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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현 Sep 27. 2018

사이공의 푸동 투티엠, 호치민 D2

Thu Thiem - The Pudong of Saigon

호치민 시청 앞에서 강변으로 이어지는 광장을 따라 가면 바로 사이공 강 건너편이 '사이공의 푸동'이라고 불리는 투티엠(Thủ Thiêm)이다. 투티엠은 호치민시 2군(District 2, D2)이 들어서 있는 사이공 강의 포인트바에 위치하고 있다. 


HO CHI MINH CITY MAP

비공식적으로 1,000만 명이 넘는 메트로폴리탄인 호치민시에 메인 사진과 같이 가장 번화한 1군과 사이공 강을 사이에 두고 비어있는 드넓은 지역으로 남아 있어, 앞으로 상하이의 푸동, 서울의 강남과 같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베트남 부동산 투자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지역이며 베트남 국내뿐 아니라 세계 부동산 자금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 

PUDONG 1987 : 2013

투티엠이 투자자들에게 각광받는 이유는 한국인이라면 서울 한강 이남의 강남 개발이 떠오르기 때문이며, 투티엠의 현재 모습이나 그들이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상하이 푸동 개발이라서 더욱 그렇다. 상하이의 푸동의 개발 역사를 보면 1990년에 시작되어 중국의 금융 및 상업 허브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상징이 되었다.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푸동의 스카이라인은 미래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푸동(浦東)은 황푸(黃浦) 강의 동편, 강의 오른쪽 둑이라는 뜻이다. 우연하게도 투티엠의 위치도 사이공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 제2공항 롱탄 국제공항이 2군의 동쪽 9군에 생기게 되어 푸동 국제공항의 방향과 일치한다. 푸동은 개발되기 전, 서울시 면적의 2배가 넘는 거대한 농촌지역이었다. 바로 그 천지개벽한 모습이 투티엠의 허허벌판을 보면서 데자뷰되는 것이다. 롯데그룹의 신격호 전회장이 Bietexco Finance Tower 전망대에 올라가 바로 앞에 펼쳐진 투티엠을 가르키며 서울의 압구정 동과 같다고 투티엠 개발에 참여하라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유무를 떠나서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투티엠은 재개발이 허가되기 전에 이미 1751년에 설립된 중앙시장을 포함한 밀집지역이었다고 한다. 2002부터 시작하여 거의 10년 동안 14,000 ~ 15,000 가구가 개발 현장을 떠나 이주를 했다. 마스터플랜은 1998년에 시작, 2003년 미국의 건축가 히데오 사사키가 맡았고, 투자액에 따라 15년 이내 완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대부분의 토지가 늪지대로 되어 있어 물을 빼고, 지반 공사를 진행한 다음에 주요시설 개발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로와 다리건설 등 인프라 투자자에게 개발 우선권이 주어지게 된다. 개발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재개발 지역으로 남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Thu Thiem Land Allocation

투티엠 신도시는 657ha(6.57 km², 여의도 8.4 km²)의 면적을 차지하며 마스터플랜을 보면 개발지역은 전체의 약 33%이고 67% 나머지는 공원, 늪지, 도로, 수로 등의 인프라 개발로 되어 있다. 1~8 지역까지 나뉘어 각 지역의 토지사용용도에 따라 높이제한과 건축밀도가 정해져 있고 쇼핑센터, 호텔, 리조트 등의 상업용 건물들이 33.7%, 아파트 단지, 빌라 등의 주거용 건물이 41%, 학교, 공공기관, 공원, 경기장, 오페라하우스 등이 들어오게 된다. 참고로 아파트 단지로 보면 1 지역에는 썬킴랜드의 메트로폴, 2a지역에는 롯데 에코스마트시티, 2b지역에는 캐펄랜드의 엠파이어시티, 2c지역에는 빈홈, 3 지역의 일부를 GS, 5,6 지역은 다이꽝민의 살라(SALA), 7 지역엔 투안비엣의 뉴시티가 개발 중이다. 완성이 되면 15,000여가구, 6만여명이 이주하며 향후 14,5000명의 유동인구를 예상하고 있다.


Thu Thiem Infrastructure


투티엠에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래에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호치민 중심 위치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탄 군과는 투티엠 1교(2008년), CBD(중심 업무지구)인 1군과는 동남아에서 가장 긴 수중터널이 연결(2011년)되어 있고, 투티엠 2교가 1군의 골든리버 2차부지와 썬킴랜드의 메트로폴 자리로 연결되며, 롯데 에코스마트시티 위치에서 1군의 페리 선착장으로 보행자 다리가 연결된다. 4군의 향후 CBD확장지역과는 투티엠 3교, 푸미흥이 있는 7군과도 투티엠 4교가 계획 중이다. 투티엠의 강변은 새로운 CBD지역으로 되어 기존 CBD지역이 확장된다. 이렇게 1군및 빈탄과 매우 인접해 있으며 교육 및 환경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푸미흥이 있는 7군과 강으로 마주하고 위치해 있다. 또한 외국인들의 주요 거주지로 호치민의 부촌으로 손꼽히는 2군의 타오디엔과 안푸 지역과도 가까우며, 하이테크파크가 있는 9군과도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향후 메트로 2호선이 지나가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이 노선을 이용할 하루 승객은 480,000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북동쪽으로 약 4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2020년 목표로 개발 중인 롱탄국제공항이 개항을 하면 이용승객은 연간 1억 명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앞으로 투티엠은 호치민 교통의 요지가 된다. 이러한 교통 인프라는 동서남북을 잇는 금융, 무역, 서시스의 신흥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할 것이다. 


어니스트 헤브라드 1928, 맨 아래가 투티엠

이렇게 사이공을 투티엠 지역으로까지 확장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예일대의 인류학 및 동남아시아 연구 담당인 에릭 함스(Erik Harms) 부교수는 개발 계획이 10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 본인의 저서에서 밝혔다. 이미 1920년대 사이공 확장에 투티엠에 대한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으며, 1965년이 되어서야 베트남 정부는 그리스 도시 계획 회사에게 의뢰한다. 도시 개발 5개년 계획엔 투티엠의 상세한 지도와 투티엠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할지에 대한 계획이 들어있다. 그러나 모두 실행이 되지 않았다. 함스에 의하면 투티엠의 발전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은 지역 주민들이 이주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비록 지역이 다른 곳에 비교해 덜 발전했음에도 많은 주택, 사원, 교회 그리고 시장 공동체가 많이 남아있는 것이 이유였다.

 “Saigon Metropolitan Area; Pilot Project” 1965 (좌)  Wurster, Bernardi & Emmons, Inc. 1972 (우)


아이러니하게도 푸미흥은 1980년대 후반에야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완공되었다. 투티엠 개발이 수십 년에 걸친 계획과 국가 차원의 관심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진행 중인 것과 상반된다. 푸미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만인 토지 탐사가 로렌스 팅(Lawrence S.Ting)이 1989년 늪지대뿐이던 푸미흥을 선택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푸미흥은 베트남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프로젝트가 되었고 투티엠은 지금도 논란에 빠져 있다. 바로 원주민 이주에 대한 보상에 관한 문제이다. 푸미흥에서 주민들의 이주는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토지 사용을 허용하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한 직후 1993년에 시작해서 1994년에 완료했다. 당시 토지법이 생기고 부동산 시장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낮은 수준의 보상을 했고, 주민들은 큰 불만 없이 떠났다. 투티엠에서는 제대로 된 보상이 2002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는데 이때에는 이미 사람들이 지역 땅값을 알고 있었으며 쉽게 이주해 줄 의사도 적었다. 현재는 투티엠이 늪지대라서 개발이 더디어 지연되는 만큼 토지 가격이 너무 높게 인상이 되고 결국 토지 보상에 대한 문제가 기존 개발허가와 맞물려서 점점 미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최근 베트남 총리가 직접 투티엠 개발계획의 조속한 해결을 지시까지 하게 되었다.


이것은 푸동 개발 당시 21세기 동아시아 금융중심지, 하이테크 도시, 쾌적한 도시환경, 세련된 글로벌 시티 등의 대전제 하에 이곳에 살던 주민의 존재는 무시되어 개발이 강행된 중국의 사례와는 다른,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로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의 영웅 '호치민'이 있다.  그는 비록 공산주의자였지만 여느 공산주의자들과는 달랐다그는 평생에 정적을 숙청한 적도 없었고자신을 우상화한 적도 없었다그는 국민들로부터 ‘(아저씨 불리면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그리고 죽을 때는 입은   벌만 남겼다. 그런 호치민이 베트남 인민들에게 강조한 것이 바로 3꿍 정신인데, ‘꿍아’(함께 산다), ‘꿍안’(함께 먹는다) 그리고 ‘꿍담’(함께 일한다)이었다. 역사적으로 오랜 외부의 침입과 제국주의의 약탈을 경험했고, 이념적 민족분단까지 겪었던 베트남의 미래로 호치민이 꿈꾸었던 것은 모든 인민이 함께 일하고, 함께 먹으면서 함께 사는 나라였던 것이다. 투티엠 개발을 더디게 만드는 이유도 바로 호치민 정신이 이어져 내려오는 베트남 사회주의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개발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50년의 개발권은 받아놓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토지가격은 상승할 수 밖에 없어서 더 많은 이익을 낼수 있기 때문에 급하게 가지 않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Empire City

투티엠 신도시 개발은 신도시 전체를 개발하기 위한 자본을 정부에서 조달하기에는 여의치 않아서 외국계 시행사 및 현지 시행사들과의 합작 프로젝트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투티엠 지역 아파트에 투자를 해서 입주할 시기가 돌아와도 아직 인프라가 모두 갖춰지려면 5~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임대수익률도 당장 고수익을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더디게 필요한 지역이다. 하지만 10년 내 베트남에서 가장 발전할 지역임에는 분명하다. 인천광역시의 송도 신도시, 중국 상하이의 푸동 신도시의 개발 사례에서도 처음 신도시 내에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개발될 때는 잘 모르지만, 추후 마스터플랜대로 모든 인프라가 갖춰지면 신도시는 사람들이 살기 쾌적한 주거 친화적인 환경으로 변모한다. 따라서 신도시 내의 프로젝트들이 하나둘씩 인기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모든 상품들의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신도시의 프리미엄은 그때 나오는 것이다.


10년 후 언젠가, 사이공 강에 펼쳐진 투티엠의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지금을 회상할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허허벌판 늪지대가 상전벽해된 모습일 텐데, 베트남식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물이 어떤 모습의 신도시로 다가올지 몹시 궁금해진다.


투티엠 개발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CBRE에서 제작한 "Thu Thiem - The Pudong of Saigon"을 참고하기 바란다.

CBRE Report - Thu Thiem - The Pudong of Saigon





참고 및 인용

투티엠 신도시 _위키백과

CBRE Report - Thu Thiem - The Pudong of Saigon

뚜띠엠의 미래와 현재 _Tomorrow Vietnam 

고층 빌딩 즐비한 상하이 푸동, 30년 전에는… _박철현 국민대교수/프레시안

트 티엠과 푸미흥의 엇갈린 운명 _Saigoneer

치솟는 분양가에도 청약 열기...'호치민의 강남' 투티엠이 들썩인다 _인베스트조선

투티엠 신도시 _Q2House

사이공 투티엠, 상하이 푸동처럼 성공할까? _김현수의 경제돋보기/한국경제TV

Luxury and Rubble: Civility and Dispossession in the New Saigon

호치민의 3꿍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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