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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링키 Apr 28. 2017

소년.

그리 차갑지고 않고 그리 뜨겁지도 않았던 너의 손.

                                                                                                                                

마디가 굵은 투박한 너의 손이 나의 정수리에 살며시 와닿으면 한마리 짐승처럼 온순해지던 어린 내가 있었다.

20세기말의 흔하디 흔한 청춘들 가운데 하나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최초의 떨림이자 설렘이었다.


내 머리에 느껴지던 네 손의 무게는 지금도 이따금씩 나를 깊은 그리움의 상자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리 가볍지도 않고 그리 무겁지도 않았던, 그리 차갑지고 않고 그리 뜨겁지도 않았던 손.

딱 너라는 사람이 그러했듯 네 손 또한 그러했다. 적당한 무게와 미지근한 온도를 지닌 그 손이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나를 잡고 흔들어 놓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너와 나 사이에는 별다른 추억이 없다. 단 둘이 만난적도 많지 않다.  

떠오르는 것은 내 머리 위에 살짝 내려앉은 네 손의 싫지 않은 무게감, 그리고 그 무게를 느낀 내가 고개를 들면 그곳에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던 너의 환한 웃음.

그 외에 다른 구체적인 것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것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툭 하고 던져진 너의 손은 사뿐히 내 머리 위에 내려 앉고, 툭툭 두 번의 서툰 두드림이 끝나면 이내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위를 미끄러지며 다시 날아오른다. 어떠한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두 번의 두드림으로 제 할일을 끝냈다는 듯이 내 머리 위를 떠나 훨훨 날아간다.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소중한 듯 쓸어내리지 않는 그 담백한 두드림은 마치 너와 나의 관계와도 같았다.

딱 그 정도의 거리, 딱 그 정도의 관계.

그리 멀지도 않지만, 그리 가깝지도 않은, 두 번의 두드림이 어울리는 그런 사이.


나는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생각한다.

그 때 너의 손이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아 나도 모르는 새에, 그리고 너조차도 모르는 새에 작은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닐까 하고.

이따금씩 네가 아주 많이 보고 싶어 지는 것은 내 머리 속에 내려진 뿌리의 끝이 아련하게 흔들려서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파르르-하고 작게, 그러나 이내 크게 번져가는 그리움의 파동이 나를 뒤흔들어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째서 너일까,

조금 더 가까이에서 숨결을 나누었던 사람들 속에서.

왜 너일까,

조금 더 많은 기억을 나누었던 사람들 속에서.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네가 내게 깊이 뿌리내린 그리움이 될 줄은.

지금의 내게 너라는 사람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몇 년이 흐른 뒤에 나는 또 어떤 그리움을 뿌리내린 채 살아가게 될까.

지금 내 곁에 당연한 듯 존재하는 어떤 체온들을 그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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