들 모두가 휴식하고 있는데 나는 내 궁전에서 일한다. 내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분이라도 짬이 나면 내 직업이 허락해 주는 여가 시간에 나는 무수한 밤 동안 이 궁전을 지었다. 나는 내 나름의 기념비를 조각했다."
슈발에겐 ‘재능의 발현이 먼저가 아니라, 시련과 고난이 먼저였다.’ 나는 이 문장을 내 처지에 맞게 바꿔봤다. 나에게도 ‘재능의 발현이 먼저가 아니라, 쓰고 또 쓰는 과정이 먼저이다.’ 우체부 슈발이 33년의 시간 동안 돌을 모았듯, 나도 내게 있는 시간 동안 문장을 쓰면 된다는 것. 재능에 관한 생각으로 괴로워질 때만 우선은 이 생각에만 집중하자고 되뇌었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읽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재능, 인내, 엄청난 노력은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