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감 Jul 06. 2024

나에게 당신을 알려 주세요

'직무설명회'라 이름을 지어 보겠습니다




한 동안 꽤 많은 시간을 채용 업무 전반을 운영하고, 개선하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썼다. 그 과정에서 지독한 생각 하나가 나를 줄곧 괴롭혔다. 한 공간에서 각자가 다른 관점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결론을 내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면접 과정에 있어서 몰입도가 낮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이후로부터 불편한 감정은 시작됐다. 고민은 이어졌고, 나는 이 위화감이 '직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끝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직군도 있었지만 특히 개발 쪽 지원자들을 대할 일이 많았다. 사실 취업을 하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개발 공부를 약간은 해 봤고 기회가 있다면 개발 지식을 배워서 혼자 업무에 적용시켜 보기도 했다. 그 덕에 스스로 개발 쪽에 이해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고, 다시 돌이켜 보니 욕심을 부린 탓에 이도저도 아닌 어느 분야의 호소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력서 검토와 면접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조직을 위해서라도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한 동안 묵혀 놓았던 학구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원료가 되었다.




직무설명회라 해 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대상은 현재 조직 내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들이었다. 나는 앞서 언급한 이 작은 프로젝트의 취지, 진행 과정 그리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들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게 중에는 편한 사이인 사람도, 아직 서먹한 사람도 있었다. 각 부서에서 한창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기에 내 요청으로 인한 '1시간'이 업무 시간을 뺏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전 준비에 철저히 임했다. 미리 구성해 놓은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1. 타 부서들과 협업을 한다고 했을 때, 통상적인 업무 구조/흐름은 어떠한가요?
2. 해당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고충은 무엇인가요? 또는, 타 부서가 반드시 인지했으면 하는 내용이 있나요?
3. 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4. 보통 어떤 업무를 맡는 것을, 어떤 업무 환경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나요?
5.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만에 하나 이직을 한다고 하면,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을까요?
6. (이력서에 적힌 내용 중) 이 한 줄은, 1에서 10까지의 수치가 있다고 할 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고 봐야 하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7. 우리 조직에서 해당 직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8. 일하면서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즐겁다/힘들다고 느끼나요?
9. …


어느 상황이든 회사에서 채용을 진행한다고 하면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채용하고자 하는 직무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보편적으로 그 직무는 무슨 일을 하는지, 각각의 과업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비치는지, 우리 회사는 그중에서 어떤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주로 어떤 것을 최고 가치로 삼는지 등이 그 내용이었다. 또, 해당 포지션으로 최근에 지원했던 후보자들의 이력서를 무작위로 뽑아 놓고 궁금한 내용에 밑줄을 쳤다. 이력서 사본을 건네면서 이 내용이 우리가 요구하는 역량 수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대게 이 '한 줄'은 얼마만큼의 의미 혹은 영향을 갖는지, 이 용어는 무엇을 뜻하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구성원의 답변을 듣고서 전반적인 구조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면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당신은 현재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즐거움/불행함을 느끼며, 조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이런 점은 좀 알아줬으면 하는지, 그리고 보편적인 인식 수준과 더불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구성원의 입장은 어떠한지, 어려운 지점과 혹여나 내가 도울 수 있는 지점이 있는지 함께 물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다양한 직군의 이력서를 보고, 후보자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있어서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업무를 수행해 보지는 않았기에 100% 동기화될 수는 없었지만 이야기의 대략적인 맥락은 파악할 수 있는 정도에 근접하게 되었다. 이 소중한 기억이 단시간에 휘발되지 않도록 직무별로 묻고 답한 내용을,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수 있는 전문 용어들을 내가 나름대로 이해한 사실과 함께 노션 페이지에 따로 정리하는 작업을 거쳤다.


구성원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묻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로워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백엔드 개발자는 문득 자신이 개발 공부를 처음 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고, 영업 담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또, 자신들이 남들에게 쉬이 말하지 못하는 고충이나 맹점에 대해서 먼저 묻고 이해해 줘서 새삼 위안을 얻었다고도 했다. 대부분의 일정은 1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시간 3시간이 넘는 바람에 빈 회의실을 찾아 옮겨 다녀야 했던 에피소드도 발생했다. 공통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기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이 다른 직원들도 이 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때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순전히 내가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일정을 요청한 건 나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내게 감사하다고 했고, 같은 직군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자기만의 애로사항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자신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나에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신뢰라는 것은 어쩌면 사소한 일화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였던 '직무 자체와 사람에 대해서 이해도를 높이는 것' 또한 중요한 건 사실이었지만, 어느새 가치의 우선순위가 보다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담당하고 있는 직무와 그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므로, 나는 이 작은 프로젝트를 '직무설명회'로 명명하기로 했다. 다른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사연을 공유했고, 이야기를 들은 지인 중 한 명은 그 과정을 직무기술서 작업을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무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에 외주사와 HR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지인이 했던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외부 컨설턴트가 내부 구성원들에게 건네는 질문과 이후의 결과물을 보면서, 내가 구성원들 몇몇에게 제공했던 경험이 비전문적이었을지라도 아주 약간은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조직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냈다거나 개인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거나 하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일단 복잡한 건 잠시 제쳐두고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HR의 주요 고객은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이라는 말이 있다. HR 분야에 뜻을 둔 이상 조직의 목표와 방향에 충분히 공감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바를 조직적으로 구현하고, 때에 따라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부드럽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필수 기반이 구성원들과의 신뢰 관계라고 믿는다. 직무적으로 전문성을 쌓고 양질의 경험을 해나가는 것도 역시나 중요하겠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갖고 때론 서로를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면접에 대한 고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