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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Sep 24. 2023

뉴 디자인싱킹이 필요할 때

디자인싱킹이 낡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은 오랫동안 혁신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로 사랑받았다. 이름 그대로 디자이너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모방해 만든 방법론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도 널리 쓰인다. 나는 디자인싱킹을 고안한 IDEO의 오랜 팬이다. 특히 어린이를 위해 만든 오랄비 칫솔 디자인을 좋아한다. 본래 칫솔 디자인은 아이용과 어른용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IDEO는 아이들이 어른용 칫솔을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해 보니 자주 미끄러지거나 떨어뜨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날렵했던 칫솔 몸통을 고무 소재를 활용해 더 뚱뚱하게 디자인했다. 이 디자인은 현재 어린이 칫솔의 모범이 되었다. 디자인싱킹 중 공감(emphathize) 단계가 가장 잘 드러난 작업물이 아닐까 한다. 나는 실제로 디자이너 시절 디자인싱킹 방법론을 도입해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은 적이 많다. 그런데 몇 해전부터 점점 디자인싱킹이 낡아간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실무의 복잡한 문제들을 디자인싱킹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벌집 프로세스순차적으로 흘러가는 벌집 프로세스

디자인싱킹은 "문제 해결"과 "혁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접근법이다. 사용자 중심에서 항상 사고를 하며, 관찰자가 그들의 필요와 문제를 깊이 공감하는데서 시작한다. 앞서 말한 아이들을 위한 오랄비 칫솔처럼 혁신의 주체가 외부의 창의적인 존재가 아닌 내부에서 관찰된 사용자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있다. 다음 이미지는 디자인싱킹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이다(나는 이 이미지를 벌집이라고 부른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디자인싱킹의 큰 흐름

공감(Empathize): 사용자 입장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단계. 사용자 인터뷰, 실제 제품 사용 모습 관찰, 설문조사가 여기 해당한다. 사용자의 실제 필요와 문제점을 진단한다.

정의(Define):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를 정의한다.

발상(Ideate):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단계.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가능한 많은 해결책을 고안한다.

프로토타입(Prototype):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단계. 처음부터 양산 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소 비용으로 시장에 반응을 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 제작을 목표로 한다.

테스트(Test): 프로토타입을 사용자에게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는 단계. 사용자의 실시간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아이디어를 개선해 나간다.


이 흐름대로 따라가면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착시가 생긴다. 그런데 실제는 어떨까. 현업에서 만나는 문제와 프로세스는 선형적이지 않고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지금부터 과거 실무에서 디자인싱킹 프로세스를 따라가며 들었던 비판적인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흐름을 순서대로 따라가지 않더라도 직관성에 따라 시간을 절약하며 똑같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과 자원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에는 공감이나 발상 과정이 빠져도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있었다. 테스트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꼭 순차적으로 다 지킬 필요가 없다.

아이데이션 시간이 발상 단계에 몰려 있어 오히려 창의성에 제한을 받는다. 더불어 그룹이 모여서 발상을 하는 경우 서로가 서로에게 편향되기 쉽다.

앞 단계에서 문제를 잘 못 정의해 버리면 한 사이클이 돌 때까지 모두가 인식을 못할 때가 있다. 중간에 누군가 잘못된 문제정의를 인지해도 그룹 내 비판이 무서워 쉽게 침묵하게 된다.

디자인싱킹은 '혁신'을 강조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실무에서 선택받는 해결책들은 창의적인 것보다 앞 선 타사 성공 사례나 관습에 기반한 것들이 많다. 디자인싱킹 자체가 디지털이 아닌 오래전 오프라인 문제 해결에서 시작된 만큼, 문제 해결보다 혁신이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 너무 혁신성을 강조하는 것은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 때 특히 UX에서는 피해야 한다.

최근에는 문제 공감 단계에서부터 디자이너 외 다양한 직군들이 함께 모여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PM/PO, 프런트/백엔드 개발자, 마케터등이 함께 공감하기에는 디자인싱킹 속 개념과 사고 체계가 너무 디자인향으로 구성되어 있다(이름부터 디자인 싱킹이지 않은가). 이러한 사고 흐름 속에서 일을 진행하겠다는 것 자체에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개발자에게 '디자인싱킹'을 같이 해보자고 하는 것 자체에 민감한 부분이 있다.



벌집(포스트잇)에 갇히기 쉬운 구조

포스트잇은 디자인싱킹 방법론의 상징이다. 디자인싱킹 발상 단계에서 주로 활용되며 과거에 나도 많이 활용한 방법이다.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개인적으로 이 방법론을 활용하며 좋지 않았던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unsplash

질보다 양에 집중한다.

디자인싱킹의 아이디어 발산은 생각을 짜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0분, 30분 같이 시간을 정해두고 시작하는데, 이는 자연스레 아이디어의 질보다 양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 얕은 아이디어들만 양산되는 경향이 생기며,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어도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그룹 아이데이션은 서로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

한 공간에 5~6명이 모여 아이데이션을 하다 보니 서로의 생각에 영향을 받게 되며 개인의 개성이 옅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이데이션 중에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룰 같은 게 있을 수 있지만, 실무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서로 곁눈질로 다른 사람의 포스트잇을 보고 있다. 순수하게 개개인이 모여 아이데이션을 한다기보다 그룹 활동이기 때문에, 너무 나쁜 아이디어를 내기 싫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끝나고 포스트잇을 모아보면 생각보다 아이디어가 다양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참여 인원의 위계가 동등하지 않다.

그룹 아이데이션시 직급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룹 내 목소리가 크고 의견이 센 사람들 중심으로 여론이 모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심리적인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권위 순응 :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권위 있는 사람의 의견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 내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게 된다.

그룹싱크 : 그룹 내 공감대가 형성되면 개인이 그룹의 의견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사회적 증거 : 다수 사람들이 하나의 의견을 지지하면 왠지 그 의견이 정답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위험 회피 : 그룹싱크와 연결되는 심리 기제인데, 그룹과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내가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다. 목소리가 센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려는 것은 곧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포스트잇과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은 생각의 발산과 그루핑에 여전히 효과적인 툴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다 같이 모여 포스트잇을 붙인다는 행위 자체에 오래된 미신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따라서 한계와 단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는 디자인싱킹의 안 좋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디자인싱킹을 활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안 좋았던 사례

디자인싱킹이 가지는 사용자 중심 사고방식은 여전히 모던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서비스나 프로덕트를 만드는 많은 사람들이 공급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mazon.com

P&G사가 만든 스위퍼(Swiffer)라는 청소 도구는 먼지떨이와 물걸레 대신 일회용 패드를 막대에 붙여 만든 청소 도구이다. 주부들이 먼지떨이나 물걸레를 사용할 때 깨끗이 유지하거나 보관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에 착안한 제품이다. 스위퍼의 디자인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에어비앤비 역시 초기 단계에서 예약률이 낮은 것을 개선하기 위해 썸네일에 쓰일 사진 품질을 향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전문 사진작가들을 고용해 숙소 사진을 찍게 하여 예약률을 크게 향상했다. 두 가지는 디자인싱킹 혹은 디자인적 사고방식으로 근사하게 문제를 해결한 사례다. 이 외에도 디자인싱킹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성공 사례를 낳았고 신화화에 일조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디자인싱킹이 실패한 사례들은 많이 거론되지 않는 듯하다. 지금부터 온오프라인의 대표적인 디자인싱킹 실패 사례 두 가지를 통해 입체적인 시각을 갖도록 해보자.


플레이펌프(PlayPump): 지속 가능성에 대한 충분치 않은 고려

플레이펌프는 아이들이 회전목마를 돌리면 그 동력으로 물이 펌핑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나온 초기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많은 언론에서 플레이펌프의 혁신성을 강조했고, 디자인이 제3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윤리적 역할도 강조됐다. 그런데 얼마 안 가 플레이펌프가 가진 중요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많은 마을에 설치된 플레이펌프들은 빠르게 철거됐고, 다시 수동 펌프가 설치됐다.

@ecosistemaurbano

플레이펌프에는 몇 가지 큰 문제가 존재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을 강제로 놀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이야 유희로 아이들이 참여했겠지만, 빈도가 잦아지면 곧 노동이 된다.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놀게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이들은 이내 플레이펌프에 관심을 잃었고 빈자리를 어른들이 메꾸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인간 본성에 대해 잘 못 접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이 방법만으로 물에 대한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후 나온 자료에 따르면 인당 하루 적정 권장 물 소비는 15리터 정도였다. 플레이펌프로 마을주민 2,500명에게 이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하루 27시간 동안 쉬지 않고 회전해야 가능했다. 플레이펌프만으로 식수 충당은 불가능했고, 작은 마을 하나의 목마름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생존을 위해 많은 어른들의 지속적인 수동펌프질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플레이펌프가 수동 펌프보다 약 3배가량 비쌌다. 수리를 할 수 있는 인력도 너무 부족했다. 실제로 물을 둘러싼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플레이펌프는 너무 단순하게 이 문제를 접근했다.


애플의 3D 터치: 찾아서 사용할 이유의 부재

아이폰 6S에 처음 등장한 3D 터치 기능은 애플의 디자인 싱킹 실패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이 기술은 꾹 누르면 링크 프리뷰를 보거나 단축키 같은 보조 기능에 주로 활용되었다. 이로 인해 사용자들은 부가적인 기술로 인식했고,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기술이 되었다. 충분히 사용자들에게 그 존재를 어필하고 또, 일상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특정 iPhone 모델에서만 활용이 가능했고 일부에서는 지원하지 않았다. 일관적인 사용자 경험을 지향하는 애플의 철학과 반대되는 모양새였다. 3D 터치는 이후 햅틱 터치의 등장으로 대체되었다.


두 가지 사례는 디자인싱킹 방법으로 문제의 복잡성이나 맥락을 완전히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을 위한 도전을 마냥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이러한 도전이 경직된다면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물 정화 필터인 'LifeStraw' 같은 성공적인 제품도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뉴 디자인싱킹에 추가하고 싶은 항목들

디자인싱킹은 확실히 더 확장될 여지가 있다. 만약 디자인싱킹 프로세스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면, 다음 사항들도 한 번쯤 고려해 보면 좋겠다.


지속 가능성

플레이펌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디자인은 지속 가능함을 담보로 해야 빛난다. 그런데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사용자'와 '혁신' 외부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정치/사회적인 측면과 트렌드 모두 고려해야 한다. 사용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물론 좋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순간 벌집에 갇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술에 대한 고려

기술 트렌드는 그 자체로 문제 해결의 메시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를 인지해 프로세스에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높은 대우를 받는 추세다.


다양성을 인지

평균이라는 단어가 낡아가는 것을 느낀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기술들을 이제 주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 역시 접근성에 대한 규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고, 이 부분만을 담당하는 관리자가 생기는 추세다. 제작 측면에서 다양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좋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실무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스템적 사고

하나의 문제가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개별 요소와 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와 혁신에만 골몰하다 보면 내가 속한 사회나 조직의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A라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B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성된다. 나도 이 부분이 많이 부족한 편인데, 처음부터 시스템적 사고를 할 필요를 많이 느낀다.


다른 직군들과의 협업

많은 스타트업들이 크로스 펑셔널 조직을 지향한다. 기능적으로 구분되는 팀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데 모여 일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서로의 도메인에 관심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고, 때에 따라서는 상대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배울 필요도 있다. 디자인싱킹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 그 주변 환경도 함께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의 등장은 정보 접근성을 높였고, SNS는 전 세계 사람들 간의 연결성을 강화했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의 생활 방식, 사고방식, 그리고 사회 구조에 긴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에 없던 더 복잡한 문제들을 만들어 낸다. 디자인싱킹은 분명 매력적인 프로세스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단일한 생각 도구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생성 AI 기술들과 세분화된 디지털 도구들을 활용해 각자 자기만의 디자인싱킹을 찾아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뉴 디자인싱킹이 필요할 때' 끝

*해당 글은 GPT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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