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두 달간 체중을 감량했다. 요즘 유행하는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다이어트 방법이다. 4주 동안 몸을 리셋한다는 이야기에 솔깃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할 때에는 "4주 뒤에는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며 탱자탱자 놀아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4주 차를 마무리하고 나니 "이건 평생 관리해야 할 내 몸인데?"라는 인식이 생겼다. 식단 관리를 하다 보니 밀가루나 튀긴 음식, 지나친 과당을 조심하게 되었고, 카페인 중독 수준이던 내 몸이 디카페인 라테를 즐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먹는 것뿐만 아니다. 하루에 5분이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24시간 내내 수고한 내 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이제 막 시작한 초보로서 3분 뛰고 2분 걷는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요가 매트 위에서 홈트로 킥백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기도 했다. 4주 차 이후로 공복 시간을 지키고, 간헐적 단식을 병행하고 있다. 매일 15분 스트레칭이라도 꼬박꼬박 하며 몸을 풀어주기도 한다.
4주 동안 먹는 것과 활동량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면서 내 몸이 좋아하는 것과 나의 뇌가 익숙한 것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나의 뇌는 달콤하고 고소한 빵, 달달한 과일, 바삭한 과자, 앉아서 책 읽기에 익숙했다. 반면 나의 몸은 아삭한 오이, 사각거리는 양배추, 완전식품 단백질, 오동통한 해산물, 스쿼트와 옆구리 늘리기를 좋아했다. 늘 나의 뇌가 익숙한 대로 움직이다가 나의 몸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익숙하지 않은 식사 준비와 운동 루틴을 만들어나가는 활동을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살을 빼고 싶어 하는 건 자본주의 아래의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폐해가 아니던가라는 생각을 떨쳐내야 했다. 책에서 읽고 유튜브에서 들었던 렙틴, 인슐린 등 요상한 호르몬들을 떠올리며 '나는 내 몸을 건강하게 리셋하는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켜야 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유익한 것을 찾아가는 여정은 낯설고 괴롭지만, 신선하고 자극적이다.
먹는 음식을 신경 쓰고, 운동 루틴을 잡아가며 '체중 관리는 글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선언을 하고 시작하기에 딱 좋다. 나 오늘부터 다이어트할 거야, 나 오늘부터 글 좀 써 볼 거야. 그동안 익숙하지 않고 편하지 않았던 것을 시작하며 다가올 미래를 긍정의 가능성으로 채우기에 참 좋은 도구다.
다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심삼일이 되기 딱 좋다. 다이어트는 내일 헬스장 끊고 시작하려고, 내일 노트부터 사서 일기부터 끄적여보려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홈트 영상 하나 틀어두면 끝날 것을, 당장 아무 종이나 끄집어내서 먹고 싶은 디저트와 먹고 싶은 이유를 쓰기 시작하면 쉬울 것을. 굳은 결심과 달리 뭔가 더 거창하게 해야 하지는 않나, 좀 더 완벽하게 해내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다가도 포기하기가 쉽다.
마지막으로, 습관으로 이어가기는 정말로 어렵다. 한 달간 PT도 끊어서 열심히 했다가도 두세 달 쉬엄쉬엄하다 보면 금세 풀리는 게 몸이요 마음이고,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한 달 바짝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다가도 두어 주 키보드와 멀어지면 금세 첫 문장과 멀어지는 게 손가락이요 머리다. 매일 해내기는 매일 내 몸무게를 들어 올리는 것만큼 힘든데 하루쯤 쉬어가기는 숨쉬기보다 더 쉽다. 그래서 체중 감량에 성공하여 바디프로필을 찍거나, 100일 글쓰기에 성공하여 글쓰기의 결실을 맺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주목받고 찬사를 받는 것 아닐까?
시작하기에 좋지만, 포기하기 쉽고, 겨우겨우 이어가도 금세 도루묵이 되기 쉬운 체중관리와 글쓰기. 체중관리를 하면서 그걸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럼,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인가?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해놓고 보면 그래 보이 기도 하지만, 실상 일상을 펼쳐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침저녁으로 체중계에 올라가 삶의 희비를 맛보고, 오늘은 홈트를 어떻게든 쉬운 걸로 넘겨볼까 궁리를 하며, 이번주 브런치 글쓰기는 내 차례인데 뭔 소재로 써야 하나 두뇌를 풀가동하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결국 그걸 소재로 글을 마무리짓고야 마는 엉터리 허술한 인간이다.
그런 내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아, 뭔가 상투적인 표현이구만) 오늘 저녁은 단백질셰이크 두 스푼으로 만족하며 안벅지 돌려 깎는 홈트를 떠올리는 건 완벽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자기 위안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다이어트 관련 글인지 글쓰기 관련 글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글을 써 내려가며 피식피식 웃는 건 이 또한 완성도를 높이지 않아도 솔직하게 적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글쓰기의 허들을 넘었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중요한 건 내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한 움큼 느껴져도 살살 달래 가며 스쿼트 10개를 시도하는 행동이다. 중요한 건 글의 조회수가 두 자릿수를 넘지 않아도 괘념치 않고 이런저런 글을 채워가는 행동이다. 점을 길게 이어 보면 가느다란 선이 되고, 가느다란 선이 이어지면 어딘가에 닿아있겠지. 그러니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오늘도 쓰는 사람들>
진짜 나를 마주하고 더 단단해질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쓰는 5명의 작가가 만났습니다.
쓰기를 시작하는, 쓰기를 지속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글을 쓸 수 있는 용기와 내일을 그려보는 희망을 건네는 글을 씁니다. 글쓰기 시대이지만 글쓰기를 지속하는 사람보다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글쓰기의 시작과 시행착오, 글을 쓰며 나아가는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엮고 있습니다.
글쓰기 에세이 신간 [그녀들의 글쓰기 맞수다]가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