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감 Jun 22. 2024

면접에 대한 고찰 (2)

사실에 직감 더하기




"스쿨버스에 골프공이 몇 개나 들어갈까요?" 이따금씩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기업에서 이렇게 특이한 질문을 했다더라, 라는 식으로 화제가 되곤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기업에서 채용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면 대부분 '지원자들에게 무슨 질문을 하느냐'라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아마 구직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 위함일 것이고, 면접관 입장에서는 지원자들로부터 알고자 하는 바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득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직 시장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 대다수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질문에 어떻게/어떤 태도로서 대답하는지가, 거시적으로 보면 면접에서의 결과가 입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질문은 곧 정보로 이어진다


결국 면접이라는 것은 '지원자가 우리 회사의 인재상과 조직 환경에 알맞은 사람인가'를 판단하고자 하는 절차 중에 하나다. 회사 입장에서는 지원자에 대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서 '정보'라 함은, 지원자가 단순히 말로 대답하는 내용 자체도 그렇겠지만, 질문을 듣거나 그에 대답할 때 비치는 전반적인 모습―눈빛, 말투, 말의 빠르기, 어조, 손짓, 앉아 있는 자세, 목소리, 순간적인 표정 변화 등―이 모두 포함된다. 누군가는 스쿨버스에 골프공이 몇 개가 들어가는지 제대로 된 대답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언어적인 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지원자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UCLA 앨버트 머레이비언 교수는 첫인상에 대한 평가는 93%가 비언어적인 요소, 나머지 7%는 언어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었다. 심리학에서는 앞선 정보가 이후 정보보다 인지 수준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고 한다. 우리 모두가 감정의 동물이고, 첫인상을 판단하는 척도가 그러하다면, 지원자든 면접관이든 비언어적인 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질문의 목적과 정보의 범주를 모두 고려했을 때, 면접에서의 좋은 질문이라는 건 '지원자로부터 발현되는 언어적/비언어적인 요소를 효과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일종의 경로이자 방법'인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지원자는 회사가 본인을 더 좋은 존재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에 본인의 경력을 부풀려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아예 없던 것을 꾸며서 말하기도 한다. 늘 거짓된 정보와 마주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 면접관의 입장에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또, 비언어적인 요소를 어떻게 파악해 볼 수 있을까?




알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역산하기


채용 프로세스를 직접 운영하고 또 절차마다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지원자로부터 양질의 정보를 얻기에 유효하다고 생각했던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1. "이전 회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특히 영업 쪽에서 유효했던 질문이었다. '우리 회사의 영업 담당자가, 회사가 서비스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 외부 관계자들에게 설명할 때 어떤 모습일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이어진 결과였다. 실제로 이 질문을 몇 번 건네 봤을 때, 제품의 장점 등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했던 지원자는 실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그렇게 좋은 인상을 남겨 최종 합격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2. "입사하게 된다면 지금 면접관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같이 일할 사람이 될 텐데, 그런 관점에서 '본인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미리 얘기하고 싶은 것을 말씀해 주세요."

자기객관화 수준이 얼마나 되고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가고 싶어 하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싶어서 준비한 질문이었다. 언제 한번 면접 자리에서 돌발적으로 건넸는데, 면접이 끝난 직후에 면접관으로 참석했던 직원분이 "아까 마지막에 했던 질문 되게 좋았다"는 말을 해 왔다. 정답이라고 할 만한 답변은 역시나 없다.


3.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대게 목표를 물으면 커리어를 잘 쌓아서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는 답변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사람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런 대답이 있고 나면 "업무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목표로 하고 있는 건 뭔가요?"하고 묻곤 했다. 한 개발자는 기술 면접 내내 풀이 죽어 있다가 이 질문을 듣고 돌연 반짝이는 눈을 했다. "게임 개발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 이후로 한참 동안 게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면접관들은 앞으로의 방향성이 지나치게 다르다며 만장일치로 불합격 의견을 내었다.


4. "갑자기 시간이 났을 때 주로 뭘 하시나요?"

일상적이기는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잘 다룬다'는 가정이 깔린 질문이었다. 개인적인 관심사를 언급하며 경직된 분위기를 푸는 효과도 있었다. 예를 들어 주짓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주짓수의 매력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라든가 '주짓수와 관련해서 다음 목표로 잡고 있는 게 있나요?'라는 질문을 이어서 하곤 했다. 여러 데이터를 쌓아 보니, 이 질문의 방향은 특정 활동에 대한 것보다도 '이 사람은 어떠한 상황을 재밌다고 느끼는가'로 귀결되었다.


5. "직전 회사에서 가깝게 지낸 3명은 누구였나요? 그들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것 같은가요?"

어떤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지도 중요하지만 (2)의 사례와 같이 자기 스스로를 어떤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타인의 평가는 어떠한지를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객관성을 띤 답변이 전달될 확률이 높았으나 이 질문을 들은 지원자들은 순간적으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레퍼런스 체크'가 언급되어서 그런 듯했고, 보다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훨씬 더 부드러운 어조로, 오해를 사지 않을 법한 태도로 질문을 건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6. "~한 상황에서는 ~하게 느꼈을 수도/~가 문제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또, 어떻게 행동하셨나요?"

지원자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겪었을 법한 상황을 제시했을 때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예를 들면 "혼자서 그 일을 다 하려면 분명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셨나요?" 정도의 질문이었다. 지원자는 면접관이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한다고 여겨 잠시 무장해제됨과 동시에 거짓을 말하기에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직관에 의심 더하기


비언어적인 요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정보는 소위 '직관', '느낌'으로 연결되곤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라는 것이고, 언제나 100% 일 수는 없으므로 직관적으로 느끼는 부분에 대해 정말 그러한지 계속해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마다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을 메모해 두고 그 지점을 확인해 보기 위해 추가 질문을 이어가는 방법이 가장 유효했다


1. '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이전 회사에서 갈등 상황이 없었는지 물었을 때 한 지원자는 모두와 잘 지냈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었으나 답변하는 지원자의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경직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알아보면 좋겠다 싶어 '자신의 단점이 무어라 생각하는지', '업무 볼 때 어떤 상황이 제일 힘든지', '같이 일하기 힘든 유형은 어떤지'에 대해 물었다. 지원자는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을 떠올렸을 때 인상을 순간적으로 찡그렸고,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을 때 생각보다 수위가 높은 갈등 상황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2. '이상하게 방어적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태도로 정석적인 답변만 했던 지원자였다. 즉 언어적인 정보로서는 전혀 결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지나치게 방어적이다는 느낌을 받았고,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결함은 없는지'에 초점을 맞춘 상태로 추가 질문을 이어갔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눠 본 뒤에 모두가 입을 맞춰 내린 결론은 '그냥 무던한 사람'이었다. 이 정도로 잔잔한 성향이라면 함께 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훗날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그날 들었던 소감을 이야기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너무 긴장해서 경직해 있었다" 였다. 해당 지원자는 입사 이후에 누구보다 무던하게,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 하고 있다.


3. '진짜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면접이었다. 영업 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를 해 왔던 지원자였다. 표정 관리, 목소리, 자세, 말의 빠르기, 대답하는 내용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모범적이었기에 오히려 '우리 회사에 맞는 사람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면접을 보는 내내 그 모호한 지점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나 결국 끝까지 해소되지 않았고 내 경험치/역량 부족이라고 생각해 임원분들께 판단을 맡기게 되었다. 직감도 경험이 부족하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


같은 질문을 한다 해서, 그를 통해 엇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해서 모두가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질문은 그저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한 일종의 도구일 뿐이다. 같은 망치라 하더라도 못을 박을 때가 있고 못을 뽑아낼 때가 있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도구를 활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강압적인 태도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사람은 방어적인 답변을 듣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은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글의 초반에 언급했듯이 면접의 목표는 '지원자로부터 발현되는 언어적/비언어적인 요소를 정보화함으로써 최대한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때 면접관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해 내는가'도 문제겠지만, '지원자가 얼마나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그보다 더 앞선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다든가, 의도적으로 웃음을 유발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면접에 대한 고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