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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Dec 16. 2020

 [시네마 톡] 페르소나

여러개의 페르소나, 그러나 같은 뿌리의 페르소나

데뷔 10년이 훌쩍 넘은 이젠 중견 가수이자 배우 아이유. 한때 오빠가 좋은걸이라고 외치며 삼촌들의 로리타 컴플렉스를 잔뜩 자극하던 이 소녀는 직접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녀가 아무것도 모를것 같았던 귀여운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아이유는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진 뮤지션이자 배우이다. 이런 그녀의 다양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자 기획된 것이 단편영화 모음집 "페르소나"이다. 제목에서도 그런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아이유는 4편의 극에서 분명히 다른 연기를 한다. 다른 톤으로 다른 느낌으로... 아이유는 이를 생각보다 너무 잘 소화해냈다. 그러나, 영화는 아이유가 가진 서로 다른 “가면”을 전시하긴했지만 뿌리가 같은 "가면"을 내놓으며 실망감을 안겨준다. 영화는 마지막 작품 "밤을 걷다"를 제외하고 모두 아이유가 가진 소녀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아이유가 가진 진부하고 오래된 이미지인 소녀의 이미지가 “페르소나”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내가 가장 큰 실망을 느낀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첫 번째 , "love set"는 너무 단순하게 만든 작품이다. 중년 남성을 사이에 두고 그의 딸과 그의 여자친구가 테니스 대결을 하는 내용이다. 이게 끝이다.  배두나 같은 대단한 배우를 데리고 테니스하며 알수없는 신음만을 내뱉는 두 여성을 전시하는데 그친다. 얼핏 보면 아빠를 사랑하는 소녀의 일렉트라 컴플렉스를 큰 틀로 만들어진것 같은데 다시보면 아이유가 아빠의 여자친구인 배두나를 좋아한다는 느낌도 준다. 만일 이러한 오해를 감독이 의도한거라면 너무 지나치게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뭘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한다. 짧은 시간 반전을 만들어내고 싶었다면 조금 더 치밀할 수는 없었을까? 다소 안이하게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두 번째, "썩지않게 아주 오래"는 아이유가 직접 쓴 "잼잼"이라는 곡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잼잼”에는 이 제목과 동일한 가사가 등장한다. 영화의 분위기는 곡의 분위기처럼 섹시하고 신비스럽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꿈꾸는 어린 여인이 결혼을 앞둔 아저씨를 파혼에 몰고 금새 싫증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흥미를 이끌지만 영화는 이미지의 과잉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잼잼”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반도 전달하지 못한다.


세 번째, “키스가 죄”는 아이유를 아예 고등학생으로 그리고 있다. 성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좀 까진 여고생이다. 세 편의 극 중 분위기는 가장 밝고 발랄하다. 그런데 역시 뭘 얘기하고 싶은건지 알 수가 없다. 친구를 괴롭힌 아빠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인데 그게 다다. 학생 아이유의 발랄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무슨 생각으로 만든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네 번째, “밤을 걷다”는 4편의 극 중 가장 수작이다. 자살한 연인을 꿈속에서 재회하는 내용인데 극의 분위기도 연기도 훌륭하다. 옴니버스 영화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짧은 시간안에 충분히 표현해 냈다는 생각이다.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안일했던게 아닌가 한다. 네 명의 훌륭한 감독이 아이유의 고정된 이미지를 너무 쉽게 활용했다. 아이유는 진화하고 있지만 이들의 머릿속에 그녀는 아직도 소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여성 감독들까지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최악의 평점을 주고 싶지는 않다. 음악에서는 이미 다양한 색깔을 내보인 아이유가 연기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을 내보이려는 시도 자체를 본 것 만으로도 일단은 만족이다. 다음에는 아예 아이유 소속사의 계열사인 카카오M이 기획해서 아이유의 곡을 모티브로 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시나리오 작업에 아이유가 직접 참여하게 해서 만들면 이 작품보다 훨씬 그럴듯한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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