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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E Jul 15. 2021

부모님의 사랑 배우기 -1-

김치를 어떻게 먹지?


할머니는 집에선 가사일만 하셨고, 나머지 모든 일은 할아버지가 하셨다. 공과금이며, 은행 보험 각종 외부 일은 할아버지 혼자서 하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런 쪽의 일들은 신경도 쓰지 않으셨고, 고운 할머니 세대의 여자일을 하셨다.




내가 아홉 살 때쯤 되었을까

할머니는 나에게 밥 차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상을 펴고, 숟가락을 놓고, 밥과 반찬을 꺼내서 상에 올려서 먹는, 간단한 것들이었다.

할머니께서 새벽부터 농사일을 나가시니, 어린 내가 밥 못 먹고 굶을까 봐 굶지 마라고 알려주신 것이다.

새벽마다 밥과 반찬, 내가 좋아하는 계란후라이를 해놓으시고 나가시면 일어나서 배고픈 내가 밥상을 차려먹는, 어린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가스불은 아직 못 켜서 계란후라이는 할머니께서 해주셨는데, 소금을 툭 던지셔서 항상 할머니의 계란후라이에는 지뢰밭처럼 소금덩어리가 한 번씩 씹혀서 계란 후라이는 그런 건 줄 알았다.

상 차리는 게 익숙해지자, 할머니는 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밥을 하는 법과, 가스레인지를 켜고 계란후라이 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계란후라이에 들어간 소금 지뢰의 비밀을 알게 된 나는, 소금을 넣지 않고 계란의 맛으로만 후라이를 먹었다.

소금 간을 하지 않아도 계란은 맛있으니까.
항상 밥을 먹을 때면 할머니는 "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건강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난 어릴 때부터 매운 것을 못 먹어서 김치는 먹지 못했다. 배추김치는 물론 씻어진 김치도 못 먹어서 마지못해 백김치만 겨우 먹었었다.

할머니의 성화에 마지못해 김치를 한입 물면, 매운맛에 고통스러웠다.

그러자 할머니는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별의별 김치를 다 주셨다. 씻어서 참기름에 무친 묵은지 , 고춧가루 조금만 넣은 겉절이, 씻은 깍두기 , 갓김치 등등..
내가 이건 먹나, 저건 안 먹나 하면서 나의 취향을 살피신 것 같다. 그때쯤부터 갓김치의 맛을 알았고, 한참 그것만 먹었다. 매운 것도 참고 매일 갓김치에 계란 프라이 해서 밥을 먹었으니 말이다.
할머니의 여러 시도 덕에 나는 김치를 먹을 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난 묵은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취향은 변하질 않는다.



오늘의 한 줄 - 나의 취향은 그날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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