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은 아기 코끼리 덤보의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 테이프를 들려주셨다. 난 그 이야기를 정말 좋아해서, 같은 테이프를 여러 번 돌려서 들려주셨다. 어느샌가 난 그 이야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서 테이프보다 먼저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놀란 부모님은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사다 주셨고, 그 책들을 순수하게 좋아하여 매일매일 다음 이야기를 읽기 위해 살아왔던 어린이였다.
그때가 나의 책 사랑의 시작 이었다. 동화 오디오 테이프는 내가 상상할수있는 키워드를 만들어 주어 상상력이 점점 커져갔다. 조부모님과 살 때도 나를 위해 동네분들의 오래된 책들을 얻어다 주셨다. 그중 전래동화 전집을 가장 자주 읽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는 나의 삶의 작은 방향성을 제시해 준 책이었다.
늙은 노모를 혼자 모시고 사는 효자의 이야기였는데,
평소엔 부지런하고 진중한 어른스러운 그는 어머니 앞에선 돌변했는데, 유독 어머니 앞에서는 아이처럼 재롱을 부리며 애교를 부렸다. 그걸 본 동네 사람들은 아들이 미쳤나보다 라며 욕을 하였더란다. 그러자 그가 동네 사람들에게 하는 말
어머니가 점점 노쇠해 가시는데, 제가 계속 어린애로 있어야지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는 것을 잊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때 이 말이 머릿속에 콕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그때야 나도 어린이였으니 아 이러면 할머니가 오래 사시겠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나이 들어가니 저 말을 뼈저리게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어른스러워지니 할머니가 슬퍼하시는 것이다.
"우리 애기가 벌써 커버렸으니 나도 늙었구나."
난 아기 때부터 할머니와 살았으니, 할머니는 나의 성장에 당신의 세월을 체감한 것이다. 난 그때 다시 한번 되새겼다.
할머니 앞에선 어른이 되지 말기로.
항상 어린애처럼 할머니한테 애교를 부리고, 할머니께 용돈은 쥐어드리지만, 같이 다니다가 붕어빵 하나사달라고 조르는 그런 손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