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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Nov 07. 2019

#19 독서모임

소설 연재

독서 모임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서점으로 들어섰다. 영주 포함 아홉 명의 사람들이 원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리더 우식을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한 사람씩 짧게 ‘아무 말 토크’를 나눴다. 누군가가 머리를 잘랐다든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든지, 친구랑 싸워서 기분이 별로라든지, 나이가 드니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러움을 느낀다든지 등의 말을 하자, 또 다른 누군가가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지금도 보기 딱 좋은데 왜 다이어트를 하냐고, 그 친구가 잘못한 것 같다고, 젊은 사람도 서러움은 느끼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말들로 말을 한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민준은 오늘도 집에 일찍 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람들이 둘러앉은 원 밖에 의자를 끌어와 슬그머니 앉았다. 그러자 누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조금씩 움직여 민준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줬다. 손사래를 치는 민준을 향해 사람들이 더 강력하게 손사래를 치자 민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겨 함께 원이 되었다. 오늘 독서모임에서 토론할 책은 <일하지 않을 권리>였다.


“이제 토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손 들고 말씀하면 되고요. 분위기 봐서 슬쩍 치고 들어 와도 된다는 거 다 아시죠. 하지만 아무리 말이 하고 싶어도 다른 분이 말을 할 땐 끊지 말아 주시고요.” 


우식의 말 끝에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기다렸다. 토론엔 강요가 없었다. 말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듣기만 하고 싶으면 들으면 된다. 짧은 정적 끝에 친구와 싸워 기분이 별로라던 20대 중반 여자가 손을 들고 말을 했다.


“미래엔 지금보다 더 일자리가 감소할 거라고 하잖아요. 인공지능이다 자동화다 플랫폼 기업이다 해서요. 그래서 너무 걱정됐어요.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고. 그러니 정부가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방법이야 자기들이 생각해야죠. 그런데 여기 25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여자의 말에 사람들이 책을 펴는 것을 보고 민준도 매대에서 책을 찾아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여자는 25페이지에 있는 문장을 읽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회가 일자리를 계속 더 많이 만들어야 할 만큼 일 자체가 그렇게 대단한가? 생산성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모두가 평생 일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저번에 여기에서 어떤 분이 책은 도끼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이 문장을 읽고 정말 머리에 도끼를 쾅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러게, 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이 난리지? 우리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걸 걱정할 게 아니라 먹고살지 못할 걸 걱정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국민들이 먹고 살 방법을 모색하는 거잖아? 이렇게 생각해보게 된 거예요.”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민준도 곧 이 정적에 익숙해졌다. 짧은 정적 후에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40대 초반 남자가 말했다.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 라는 게 기정 사실화된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빨리 이 둘을 분리하지 못하겠던데요. 일을 하지 않는데 먹고살 수 있다? 책을 읽으니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걸 알겠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한테 이 책은 좀 너무 이상적이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이 도움이 됐던 건 일에 대한 제 관점을 이해시켜 준 점이었습니다. 내가 왜 일을 윤리적으로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왜 일을 안 하면 게으른 사람,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됐는지, 왜 더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그렇게 노력해 왔던 건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다들 허망하지 않았어요?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건 우리가 가진 일에 대한 관점이나 생각이라는 게 과거 누군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뿐이라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그걸 마치 진리인양 떠받들면서 살고 있는 거고요.”


“저도 허망했어요.” 30대 중반 여자가 말했다.

“일을 윤리적 우위에 두고는 일을 하는 사람은 가치 있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된 데에 청교도 도덕률이 있다는 거잖아요. 일에 전념해 구원을 받으라는 청교도 가치가 시간을 타고 흘러 흘러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는 저 같은 무신론자에게까지 전해진 건데. 그 무신론자는 지금 일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살고 있단 말이죠. 그 무신론자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거야. 남편이 일 못 하게 하면 이혼할 거야.’ 하며 미리부터 이를 갈곤 했어요.”


무신론자 여자는 한 템포 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무신론자는 요즘에도 일에 열정을 불어넣기 위해 일에 관한 모든 좋은 수사를 머리에 새기고 또 새겨 넣고 있다는 거예요. 일은 좋은 거야, 일은 열심히 해야 돼,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삶은 정말 끔찍할 거야, 하면서요.”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않나요?” 우식이 말했다.

“나쁜 게 아니라고 말도 못 하게 된 거잖아요. 이 책을 보면요.” 무신론자 여자가 말했다.

“왜 그게 나쁜 거지요?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 나이 드는 게 서럽다던 50대 후반 여자가 물었다.  


사람들은 다 같이 그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민준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대학 교양 시간에 배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떠올렸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시간을 타고 흘러 흘러 무신론자 여자뿐만 아니라 민준에게까지 전해졌다. 민준도 프로테스탄트들처럼 근면하게 일 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다. 그들처럼 일을 소명이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40대 남자가 한 말처럼 누구나 태어나면 마땅히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다.


“여기에요. 73페이지. 제가 읽어볼게요.” 무신론자 여자가 말했다.


노동과정에서 인간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끌어들이고 착취하는 특징을 지닌 소외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노동자가 노동을 하면서 자기를 표현하거나 동일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자기를 일에 완전히 결합시키고 책임 의식을 가지라 요구받는 데 있다.


“78페이지도 같은 내용이더라고요.” 작년까지 교복을 입고 서점에 들르던 대학생이 78페이지를 읽었다.


다른 말로, 노동자를 '회사 인간'으로 변형시킨다. 헤파이토스는 노동자가 헌신적인 마음가짐과 개인적 도의를 느끼게끔 장려하기 위해 설계한 '팀'이나 '가족'같은 조직 내부 용어를 통해 노동자가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다그쳤다. '팀', '가족' 같은 이상은 직장을 경제적 의무보다는 윤리적 의무를 지는 장으로 재규정하여, 노동자를 조직적 목표에 더욱 강하게 옭아맨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대학생은 무신론자 여자를 보며 말했다.


“언니는 회사 인간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회사에 일치시키고 마치 내 일처럼 회사 일을 열심히 하신 거잖아요. 여기 보면 회사가 직원을 회사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팀’이나 ‘가족’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저희 큰 형부가 얼마 전에 팀장이 됐거든요? 그때는 정말 축하해줬는데, 지금은 이 ‘팀’이라는 말이 무서워요. 우리 형부도 회사 인간을 요구받는 건가 싶어서요.”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하고 또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무조건 회사 인간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책도 일을 무조건 나쁘게만 바라보지 않잖아요. 일하는 즐거움, 일을 통한 성장도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하나의 조건이라고 봐요, 전.” 민준은 처음으로 말을 한 영주를 쳐다봤다.


“다만 이 사회가 과도할 정도로 일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이고, 또 일이 우리에게서 너무 많은 걸 빼앗고 있는 게 문제인 거죠. 일을 하다 보면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내가 소진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 긴 시간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력이 없어서 취미 생활 하나를 못 해요. 전 125페이지 이 문장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시간 중 상당 부분을 일하거나, 일하느라 쓴 기력을 회복하거나, 일하기 위해 지출하거나, 일할 곳을 찾고 준비하고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활동에 소모하는 우리는 그중 얼마만큼을 진정 자신을 위해 쓰고 있는지 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결국, 너무 많이 일을 해야만 해서, 일이 삶의 전부가 돼서, 일이 문제인 거죠.”


민준은 영주와 처음 만났던 날 영주가 하루 8시간 근무를 강조하던 걸 떠올렸다. 아마 영주는 이 책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일이 사람을 소진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 일에만 함몰된 삶이 행복할 리 없다는 생각.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식이 말했다.

 

“전 제 일이 재미있어요.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잔 마시며 게임하는 기분도 좋고, 또 서점에 들러 단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는 게 좋아요. 그런데 영주 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오래 일하면 그 일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결국은 지쳐버리더란 말이에요. 집, 회사, 집, 회사. 이렇게 일주일만 살아도 전 정말 죽겠던데.”


“집에 애가 있으면 그런 일상도 무너집니다.” 민준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일 얘기를 하는데 육아 얘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일 때문에 애를 못 볼 지경이에요. 제 아내가 요즘 그렇게 북유럽 꿈을 꿔요. 스웨덴인가, 덴마크에는 라떼파파라 불리는 아빠들이 있다나 봐요. 일찍 퇴근해 육아를 하면서 카페라떼를 마시는지 뭔지. 그런데 저나 아내나 퇴근하면 9시가 넘어요. 장모님이 집에 와 계시는데 저희가 퇴근하면 바로 쓰러져 주무시고요. 여기 참여하는 게 저에게 허락된 유일한 취미 활동입니다. 한 달에 딱 한 번. 사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그럼 적게 일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니에요?”


20대 여자가 분위기를 전환하며 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웃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적게 일하면 좋지. 그러면서 월급도 같아야 하는 게 문제지.”

“대기업이야 줄 수 있다고 보는데, 중소기업이 문제잖아요.”

“알바를 쓰는 자영업자도 문제예요. “

“문제 투성이네.”

“어쨌든 적게 일 한다고 월급을 줄이면 안 되지.”

“안 되죠. 다 오르는 세상에서 월급만 안 오르고 있는데 줄이기까지 하면, 참.”

“윗 놈들 월급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우리네 월급만 이 모양인 게 전 너무 화나요. 사실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건 우리 같은 일개미들 아닌가요?”

“봉기를 해야 하나.”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흐르는 것 같아 우식이 손을 들고 내용을 정리했다.


“어찌 됐건 아직까지는 일이 소득을 분배하는 거의 유일한 주요 기제라는 게 사실인 거고요. 그러니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거죠.”


40대 남자는 요즘은 부동산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제일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이야기가 또 딴 데로 흐를까 봐 그만두었다. 대신, 책 내용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나오게 된 원인이 이겁니다. 이 사회가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일을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거지요. 일을 하는 사람은 소외되고 소진되느라 사람다운 삶을 못 살고, 일을 안 하는 사람은 돈을 못 버니 사람다운 삶을 못 살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일 하는 시간을 줄여서 일을 못 하던 사람들에게도 일감을 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론적으론 가능한 얘기니까요.”


“실제로도 가능할 수 있죠. 그런데 희생을 안 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문제죠.” 무신론자 여자가 손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또, 문제네.” 사람들이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토론 시간이 한 시간쯤 넘어가자 사람들은 피곤했는지 가벼운 잡담을 시작했다. 원래 이런 분위기인지 우식도 제지하지 않고 같이 잡담에 뛰어들었다. 50대 여자가 본인이 젊었을 때는 그저 순응하고 희생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좋아 보인다고 말하자 젊은 사람들은 순응, 희생도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엔 희망이 없어서 그럴 필요조차 못 느끼는 거라며 50대 여자를 놀라게 했다. 정말 그 정도냐며 젊은 사람들을 쳐다보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이 없다는 말이 너무 슬픈 것 같다고 50대 여자는 말했다.


민준은 사람들 목소리를 배경으로 삼으며 서문을 읽어 내려갔다. 일인당 국내총생산이 개인의 행복총량에 미치는 미미한 영향, 생산과 소비에만 치우친 만족스럽지 못한 삶, 일에 대한 개념을 뒤집어 성공보단 삶의 만족을 추구하기 시작한 ‘다운시프트 생활인’ 등의 내용이 개략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다운시프트 생활인이라.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소득 직장을 포기하거나 일 자체를 아예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민준이 다운시프트 생활로도 먹고살 수 있을지 궁금해하던 순간, 마침 자신을 다운시프트 생활인이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나섰다.


“제가 다운시프트 생활을 하고 있어서 이 책에 어마 무시하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목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


“3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 일을 도와주며 소소하게 돈을 벌기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됐는데요. 앞서 일하는 3년 동안 정말 우울했어요. 그렇게 하고 싶던 일을 하는데도 자꾸 마음이 답답해지고, 야근은 끝도 없고, 이러다 미치겠다 싶어서 그냥 그만둬 버렸거든요?  일을 그만두고 하루 다섯 시간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4개월 정도를 보냈는데요. 처음 일주일 동안만 좋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절친이 ‘요즘 뭐해?’하고 물어도 어버버 하면서 제대로 대답을 못하겠는 거예요. 이 책이 좋았던 게 다운시프트 생활이 담고 있는 메시지나 장점만 거론하는 게 아니라 다운시프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을 말해준 거였어요. 아, 나만 그렇게 바보처럼 굴었던 게 아니구나 싶어서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고나 할까. 여기에서 다시금 제 좌우명을 떠올려보게 됐는데요.”


“좌우명이 있어요?” 무신론자 여자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제 좌우명이 ‘일장일단’이에요. 그게 무슨 일이든 모든 일에는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으니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삼은 거고요.”

“그럼 좌우명을 일희일비하지 말자,라고 해도 되겠는데요?” 여자가 짓궂게 장난을 걸었다.

“어! 그래도 되겠네요.” 남자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장난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다운시프트 생활에도 일장일단이 있다는 거예요. 물론 나를 위해 낼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건 좋아요. 하지만, 돈을 못 버니 갑갑함이 느껴지고, 또 어디 여행 한번 가기도 쉽지 않거든요. 사회적 인정도 못 받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다운시프트 생활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여행에 목을 매거나 사회적 인정을 크게 바라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던데요.” 민준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운시프트라는 게 꼭 선택만은 아니에요.” 영주가 손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몸이 아파서이기도 하고, 또 정서 장애를 겪기도 하잖아요. 우울증이나 불안증세를 겪는 직장인들도 많고요. 몸이든 정신이든 아파서 일을 못하는 데도 사회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나약하면 못 써,라고 말해요. 책에서도 나오듯 부모조차 자식에게 언제 일을 시작할 거냐며 닦달하잖아요.”

“일을 바라보는 우리 태도가 맹목적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민준 옆에 앉은 남자가 영주의 말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뭘 그렇게 참으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제 학교 친구 중에는 등교하다가 오토바이에 부딪혀 몸 여기저기가 까져 피가 나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로 온 애도 있었어요. 개근상 받아야 한다면서요. 아파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이런 생각이 회사에 와서도 우리를 꼼짝 못 하게 한 게 아닐까 싶네요. 아파도 꾸역꾸역 회사에 출근하고, 정말 아파서 출근을 못했는데 나조차도 왠지 엄살인 것처럼 느껴지고. 사실, 아프면 쉬어야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링거 투혼, 부상 투혼 이런 말도 참 별로예요.”


“맞아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착취하게 하는 말이죠.” 라테 파파를 꿈꾸는 남자가 대꾸했다.


민준은 사람들이 알려주는 페이지를 따라 읽으며 토론을 좇았다. 지금 민준이 읽고 있는 페이지에서 루시라는 인물은 일을 안 하는 건 참 좋은데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힘이 든다고 말했다. 루시는 여러 번의 한숨 끝에 “직업을 가져서 모두를 실망시키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털어놨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게 될 것 같진 않다는 게 루시의 입장이었다.

 

책에는 변리사로 일을 하다가 바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만다의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민준은 사만다의 말을 천천히 두 번 읽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했다. “처음으로 제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성장한다는 느낌. 일에서 중요한 건 바로 이 느낌이 아닐까 하고 민준은 생각했다.


토론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우식은 유급 노동에서 행복을 찾은 사람은 즐겁게 노동할 수 있고, 유급 노동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사람은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마지막 발언을 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우식의 말에 열렬히 동의했다. 어느덧 시간은 10시 30분에 가까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다 같이 움직이자 10분도 안 돼 정리가 끝났다. 민준 포함 열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서점을 나왔다. 오늘만큼은 이 열 명이 비슷한 여운에 잠겨 잠에 들 것 같았다.

 

영주와 민준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큰길 쪽으로 걸어가는 영주를 지켜보다 민준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앞으로 당분간 민준은 책에서 답을 찾아나갈 것이었다. <일하지 않을 권리>를 다 읽고 나서는 이 책에서 언급됐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을 것이고, 에리히 프롬에 반해 그의 책을 시기별 순서로 다 읽어나갈 것이다. 민준은 흔들리고 갈등하면서도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던 거였다.


(휴남동 서점은 40화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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