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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Mar 20. 2021

[시네마 톡] 저스티스 리그-스나이더 컷

워너의 한계를 여실히 증명한 DC유니버스의 마지막 팬서비스

마침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이하 스나이더 컷)가 공개됐다. 워너는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7천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너 입장에서는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할지라도 많은 팬들이 원하는 블록버스터를 자사 스트리밍 플랫폼인 HBO Max 오리지널로 공개한다면 격렬히 전개되는 스트리밍 전쟁터에서 충분한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잭 스나이더 입장에서는 영화를 거의 다 찍어놓고 경영진과의 의견 차이와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해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하차했는데 미완으로 남겨진 자신의 구상을 수많은 팬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2017년에 극장에서 개봉한 작품은 마지막에 긴급 투입된 조스 웨던이 재촬영까지 감행하며 상당히 많은 부분을 바꿔버렸는데, 결과적으로 흥행에서 참패하고 워너가 DC유니버스 전략을 포기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잭 스나이더는 자신의 본래의 비전을 공개하여 쓰러진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잭 스나이더는 이 작업을 마무리하며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다. 극장이 아닌 스트리밍 개봉이라는 점은 잭 스나이더가 러닝타임의 제약 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 결과 영화는 무려 4시간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로 세상에 공개되었다(길다고 소문난 아이리시맨에 비래 부려 40분이나 더 길다).     

이번 작품은 워너의 개입 없이 잭 스나이더의 의도대로만 진행되었다. 잭 스나이더는 마치 한풀이를 하듯 자신의 구상을 아낌없이 펼쳐냈다. 그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가볍고 중구난방이던 캐릭터들은 각자의 서사를 통해 구축된 무게감으로 단단하게 영화를 지탱하였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궤를 달리하던 무리한 개그들이 사라지며 영화의 톤도 일관성을 갖게 되었다. 영화 제작 도중 딸을 잃은 잭 스나이더의 개인적 서사와 영화 내내 흐르는 상실감이라는 정서가 시너지를 내며 영화의 텍스트를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빌런이던 스테판 울프를 어이없이 퇴장시킨 전작과 달리 더 압도적인 빌런인 다크사이드가 지구로 올 수 있음을 암시하며 마블처럼 후속작을 기대하게 하는 기반까지 마련해놓았다. 에필로그를 통해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였다. 이 정도면 어벤져스 만큼은 아니지만 통합 히어로 영화로서 충분히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나이더 컷은 왜 과거 극장 개봉판이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DC유니버스 확장의 야망을 품고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과거 저스티스 리그는 DC유니버스의 종말을 고하는 작품으로 전락했다. 이는 유니버스 영화의 거시적 전략없이 마블을 쫓아가기에만 급급하던 경영진의 오판 탓이 가장 크다. DC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기획자가 부재한 상태에서 영화 감독에 불과한 잭 스나이더에게만 의존해 무작정 영화를 만들려 한 것부터가 문제이다. 유니버스의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지만 그렇더라도 그에게 프로젝트를 맡겼으면 그를 끝까지 믿었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를 거의 다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다른 프렌차이즈에서 활동했던 감독을 긴급 수혈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그 덕에 영화는 지루함을 덜고 유사 마블 영화처럼 만들어지긴 했으나 본연의 색깔을 잃고 표류하며 폭망해 버린 것이다. 재촬영 때문에 돈은 돈대로 쓰고 영화는 완전히 망가트린 최악의 선택이었다. DC의 세계관을 충분히 이해하는 기획자가 잭 스나이더와 계속해서 소통하며 회사의 비전과 감독의 비전을 차근차근 조율해가면서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결국 DC유니버스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것이다.     



이미 DC유니버스 전략을 포기한 상태에서 다시 세상에 나온 저스티스 리그는 DC유니버스 확장의 욕망을 가득 머금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잭 스나이더는 이 작품이 흥행을 하더라도 후속편 제작은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이미 2017년 저스티스 리그가 끝나며 배트맨 역의 벤 애플렉은 DC와 결별했으며, 슈퍼맨 역의 헨리 카빌도 DC를 떠날 가능성이 크다. 사이보그 역의 레이 피셔는 얼마전 조스 웨던 감독과 워너의 경영진을 모두 강하게 비판하며 앞으로 워너의 영화에서 보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왜 이 작품이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일까?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라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압도적인 IP를 전략의 부재로 망가트린 워너의 패착,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워너의 한계를 여실히 증명한 DC유니버스의 마지막 팬서비스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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