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내린 비로 촉촉해진 공기가 따스하게 느껴졌다.
단지 내 놀이터까지는 10분. 아이들 걸음으로는 20분.
날씨도 좋으니 걸어서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모처럼 집 밖으로 나와 놀이터에 도착한 아이들은 두시간을 신나게 놀았다.
뛰고, 구르고, 깔깔거리고.
정말 오랜만의 큰 웃음.
슬슬 피곤에 지쳐가는 아이들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산비탈에 지어진 단지의 꼭대가기 우리 집이다.
출발도 하기 전, '이불을 가져다 달라'는 은이의 투정이 시작됐다.
두 아이를 번갈아 업고 집까지 도착하니 배가 고프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하다.
놀이터에서 목구멍으로 훌렁 넘긴 믹스커피 한 잔은 그냥 입가심이었나보다.
라면을 먹고싶다는 두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서 내어주고, 냉장고 안의 카레를 꺼내 데웠다.
식은 밥을 그릇에 담고, 카레를 부어 슥슥 비벼 한 숟갈을 입에 넣으려는 찰나.
"엄마, 이리 와봐."
한숨이 나왔다.
'엄마 숨 좀 돌리고, 밥 좀 밀어넣자.'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말을 꿀꺽 삼키고,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싱크대 앞으로 돌아와, 카레가 담긴 그릇을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카레를 한 숟갈 떠서 입에 가득 넣었다.
"투두두둑"
예상치 못한 소리에 창 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분명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었는데.
다행이다. 지금 비가 오네.
아이들과의 외출이 한 시간만 늦어졌어도,
아이들과 30분만 더 놀았어도,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 아이를 업고 걸을 뻔 했다.
집으로 들어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두 아이를 챙겨줄 때는 세상 불만 가득했는데.
내리는 비를 보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비가 오는 줄 몰랐다면 계속 불만에 가득했겠지.
삶은 매 순간 선물을 준비해 둔다.
선물을 보지 못한 채 지나치고,
선물을 보고도 선물인 줄 모르고,
선물을 받고도 감사함을 잊기도 한다.
그 자리에 놓인 선물을 바라보고,
선물인 것을 알아차리고,
선물을 받아들이는 내가 되기를.
이제 비가 내려서 비를 맞지 않았다는 사실과
쉬지않고 종알거리는 두 딸의 수다를
기쁜 선물로 받아들이는 지금의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