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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Jul 12. 2021

지방이긴 해도 시골은 아니거든요!



결혼을 하고 명절 때마다 꼬박꼬박 친정집에를 갔습니다. 한번 안 가기 시작하면 못 가게 된다는 결혼 선배들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명절 기차표 예약 날짜에 알람을 세네 개씩 맞춰놓았습니다. 아침잠이 많아 아침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만 한참 걸리는 저인데 웬일인지 예매 날에는  첫 번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켰습니다. 예매 화면을 띄워놓고 차례대로 울리는 알람을 끄면서 예매 시작 시간이 되길 기다리다 마우스를 누르면 항상 성공이었습니다.

사실, 명절 전날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저처럼 명절 당일에 차례를 지내고 점심때쯤 내려가는 일정은 기차표가 조금은 여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필코 한 번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꼬박꼬박 일어나 매년 따박따박 예매를 했습니다.


어머님은 명절이 다가오면

“올해는 시골 안 가냐?”라고 물어보셨고

저는 얼른

“가야죠 예매했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의중으로 물어보시는지는 몰라도 매년 당연한 것을 물어보시는 것이 조금은 신경 쓰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시골’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지방이라 시골이라고 하시는 거겠지. 그런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달래 보아도 왠지 모르게 들을 때마다 그 단어는

 머릿속에서 파밧 하고 짧게 스파크를 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자꾸만 그 단어에만 크게, 더 크게 불꽃이 튀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친정엘 가려고 준비하던 날이었습니다.

아이 기저귀를 몇 개를 챙겨야 할지 고민하다가 하루 쓸 만큼만 챙겨 넣고는 빠진 게 없나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어머님은 기저귀는 충분히 챙겼냐고 물으셨고 이미 가방에 챙겼다는 제 대답을 들으시더니 대뜸

“여기서 한팩 사서 들고 가지 그러냐” 고 하십니다.

“어머님, 모자라면 마트에서 사면돼요. “


그러자 어머님은 짐짓 놀란 말투로 물으셨습니다.

“마트? 마트가 있어? “

저는 황당한 마음을 누르며 말했습니다.

“네? 네. 롯데마트도 있고 홈플러스도 있어요. “

“아 그래? “ 하고 돌아서는 어머님 등 뒤로 커다란 물음표가 퐁 하고 떠오르는 듯합니다.

하지만 금새 사라지던 물음표.


어머님은 무얼 상상하셨던 걸까요?

물론 수도권에서 태어나 성장하셨기에 지방 쪽은 가보신 적도 별로 없으시단 걸 압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진해라는 도시가 낯선 것도 당연합니다.

결혼하고 처음 가보신 지방이 아버님 고향이신 전라도 구례였을 겁니다.

집마다 제주도처럼 까만 돌담이 쳐져 있고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에 빨강, 파랑 지붕을 한 시골집들.

가게라고는 냉장고 하나에 막걸리와 먼지가 수북이 쌓인 과자가 전부인 곳.

너무 아름답지만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아 학교는 폐교되고 노인들 마저도 줄어 폐가가 늘어가는 그런 시골입니다.


저는 진해에서 태어났습니다.

벚꽃나무가 거리마다 그득하여 벚나무 가지 위에 앉아 찍은 어릴 적 사진이 앨범에 한 장씩은 꼭 있는 곳.

해마다 벚꽃철이 되면 움직이지 않는 버스를 앞질러 흩뿌리는 벚꽃잎을 밟으며 걸어서 학교를 가는 곳.

선생님께 떠들다 걸리면 “난리 *벚꽃장이네”라는 꾸지람을 들어야 했던 곳입니다.


관광도시여서 지방이지만 다른 곳보다 발전이 빠르고

길은 거의가 도로였으며,

롯데리아와 맥도널드가 있었습니다.

전국 체인이라고 생각했던 백장미 로즈 블랑슈라는 빵집에서 밀크셰이크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야 백장미 로즈 블랑슈는 진해에만 있는 체인점이었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그 충격이란.

여하튼 저는 지방이지만 시골이 아닌, 대도시는 아니지만 군이나 면이 아닌 ‘시’가 붙은 도시에서 성장했단 말입니다!


지금껏 어머님에게 시골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튀었던 스파크를 뭉쳐서 어머님께 팡! 하고 돌려 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님에게 그런 건 별 관심사가 아니었던 겁니다.


허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이미 휘저어져서 흙탕물인데, 휘젓지 말아 달란 말을 참고 참았다 했더니 ‘그래!’ 란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고 아직도 흙탕물은 한참을 가라앉는 중이니 말입니다.




지금은 명절에 굳이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 년에 한두 번 친정식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명절이 아닌 평일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옵니다.

기를 쓰고 가려하지 않아도 제가 가고플 때 갈 수 있고

그것이 번잡스러운 명절이 아니라 더 낫다는 것을 느낀 탓입니다.


어머님은 여전히 ‘시골’이라는 단어를 쓰십니다.

하지만 그것에 예전처럼 발끈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의 습관이겠거니 하고 마음에 이는 흙을 한번 꾹 눌러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시골이라는 단어가 주는 촌스러움과 가난함에 집중했을지도 모릅니다.

도시라는 단어가 주는 세련됨과 부유함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요.

남편은 서울에서 성장한 도시남자, 저는 시골에서 자란 촌뜨기란 말을 하시는 것 같아 더욱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방 사람이라는 못난 자격지심 이래도 좋고

시댁 식구에게만 앙칼진 못된 며느리래도 별 수 없습니다.


지금 제게 중요한 건,

제가 태어나 자랐던 진해라는 곳의 아름다움이 아무에게나 허락된 일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늙어서 밑동이 두텁고 가지가 낮은 벚꽃나무들이 바람에

털어내고 털어내도 그득그득 붙어있던 분홍빛 꽃잎.

나무에서 갓 떨어진 꽃잎이 우수수 내리던 풍경이,

가만히 손을 펼치면 살포시 내려앉던 벚꽃잎이,

툭툭 차도 한 움큼씩 낮게 떠오르던 떨어진 벚꽃잎들이,

제 어린 시절 기억의 틈틈이 예쁘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도시 전체에 펄럭이던 만국기 아래 군악대의 행진도

마법처럼 펼쳐졌다 사라지는 포장마차와 상인들의 천막도 참 재미있었다 싶습니다.


아름답고 재미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해준

나의 도시, 진해.

오랜 친구처럼 소중한 나의 도시가 시골이란 단어에 그 값어치가 깍이는 것 같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라 포장해봅니다.


이건, 한 번쯤 외쳐보고 싶지만

유치하다며 깔깔 웃을까봐 하지 못했던 말입니다.


지방이긴 해도 시골은 아니거든요!!!





*벚꽃장은 벚꽃축제를 뜻하던 군항제 이전의 말입니다.

*사진출처 : Unsplash - Mark Tegeth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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