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에 관한 단상을 짧은 글에 담아보려합니다.
[혼자의 말들] 내 속마음은 나만 알고 싶을 때가 있어
영화 <벌새>에서 한문 선생님 영지는 칠판에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이라 적고는 은희에게 묻는다. "은희는 아는 사람이 몇 명이에요? 얼굴을 아는 사람들 말이에요." 은희는 처음엔 50명이라고 대답했다가 옆에 앉은 친구 지숙과 의견을 나누고는 400명으로 답을 바꾼다. 영지는 그런 은희에게 또 묻는다. "그러면 그 안에서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정도 돼요?" 은희는 대답하지 못한다. 영지는 그제야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의 뜻풀이를 해준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영지는 특유의 고요하고 단단한 얼굴로 돌아서서 소녀들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여러 분이 아는 사람 중에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영화의 거의 매 장면이 머릿속에 남는 경험은 흔치 않아서,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 후 대본집도 읽었다. 대본집을 읽으면서도 역시 다음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여러분 아는 사람들 중,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영화와 대본집 대사가 조금 다르다.) 나도 은희처럼 잘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내 속마음을 알 것 같은 사람들 얼굴을 떠올려봤다. 그 사람하고 그 사람하고, 또 그 사람 정도일까.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 속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사람과 있으면 애써 더 말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또 딱 그만큼 민망하기도 하다. 나만 알고 싶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내 마음을 나 혼자 감당하며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 이런 시간을 더 보내고 싶기도 하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내가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나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