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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Oct 21. 2019

#15 블로거에서 작가로

소설 연재

영주는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서점에 도착했다. 북 토크 질문지를 아직도 절반가량 채우지 못했다. 한 문장이든 긴 글이든 글을 쓰는 일은 버겁기만 했다. 기획서를 제외한 글은 써 본 적 없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서점을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짧은 글을 올리고, 이삼일에 한 번은 책을 소개하거나 책을 읽은 감상을 긴 글에 싣는다. 쓸 때마다 어려웠다. 그래도 써야 했기에 글이 나올 때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다 보면 한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갑자기 눈 앞이 아득해졌다. 마음이 앞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지금 쓰려던 글에 관해 아무것도 모를 때가 있었다. 머릿속엔 분명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생각이 언어가 되지 못한 적도 많았다.


영주는 숫자 18을 바라보며 이번은 어떤 경우인지 생각해봤다. 나는 이 작가와 이 작가가 쓴 책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생각이 정리가 안 된 것뿐인가. 영주는 노트북에 손을 올리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렵게 쓴 문장 끝에 겨우 물음표를 넣고 다시 한번 읽어봤다. 작가는 이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할까. 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한 건가.


'18. 글을 읽거나 쓸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뭔가요. 문장인가요?'


영주는 한 출판사 대표를 통해 현승우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대표가 요즘 출판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이라며 글 몇 개를 공유해줬다. 첫 글을 제외하고는 반박문에 재반박문에 재재반박문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사건은 건조한 주제를 다루는 블로그 치고 1만 명이라는 많은 이웃을 두고 있는 한 블로거에서부터 시작된 듯 보였다. 블로그에는 일상을 담은 글 하나 없이 오로지 문장에 관한 글만 가득했다. 첫 글은 4년 전에 쓰였고 제목은 '한국어의 음운 체계 1'이었다. 블로그 카테고리는 '한국어 문법 시작과 끝/이것이 나쁜 문장/이것이 좋은 문장/문장 고쳐 드립니다' 네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사건은 바로 이 카테고리 '이것이 나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신문이나 책에서 찾은 문장을 예로 놓고 이 문장이 왜 잘못됐는지 설명해주는 글이 수백 개 쌓여가던 즈음, 블로거는 한 번역서를 읽게 된 모양이었다. 블로그에는 그 번역서에서 찾은 잘못된 문장 십여 개가 끌려 나와 있었고, 잘못된 문장 밑에는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객관적인 문장으로 뭐가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근거가 제시돼 있었다. 이 글을 번역서를 출판한 출판사 대표가 본 것이 화근이었다. 출판사 대표는 출판사 블로그에 블로거 글을 반박하는 글을 실었는데, 그만 그 글을 블로거가 본 것도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출판사 대표는 블로거의 지적이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한 행위"라며 블로거를 자극했는데, 여기에서 말한 '무지'란 한국어 문법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출판계에 대한 '무지'였다는 것이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블로거는 반박문에 대한 반박문을 통해 "출판계가 어려운 상황인 것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독자가 책에서 엉터리 문장을 읽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출판사 대표는 과연 어느 책이 "엉터리 문장 하나 없이 완벽한 문장으로만 되어 있"느냐며 그런 책이 있으면 "나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러자 블로거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이 나쁜 문장’ 카테고리에 글 하나를 더 추가했다.

 

글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소소한 잘못"에서부터 "주술 관계가 맞지 않는 큰 잘못", 여기에다가 "딱히 문법적으로는 잘못된 것이 없지만 무슨 말이지 이해가 안 가는" 문장까지 이십 여개가 넘는 문장이 불려 나와 있었다. 번역서에서 아무 페이지나 펴 그 페이지에서부터 다섯 페이지를 첨삭한 결과라고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블로거는 절판된 책 가운데 하나를 똑같은 방식으로 첨삭해 올렸는데 그 글에 불려 나온 문장은 여섯 개가 다였고, 모두 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소소한 잘못"에 해당했다. 이 상황에 대해 블로거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문장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이기는 하나 과연 완벽한 문장이 무엇일지 모르겠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엉터리인 문장이 가득한 책을 무심히 읽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과연 어느 책이 완벽한 문장으로만 되어 있겠느냐며 알려달라 하셨지요. 유감이지만,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세상 그 어떤 책도 완벽한 문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덩달아 완벽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떳떳한 태도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통한 두 사람의 혈전은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활동하는 책 덕후들과 출판계 사람들 사이에서 핫이슈가 됐다. 판세는 블로거 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었다. 출판사 대표 글에는 야유가 담긴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글을 올릴수록 야유는 늘어갔다. 그럴수록 출판사 대표는 더 약이 오르는 듯, 블로거에게 어서 글을 내리라고 협박하거나, '명예 훼손'이니 '고소'같은 단어를 숙고 없이 사용했다.


이에 블로거는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면 달게 받겠다며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사건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대표가 손을 들었다. “반성 없이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일을 후회”한다며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글을 통해서였다. 관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끝이 난 경기에 허탈해하면서도 각각의 방법으로 대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블로거의 손을 들어 올려 주었다. 블로거의 깔끔한 승리였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멈췄다면 기억에 남을 해프닝쯤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는 원래가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 이왕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패를 인정했으니 한 번 더 화끈하게 고개를 숙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어쩌면 대표는 꽤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대표는 그들의 싸움터였던 블로그에서 블로거에게 정중히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저희 책 교정, 교열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4개월 후에 번역서는 새로운 문장으로 새롭게 소개되었고, 그 번역서는 나오자마자 1쇄가 다 팔려 한 달만에 3쇄를 찍게 되었다.


출판계 사람들은 '홍보 방법치곤 꽤 치열했다'라고 이 사건을 평했다. 영주에게 링크를 공유해준 1인 출판사 대표는 "머리로는 블로거 말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으로는 대표를 응원했었”다며 번역서 겉표지를 찍어 영주에게 보내주었다.


그날부터 영주는 가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현승우를 입력해 넣었다. 그에 관한 정보는 느린 속도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래 봤자 구체적인 건 하나도 없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사람들은 그가 '공대 출신'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그가 블로그에 이룩해 놓은 지식 더미가 독학의 결과라는 점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승우는 반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 '우리가 잘 모르는 문장 이야기'란 제목으로 신문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영주는 2주에 한 번 글로 승우를 만났다.


승우의 글은 점잖으면서도 신랄한 면이 있었다. 신랄함. 영주는 작가들의 신랄함을 좋아했다. 영주가 외국 작가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한국 작가들은 처음엔 신랄하게 굴다가도 결국은 소심한 중도의 길을 선택한다면, 외국 작가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과감하게 시종일관 신랄했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향해 ‘어이, 어리석은 사람!’ 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작가는 아무래도 한국 작가보다는 외국 작가들이었다.


남을 의식하는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터였다. 영주 역시 어쩔 수 없이 남을 의식하는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나와 다른 결, 다른 감성, 다른 당당함을 지닌 작가들의 글에 매력을 느꼈다. 하기야 뭐, 영주는 글로 만난 사람들에겐 언제나 마음이 활짝 열리는 독자였다. 그 사람이 책 속에서 살고 있다면야 영주는 그들의 모순, 결핍, 독기, 광기, 폭력성 모두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승우의 문체 또한 마음에 들었다. 과장되거나 허세스럽지 않았다. 일부러 건조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 같지만 원래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 같기도 했다. 심지어 이 자기 피알 시대에 승우는 자기 자신에 관해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를 신비스럽게 했다. 승우는 본인이 가진 콘텐츠로만, 그러니까 글로만 승부를 보는 사람이었다. 아니, 본인은 그다지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건 영주 혼자 승우를 이미지화한 것에 불과했다.


이미 말했다시피, 영주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북 토크를 진행한다. 작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작가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직접 듣고 싶다는 사심으로. 그러니 승우가 책을 냈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영주는 승우의 책이 나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고 있던 터라 책이 출간되자마자 출판사에 연락해 북 토크 가능 여부를 물었다. 출판사는 몇 시간 만에 하겠다는 연락을 줬다. 그것도, 작가의 첫 북토크랬다.


민준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며 영주는 노트북에 숫자 19를 적어 넣었다. 노트북에 손목을 올려놓은 채 허공에다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마침내 빠른 속도로 문장 하나를 완성해냈다. 영주가 승우에게 가장 묻고 싶은 건 바로 이거였다.   


‘19. 작가님과 작가님의 글은 얼마나 닮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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