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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린 Jun 22. 2022

낀세대의 항변 1

1970년대 생은, 저주받은 세대인가? 축복받은 세대인가?

  얼마 전 뉴스 기사를 하나를 읽었다. <'낀세대'인 X세대, 존재감도 없었는데 잊혀지는가?>란 기사를 말이다. 기사에선 '낀세대'를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럼 686세대(이미 60년대 생들의 반이 60대가 되었으니 이제 그만 586이란 말로 70년대 생들을 욕보이지 말길 바란다.)가 아닌 70년대 초반 세대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낀세대'에조차 끼워 놓을 수 없는 투명인간 같은 세대란 말인가? 

  

  대한민국에 X세대라는 신인류가 처음 등장한 건 1992년이었다. 그해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가히 혁명적인 그룹이 등장해서 그동안의 한국 문화가 풍미했온 기류를 깡그리 바꾸어 놓은 거다. 그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가 1972년 생이다. 그 무렵은 1970년대 초반 생들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고 SNS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니 그렇게 선진화된 문명까지는 바라지 말자. 그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삐삐라는 앙증맞은 기계도 막 대중화되어가려고 기지개를 켜던 시기였단 말이다. 그래서 그 시절엔 모든 문화가 대학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독점되었으며 소비되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90년대 X세대의 문화를 이끌어 간 건 그 당시의 대학생들이었고, 그들의 나이는 정확히 1970년대 초반생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정의해 본다. 진정한 X세대는 1970년대 초반 생들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70년대 생들이야 말로 진정한 X세대고, 80년대 생들은 Y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언론에서 정확히 구분해서 말해주길 바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런 X세대를 기사에선 '낀세대'라고 말하면서 존재감도 없었는데 잊혀져 간다고 말하고 있다. 찐 X세대로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대학 문화에서 찾는 게 빠르다. 70년대 생들의 대학 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는 소위 686세대가 주도한 운동권 문화에 선을 긋기 시작한 세대라는 거다. 


  686세대는 사상으로 엮어 놓은 단단한 연대 의식리란 무기를 바탕으로 똘똘 뭉쳐서 집단 활동을 하던 세대다. 하지만 70년대 세대들은 어린 시절 이미 컬러 티브이에 쏟아내던 MTV 뮤직 비디오에서 개성 넘치는 가수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다. 뮤직 비디오를 통해 서구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라 각자의 개성과 개인적 취향이란 문화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집단 전체주의적 문화를 극도로 싫어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70년대 생들을 686 선배들은 자신들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무진장 애를 썼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70년 대 초반 생들은 686세대에 도매급으로 팔려 넘어가기도 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음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란다. 


  개성과 개인적 취향, 사생활을 중시하기 시작한 세대라 이들은 늘 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 당시 언론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주변 궤도를 빙빙 돌면서 조용히 자신만의 문화를 향유했다. 그렇기에 언제나 686의 주장에 밀렸고, '82년생 김지영'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그 밑 세대들에게도 위축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70년대 생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저주받은 세대', '불쌍한 결핍의 세대'라고 말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 보면, 나는 트로트를 너무 싫어했다. 나의 어린 시절엔 티브이를 장악한 사람은 부모님이셨다. 부모님에게 장악된 티브이 채널에선 늘 트롯이 흘러나왔다. 그 시절엔 퍼스널 컴퓨터도, 모바일폰도 없어서 티브이 말고는 다른 채널이 없었다. 아쉽지만 라디오로 겨우겨우 좋아하는 발라드나 팝송을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니 70년대 생들에겐 트로트가 새롭지가 않은 장르다. 아니 오히려 지겹게 들은 장르가 트롯이다. 70년대 생들이 중고등 학생이었던 시절엔 '주현미'라는 희대의 왜곡된(나의 입장에선) 가수가 나와 학창 시절 내내 내 삶을 파고들어 후비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겨우 나만의 노래를 찾은 것 같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2019년부터 다시 트롯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70년대 생들은 생각한다. 왜 세상은 우리의 모든 취향과는 반해서 흘러가냐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엔 양면적인 것이 존재한다. 우리 같은 낀세대인 70년대 생들도 그렇게 비극적인 세대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어린 시절 골목에서 뛰어놀던 아날로그 세대로 걸음을 떼었다. 마당의 흙을 밟으며 뛰어 놀았고, 하늘의 별도 맨눈으로 보고 자란 세대다. 그렇게 자라서 90년대 PC 통신의 시대를 거쳐, 새로운 밀레니엄의 인터넷 시대를 향유하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로 비대면 생활이 확대되면서부터 NFT나 메타버스 같은 것들이 각광받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점점 새로운 웹 3.0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아날로그의 시대와 웹 3.0의 시대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세대가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이런 이유로 어쩌면 우리, 70년대 생들은 축복받은 세대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모든 인간은 단 한 번의 삶을 산다. 억만장자라고 해서, 지상 최대의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두 번의 생을 살 수는 없다.(아직까지는) 그렇게 한 번뿐인 삶에서 유선 전화 통화만 할 수 있던 아날로그 세상을 거쳐 전 세계가 방 안에 앉아서 하나로 연결되는 디지털 세상까지 걸어왔다. 거기에 또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웹 3.0 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험으로 치자면 온갖 다양한 볼거리가 담긴 세상을 완주하는 것과도 같다. 반복되는 삶은 설렐 일이 없다. 설레는 삶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새로운 것들에 뛰어드는 거다. 그래서 나는 70년대 생인, 낀세대가 어쩌면 제일 스펙터클하고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세상이 보기엔 너무 조용하고 하찮아 보여서 잊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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