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차갑지고 않고 그리 뜨겁지도 않았던 너의 손.
마디가 굵은 투박한 너의 손이 나의 정수리에 살며시 와닿으면 한마리 짐승처럼 온순해지던 어린 내가 있었다.
20세기말의 흔하디 흔한 청춘들 가운데 하나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최초의 떨림이자 설렘이었다.
내 머리에 느껴지던 네 손의 무게는 지금도 이따금씩 나를 깊은 그리움의 상자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리 가볍지도 않고 그리 무겁지도 않았던, 그리 차갑지고 않고 그리 뜨겁지도 않았던 손.
딱 너라는 사람이 그러했듯 네 손 또한 그러했다. 적당한 무게와 미지근한 온도를 지닌 그 손이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나를 잡고 흔들어 놓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너와 나 사이에는 별다른 추억이 없다. 단 둘이 만난적도 많지 않다.
떠오르는 것은 내 머리 위에 살짝 내려앉은 네 손의 싫지 않은 무게감, 그리고 그 무게를 느낀 내가 고개를 들면 그곳에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던 너의 환한 웃음.
그 외에 다른 구체적인 것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것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툭 하고 던져진 너의 손은 사뿐히 내 머리 위에 내려 앉고, 툭툭 두 번의 서툰 두드림이 끝나면 이내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위를 미끄러지며 다시 날아오른다. 어떠한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두 번의 두드림으로 제 할일을 끝냈다는 듯이 내 머리 위를 떠나 훨훨 날아간다.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소중한 듯 쓸어내리지 않는 그 담백한 두드림은 마치 너와 나의 관계와도 같았다.
딱 그 정도의 거리, 딱 그 정도의 관계.
그리 멀지도 않지만, 그리 가깝지도 않은, 두 번의 두드림이 어울리는 그런 사이.
나는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생각한다.
그 때 너의 손이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아 나도 모르는 새에, 그리고 너조차도 모르는 새에 작은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닐까 하고.
이따금씩 네가 아주 많이 보고 싶어 지는 것은 내 머리 속에 내려진 뿌리의 끝이 아련하게 흔들려서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파르르-하고 작게, 그러나 이내 크게 번져가는 그리움의 파동이 나를 뒤흔들어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째서 너일까,
조금 더 가까이에서 숨결을 나누었던 사람들 속에서.
왜 너일까,
조금 더 많은 기억을 나누었던 사람들 속에서.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네가 내게 깊이 뿌리내린 그리움이 될 줄은.
지금의 내게 너라는 사람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몇 년이 흐른 뒤에 나는 또 어떤 그리움을 뿌리내린 채 살아가게 될까.
지금 내 곁에 당연한 듯 존재하는 어떤 체온들을 그리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