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y Sep 22. 2018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보통 그렇다는 것들의 폭력

장강명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몇 번의 특종상을 받을 정도로 기자로써도 제법 잘 나갔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최근에는 스스로 제도권의 등단, 공채 시스템을 비판한 <당선, 합격, 계급>이라는 르포를 출간했다

사실 본인이 이러한 시스템의 승자 중 한 명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다른 점이 많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부분들을 잘 언급해줘서 그가 나오는 팟캐스트 <이게 뭐라고>, 방송 <행복 난민>등을 재밌게 시청했다. 작가인데 오히려 방송으로 먼저 알게 되었고 대학생 때 <5년 만의 신혼여행>, 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참 한국이 정말 싫었던 적이 있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다"라고 했으며 ,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것이 피로했다.

가득한 미세먼지, 너무 많이 해야 하는 해야만 하는 것들, 끝없는 비교와 그 비교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 신경 써야만 하는 남의 시선 결혼은 언제 해야 하고, 취업은 어디로 해야 하며, 심지어 여행 가서 안 먹고 오면 안 되는 것들까지

남들이 다하는데 나는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안에 시달리거나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유토피아는 없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뭔가 대안을 경험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에 유학, 워홀, 해외취업을 알아보았던 적도 있었고 현재도 마찬가지로 고민 중이다. 

그러던 중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기자 출신답게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데 실제 호주 유학을 경험한 이들의 인터뷰, <호주 워킹홀리데이 완전정복 Q&A 그리고 그에 관한 독설뿐만 아니라>와 같은 책뿐만 아니라 "엄혹한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을 피해 호주로 왔다"와 같은 문구는 실제 교민 카페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20-30대 여성들 일상어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 네이트 판을 자주 읽어보기도 했다고 :)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라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한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덕일 사람 꽤 되지 않나?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연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를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아.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내 가장 친한 친구도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있다. 비교적 추위를 잘 견디는 나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친구는 추위에 무던히도 고통스러워했다. 

겨울이 시작할 때쯤 친구는 한 글로벌 여행 예약 대행사의 협력업체에 합격했다고 했고 

그 말을 하곤 일주일도 안되어 떠났다.


지명과 두 번째 이별을 결심할 때 고민을 많이 했지. 내가 얘랑 헤어진 다음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고, 아마 후회할 거야. 내가 만난 남자들 중 지명이가 제일 괜찮은 애였는데, 하고 그런데 걔랑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아도 나중에 결국 후회할 거야. 그때 내가 호주로 떠나야 했는데, 하고 나라는 인간은 뭔가를 이루겠다는 뚜렷한 목표 같은 건 없으니까, 아마 어떻게 살건 간에 내가 살아보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영영 알 수 없겠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지를


나는 지명이랑 같이 있어서 좋은 점, 안 좋은 점들을 생각했어. 좋은 점은 사랑받는다는 느낌,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두 가지. 어떤 애들한테는 그런 게 굉장히 중요하지. 하지만 난 '사랑의 감정'에 흠뻑 젖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시를 좋아해 본 적도 없고 사랑의 도주 같은 걸 낭만적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 그리고 경제적 안정이 제일 중요했다면 아마 리키랑 결혼했을 테지.

지명이랑 같이 있어서 안 좋은 점은 , 일단 걔랑 있으면 내가 너무 슬퍼질 거 같더라. 두 번째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가 없다는 거. 전업주부가 아니라 내가 직장이 있어도 경제적으로 독립하긴 어려울 거 같더라고, 전에 한 번은 지명이한테 "너는 왜 매일 퇴근이 늦냐, 평생 그렇게 야근을 해야 하는 거냐?"하고 따지니까 걔가 이렇게 대답하더라고.

"다들 이렇게 살아. 다른 회사도 그래. 요즘 저녁 시간 전에 퇴근하는 사람이 학교 선생 말고 누가 있냐? 너도 취직하면 알 거야"

"호주에선 안 그래."

내가 반박했지.

"호주에서도 그럴걸, 너도 호주에서 제대로 된 사무직 일은 해 본 적 없잖아. 호주에서도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 , 의사 같은 사람은 정신없이 바쁠걸?"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기자나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 의사 같은 '진짜 직업'들이 있고, 그 아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직업들이 있다는 거지. 내가 직장에 다니더라도 그게 토플 문제지나 조선 업체 정보지를 만드는 일이라면 지명이는 아마 그걸 '진짜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냥 살림하는 여자인 거지. 그런 건 싫어


두 달이 지난 뒤에 호주로 돌아가야 할 때, 나는 그냥 호주에서 살 거라고 하니까 지명이가 이해를 못하겠다며 설명을 해 달래. 사실은 나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문제인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하다가 파블로 이야기를 해줬어.


"만약 남극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파블로를 잡아다 헬리콥터에 태워서 하와이에 내려다 줬다면 파블로는 그래도 행복했을까?"

내가 물었어

"어쨌든 하와이에 갔잖아."

지명이 고집했지.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소설의 내용이고, 또 소설에서는 어떤 동화를 인용했지만 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힘으로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면 언젠가 겪게 될지도 모를 추락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한번 아래에서 위로 올라와본 경험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덜 아프게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아닌 누군가 의지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라면, 평생 그 사람에 의존하고 눈밖에 나지 않을까 전전 긍긍할 수밖에, 그 사람이 평생을 함께할 파트너라면 더더욱.


번외로 지금의 날씨를 너무나도 잘 표현해준 문장

나는 몸으로 맞닿는 듯한 문장으로 날씨를 표현한 글이 좋다.


"난 초여름이 정말 좋아. 햇빛이 쨍쨍하고,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하지만 공기는 아직 후덥지근하지는 않고, 그런 날에는 해가 지면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밖으로 나오게 돼. 하늘거리는 민소매 옷을 입고, 뭔가 모험 거리를 찾아서, 젊은 남자한테 나는 암내랑 가로수 아래서 올라오는 비릿한 물 냄새 같은 게 섞여서 대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지. 모두가 야릇한 흥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살짝만 불꽃이 튀어도 불이 붙고 섹스를 하게 돼. 그런데 호주는 1년 내내 그런 날씨 아닌가?"



출처: 

http://movingcastle.tistory.com/26

 [see the unseen]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 퇴사생의 도쿄(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