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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현 Aug 04. 2023

배려의 공간, Be Gentle with...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 Affordance in SPACE 6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Affordance in SPACE)' 시리즈의 여섯 번째 주제로, '배려의 공간, Be Gentle with...'를 다뤄보고자 한다. 시작에 앞서, 'affordance'라는 키워드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Affordance'는 한글로는 '제공하다' 혹은 '가능성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심리학자 J.J. Gibson이 처음으로 제안한 이론으로 공간 디자인 및 건축 분야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개념이다. 'Affordance'는 공간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행동의 가능성과 제약에 주목하며, 공간이 사용자의 행동과 경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공간을 더 효과적이고 사람 중심으로 디자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시를 들자면, 휠체어 사용자에게는 경사로가 이동의 'affordance'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고, 반대로 계단은 이동에 대한 'affordance'를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달라이 라마는 '뉴 밀레니엄을 사는 생활의 지침서'를 발표했다. 그중 "Be Gentle with the Earth."라는 메시지는 지구와 그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제시했다. 이 메시지는 환경 보호에 그치지 않고, 지구와 그 생태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강조하며, 우리의 일상생활과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행동들, 즉 'affordances'에 대한 통찰을 촉구한다. 이것은 우리가 존재하고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반영하는 공간에 대한 이해와 반응을 이끌어내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게 울려온다.


"Be Gentle with the Earth"는 먼저 환경 보호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습관, 예를 들어 쓰레기 줄이기, 재활용,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 사용 등을 통해 지구를 보호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자원 보호에 기여하며 환경 파괴를 줄인다. 이는 건축 및 공간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지속 가능한 공간 설계와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뛰어난 도시 재생의 사례로 꼽힌다. 이 공원은 1930년대에 건설된 이전의 철도 트랙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출한 것으로, 고유한 재활용과 재생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사례이다. 파크는 도시 숲으로서 공기 정화, 온도 조절, 비 흡수 등의 역할을 하며, 도시의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서식지로 작용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자연을 경험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키는 역할도 한다. 도시 생활에 자연의 존재를 끌어들이며, 방문객들은 여기에서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체험할 수 있다.

New York Highline Park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사용하거나 에너지 효율적인 설계를 통해 자연 빛을 활용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활용하는 건축물은 자원 소모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의 활용은 불필요한 운송과 그에 따른 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지역 경제를 지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Kengo Kuma)는 "약한 건축"의 개념을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추구한다.


구마는 자연과의 융화와 존중, 그리고 재료와 환경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을 설계한다. 그는 건물이 주변 환경에 과격하게 개입하는 대신, 환경과 문화적 맥락을 공유하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융합하려는 생각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가벼운,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물이 주변 환경에 부드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한다. 그의 건축은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존중하며, 이를 통해 건물과 주변 환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강조한다. 제주도 아트빌라스 작품을 예로 들면, 구마는 주변의 현무암을 지붕과 외벽에 사용해 오름과 같이 건물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였다. 또한 건물 내부에 투명한 유리를 사용하여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고, 바깥의 풍경을 내부로 들어오게 하여 자연과의 유기적인 연결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접근법은 건축이 지역의 문화와 자연환경, 그리고 사람들의 삶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구마 겐코, 아트빌라스 D블록

"Be Gentle with the Earth"는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일상에 적용하면, 우리는 지구의 자원 보존, 기후 변화 완화, 그리고 지구와 그 생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은 먼 거리를 운송해야 하는 것보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또한, 이는 지역 농민을 지원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개인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적은 연료를 사용하게 되며, 이를 통해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생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많은 상업적 공간들이 리필 코너를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는 식료품 상점, 화장품 매장, 그리고 카페 등 다양한 업종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런던의 'Bulk Market'은 런던의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 플라스틱 프리 슈퍼마켓으로, 고객들이 필요한 만큼의 식품 및 일상용품을 직접 가져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고객들은 자신의 그릇이나 컨테이너를 가져와서 그 안에 제품을 담아가게 된다. 이는 고객들의 소비 습관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Bulk Market
Refill Station


"Be Gentle with the Earth"라는 문장에서 "the Earth"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여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를 다른 맥락으로 확장해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 (Others)를 대입해서 "Be Gentle with Others"라고 하자. 공동체에서 타인에 대한 친절과 이해를 강조하게 되어 소수 사람의 견해를 존중하거나, 공감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Be Gentle with the Earth" 메시지를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서 실현하도록 도울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현대 사회에서 카페나 레스토랑 방문객들의 필요와 선호도는 다양하며, 이는 개인의 건강 상태, 생활 방식, 신념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디카페인, 락토프리, 비건, 그리고 글루텐 프리 등의 선택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디카페인 옵션은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들, 또는 특정 건강 상황으로 인해 카페인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이다. 통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약 10%가 카페인에 민감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우유의 락토프리 선택은 유당 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세계 인구의 약 65%는 유당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유당 불내증을 가지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과반수이상이 카페라테를 마실 수 없다는 점이 놀랍지 아니한가?


비건(Vegan)이란 동물의 제품과 서비스를 모두 회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는 동물 기반의 식품을 먹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로 만든 의류나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 생활 방식을 포함한다. 이는 동물의 권리, 환경 보호, 건강 유지 등의 이유로 선택한다. 그래서 비건 음식 메뉴는 비건주의자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세계적인 도시인 뉴욕과 런던에서 방콕, 발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시의 레스토랑에서는 식물성 식품 메뉴를 일반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채식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등, 채식 문화가 일상생활로 깊숙이 뻗어나가고 있다. 이는 과거에 육식을 중심으로 한 식습관에 대한 반발과 건강 및 지속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증가가 크게 작용하였다. 얼마 전 '한국인의 식판' TV 프로그램의 '옥스퍼드 대학교'편에서 학생들을 위한 급식 준비를 할 때 고기가 들어간 음식과 비건 음식 비율을 50:50으로 준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에 261억 달러였던 글로벌 비건 식품 시장은 2028년에 613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연평균 13%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채식 인구는 약 1억 8000만 명으로, 그에 따라 비건 레스토랑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다양한 식사 선택을 제공하는 것은 고객의 다양한 필요성과 선호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이다.


젠더 중립 화장실(gender-neutral bathrooms)은 모든 사람, 특히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2016년 캘리포니아는 단일 사용자 화장실을 모두 젠더 중립으로 지정하는 법을 처음으로 통과시켰고, 이 법은 모든 공공건물과 사업장에 적용되었다. 또한, 뉴욕시는 같은 해에 공공학교에 젠더 중립적인 화장실을 도입하게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학생들의 성 정체성 존중과 안전한 화장실 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유럽, 캐나다, 호주의 여러 도시에서도 젠더 중립 화장실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성별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려동물은 우리의 삶에 기쁨과 위안을 주는 중요한 가족 멤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많은 공공장소와 사업체에서는 여전히 반려동물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을 배려하는 공간과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많은 도시에서는 반려동물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애완견 공원'을 설치하고 있다. 이런 공원은 특별히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반려동물이 자유롭게 활동하면서도 안전을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또한, 도시의 일반 산책로에서도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많은 상업 시설, 특히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반려동물을 동반한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테라스나 야외 공간에서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도록 허용하거나, 반려동물 전용 메뉴를 제공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내부에서도 반려동물을 허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서 장소를 이용하는 룰이 있어야 하고 그 룰을 반려동물의 주인들이 잘 지키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Daikanyama Tsutaya T-site DOG GARDEN
애완견공원 Trail and tail, Bangkok


자신의 마음 (Your Mind): "Be Gentle with Your Mind" - the Earth 대신에 넣은 이 문장은 자신의 정신적 건강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게 된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강조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한 휴식을 취하며, 자신을 건강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도시들은 다양한 공간들을 창출하고 있다. 공원이나 녹지는 도시민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도시 숲이나 휴식공간 등은 심신 안정에 중요한 자원으로 작용한다. 코워킹 스페이스나 커뮤니티 센터는 조용히 생각하거나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참여자들의 정신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또한, 공공 미술관이나 도서관 등은 사람들이 예술과 문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공간이다. 이처럼 도시 공간은 자신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제공하여 건강하고 긍정적인 생활을 지원한다. 스튜디오뿐만이 아닌 도심의 야외에서 벌어지는 여러 요가나 힐링 프로그램도 신체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유지하며, 개인의 정신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COURTESY OF INDUSTRY CITY

지금까지 열거한 이 모든 것은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가치, 행동, 선택이 결정되고 반영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배려의 공간은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지구를 보호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이는 공간의 'affordances'를 활용하여 지구와 생명체에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실현하고, 배려의 원칙을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간적 접근 방식은 우리가 지구를 보호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및 인용

WE LOVE: BULK MARKET

세계 2억 명 채식 사랑… 비건 레스토랑도 확산 _한국경제

Vegetarian YYC

Tsutaya T-site Dog Garden

Trail and tail facebook

These Are The Best Outdoor Yoga Classes In New York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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