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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Jan 15. 2023

일요일에도 5시 20분에 일어나다니

일요일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깊은 겨울로 접어드니 암막커튼까지 쳐 둔 방 안은 검은 밤이다.


'오늘까지 새벽에 일어나서 뭐 하려고. 그냥 더 자자.'


아이들 등원도 없고, 출근도 하지 않는 일요일.

출간과 관련된 바쁜 일이 잠시 멈춘 상태인 오늘을 만끽하고 싶었다.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는데, 15분 뒤에 또 알람이 울렸다.

지잉 거리는 알람을 끄고 몸을 고쳐 엎드렸다.


'어제 못 읽은 책이 있는데. 그거마저 읽고 싶은데.'


어젯밤 아이들을 재우려다가 다 읽지 못해 아쉬웠던 책의 마지막 챕터가 눈에 밟혔다.

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떠오르자 생각이 연이어졌다.


'커피도 한 잔 내려서 마시고 싶고, 아무 글이나 쓰고 싶어. 그냥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하는 일요일에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던가? 30분이라도 혼자 무언가를 하자.'


혼자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나의 눈이 번쩍 뜨이게 했다.

그러자 지루하게 이어가던 아침 루틴에도 힘이 실렸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목표가 명확했다.

곧 출간될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의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는 것. 

6월부터 12월까지 약 7개월 동안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글을 고쳤다.

출간이라는 목적지가 분명했기에 5시에 일어나기도 무조건 실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 느슨해지는 겨울이 오고,

최종본을 출판사에 넘겨 인쇄소에서 책이 만들어지는 요 며칠간은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 싫었다.


'내가 왜 이걸 해야 하지? 그냥 좀 더 자자. 일어나서 할 일도 없잖아. 그거 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래도 어렵게 이어온 새벽기상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아침 루틴을 만들었다. 

물 한 잔, 채근담 필사, 일상 기록, 경제지표 확인, 두 종류 신문 읽기, 가계부 쓰기, 책 읽기.

독서 시간을 20분만 잡아도 1시간은 충분히 넘어가는 활동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힘을 쏟는 활동이 분명하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아웃풋은 없는 활동이다.

물 한 잔 마신다고 피부가 반지르르해지지 않고,

한 구절 필사 한다고 내 일상이 고상해지지 않으며

경제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통장에 돈이 채워지지 않는다.

가계부를 쓰면 쓸수록 나의 거침없는 소비에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그나마 가장 편안한 활동이 책 읽기인데 책을 읽고 일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건 드러나지 않는 얕은 바람과도 같기에 아침의 단잠과 맞바꾸기에는 약해 보인다.


새벽기상의 아주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던 '출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자

'아침 루틴'이라는 다소 루즈하고 불분명한 목적지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의 행동(아침 루틴)과 결과(건강한 몸, 깨어있는 지성, 두둑한 통장)를 당장 이어 붙이려니 5시 30분 이전에 일어나기와 아침 루틴의 실천은 목적지 없이 노를 젓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바라는 결과들은 매일이 수년은 쌓여야 가능한 모습이고

이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을 다져나가야 하는 현재진행형의 모습이다.

산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는다고 해서 끝나는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 힘들었다.

'이거 줄게, 저거 하자'의 익숙한 방식에서

'이거 하자, 저리 될 거다'의 새로운 방식으로 가려니 지겹고 지루했다.




오늘 아침 나의 눈을 뜨게 만든 건

어제 다 못 읽은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의 향취였다.

루틴이 느슨해도 되고,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오직 내가 좋아서 하는 나만의 취향을 위한 시간.


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왜 꼭 새벽이어야 해? 왜 아이들과 남편에게 시간을 맞춰야 해?'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애들 재우고 나와서 해도 되지. 근데 다음날 피곤해서 내가 힘들잖아. 남편에게 애들 맡겨놓고 나와도 되지. 근데 그러면 내 마음이 불편하잖아.'

피해의식이 아니라 날 위한다는 자발성으로 선택하니 이 또한 받아들일만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이 멋지다고 해 주는 새벽기상이 아닌가. 하하.

자뻑하기 제일 좋은 게 새벽기상 아니던가.


강력한 목표(출간)와 촘촘한 실천사항(아침 루틴)이 원하는 습관(새벽 기상)을 들이는데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강력한 목표와 촘촘한 실천사항도 색이 바래는 순간에는

결국 개인의 취향과 자발성이 동기가 된다.

내가 좋으니까, 나를 위해서 하는 일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

덕분에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지 않은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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