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한다'와 '안 해도 된다'를 넘어서는 순간

나에게 좋음을 선택하기

by 자유로운 풀풀

오전 6시 알람이 울렸다. 오전 7시 알람이 울렸다. 오전 7시 50분 알람이 울렸다. 맞춰둔 알람 세 개는 야무지게 꺼버렸다. 오전 8시, 눈을 뜬 연이가 곁으로 굴러왔다. 아이 덕에 웃으며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걸어 나와 물 한 모금을 삼켰다.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아이들을 보았다. 기분 좋은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웃음소리를 낸다. 푹 자고 일어나 컨디션이 최상이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낄낄거리는 아이들.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옷을 갈아입혀주었다.


굳이 새벽에 일어날 이유가 없구나.


원래의 계획은 6시에 일어나, 글쓰기와 책 읽기를 1시간 동안 한 뒤, 7시에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7시 30분에 음악을 틀어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날은 은근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 날보다 하지 못한 날이 많으니, 하루의 시작 대부분을 죄책감으로 시작한 셈이다. '일어나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라는 얕은 마음은 '해야 하는 것을 해내지 못한 패배감'으로 다가왔다. 이는 '좋은 엄마, 멋진 여성'으로 살아내고 있지 않다는 위기의식마저 불러일으켰다. 고작, 새벽 기상 하나 따위로.


8~9시간의 숙면을 취하고 8시에 일어나니 생각이 명료했다. '잠을 줄여가며 6시에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을 해 내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푹 자고 일어나 기분 좋은 웃음으로 아침을 여는 것'도 좋았다.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으며 그날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맞추면 그만일 일이었다. 난 로봇이 아니니까. '생명이 들어있는 움직이는 유기체의 몸'과 '희로애락 + a, b, c의 감정들을 지닌 영혼'이 함께 융합된 존재가 나니까. 그런 나를 규칙과 틀에 맞추어 무언가를 해내면 승자요,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면 패자라고 취급해버릴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동안 '해야 한다'와 '안 해도 된다'의 흑백의 세상에서 살아왔다.


해야 하는 것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악물고 해내야 했다. 그것이 삶의 바른 태도라고 여겼다. 그렇게 해야 먹고살만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야 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면 생존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압박을 느꼈다.


안 해도 되는 것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눈을 슬쩍 돌려 보다가도 머리를 쥐어박으며 해야 하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건 살아가는데 필요 없는 것이라 여겼다.


해야 하는 것들이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전락하는 순간이 있었다. 이를테면 미혼일 때 다이어트는 필수지만,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는 몸매 관리는 안 해도 되는 것 같은.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고정관념이다. 난 그렇게 면죄부를 주었다. 사실 '면죄부가 필요도 없는 건강관리의 차원인 것'을 '평가라는 잣대' 위에 올려놓은 나의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타이트하게 조여왔던 해야 하는 것들의 띠를 다 찢어 던져버렸다.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을 맛보며 방종에 빠졌다.


안 해도 되는 것들이 해야 하는 것으로 탈바꿈하는 때도 있었다. 반찬이야 사 먹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젠 직접 내 손으로 반찬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것 같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반찬가게가 없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야 안 해도 된다 여겼는데, 상황이 닥치니 나물 데치는 법부터 매번 검색해야 하는 요알못 나를 마주하는 자괴감이라니.


'해야 한다'와 '안 해도 된다'의 세상에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해야만 잘 사는 것이니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그거 안 해도 잘 살 수 있으니 보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 나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의지, 세상의 뜻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좋음으로 시작한 무언가도 어느 순간에는 '해야 한다'와 '안 해도 된다'의 틀에 끼워 맞추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 내키는 데까지 해보지 못하고, '결국 별거 없지.'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왔다.


이젠, 좀 다른 선택을 해보려고 한다.


결과를 따지지 않고,
지금 좋음을 선택해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새벽 기상을 하는 것도 좋고, 충분한 잠을 자는 것도 좋다.

운동을 하는 것도 좋고, 드러누워 숨쉬기만 하는 것도 좋다.

벽돌 책을 격파하는 것도 좋고, 웹소설을 읽는 것도 좋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절히 살아가는 넓은 경계 안이라면, 나의 좋음이 1순위가 되어 무언가를 선택하는 기쁨을 누려보려고 한다. 죄책감 없이, 패배감 없이. '난 이게 좋아.'라며 순간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을 택하고 싶다.


'해야 한다'와 '안 해도 된다'를 넘어서는 순간.

육체와 영혼의 짬뽕인 나에게 좋음을 허락하는 것.

그러한 선택이 점점 더 많아지는 내가 되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