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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Jul 20. 2021

엄마, 나 엄마 성으로 바꾸면 안 돼?


“엄마, 나 엄마 성으로 바꾸면 안 돼?

조 보다 윤이 더 예쁘고 좋아.”


아이의 성은 조 입니다.

요 몇 년간 티브이에 나오는 범죄자들이 왜 이리 조 씨가 많은지 이미지가 퍽 안 좋아진 모양입니다.

매년 고향 선산에서 시제를 지내는데 손주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 말을 꺼내시지만 바쁜 공장일에 아버님 조차 가보 신지 오래되었습니다.

본관과 파를 일러주며 알고 있어야 한다고, 벽장 안에 그득히 쌓여있던 족보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 아이 할아버지가 손녀가 한 저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하시려나 헛웃음이 났습니다.



저 또한 어릴 때 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생기다 만 것 같은 이름 같았고

비슷한 발음의 진희라는 이름이 하도 많아

매번 손가락 두 개를 펴고 브이자를 그리며 2요 2

라고 정정을 해야 했습니다.


차라리 두 글자 이름이면 조금 특별해 보이기라도 할 것 같다는 투정을 한 적도 있습니다. 아빠는 두 글자로 신고하려고 동사무소에 갔는데 직원이 이름이 별로라며 끝에 ‘이’ 라도 붙이라고 해서 그리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습니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성 ‘윤’의 한자 '尹'가 들어가는 ‘이,伊'를 찾아 붙였다고 합니다. 그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말만 듣고  딸의 이름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닐 때쯤엔 이름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져서 개명을 요구했습니다. 입버릇처럼 "이름 바꿔줘." 를 달고 다니던 제게 한 번도 진지하게 응해준 적 없던 아빠가 “그래 바꿔.” 란 말을 던졌습니다.

오히려 눈이 휘둥그레진 제게 아빠는 “뭘로 바꿀 건데?”라고 물었습니다.

그날부터 바꿀 이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 집집마다 있던 크고 두꺼운 노란색 전화번호부를 한 장 한 장씩 넘기며 기역부터 히읗까지 모든 이름을 훑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했습니다.


그냥 제 이름으로 살기로 말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이 이름도 저 이름도 제게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고, 어떤 이름도 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이름이 꼭 맞는 제 이름 같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윤진이' 가 아니면 누구겠어?


그때부터 저는 온전히 그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종종 오해를 받으며 (김윤진이나 정윤진처럼 성이 따로 있냐는 질문을 받으며) 말입니다.



글자가 주는 어떤 이미지나 느낌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듣고 성별이나, 연령대를 예상해버리기도 하는데 보기 좋게 빗나가서 당황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올해 학교에 등교한 첫날에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의 하교 지도를 위해 교문 언저리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다들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여 목을 쭉 빼고 보았지요.

학부모 상담도 대면이 아닌 비대면 전화로 대체되고, 며칠 가지도 못한 등교일수에 학교 정문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여 철창 너머로 외관만 보는 학교이기에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아이 반 선생님의 존함은 *이린아 입니다.

분명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선생님 일 거라 예상했습니다. 상담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발랄’그 자체였거든요. 게다가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학교라 젊은 선생님이 대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인솔해 온 선생님을 보고선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다루는데 능숙한 선생님이셨습니다. 교문 앞에 서있던 학부모들은 놀란 시선을 주고받았지요. 하지만 선생님은 이름과 목소리만큼 젊은 감각과 통솔력을 두루 갖춘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를 한자로 풀이해주다 보니 이런 오해도 생깁니다.


한 번은 9살인 둘째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이봉창이랑 윤봉길이랑 둘 다 폭탄 던져서 봉이야? “

초등 한국사 책에 한참 심취해 있는 아이라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처럼 사후에 지은 시호라고 생각한 걸까요?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름은 태어날 때 짓는 건데 폭탄 던졌다고 봉을 넣어서 어떻게 이름을 지어? 그럼 안중근은 안봉근이야?”

아이가 정색하며 말했지요.

“엄마, 안중근은 총 쏘았잖아!!!”

아, 정말… 창피합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하고 안중근 의사께도 마음속으로 사죄를 드렸습니다.

저 몰라서 그런 것 아닙니다. 안중근 의사님께서 거사 전에 살상력을 높이려고 총알을 갈아놓으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 정말 아닙니다.




미드나잇 아워라는 판타지 책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사라져 버린 부모님을 찾아 나선 소녀에게

부모님의 이름을 들은 어떤 존재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게 네 알의 모양새라면, 멀리멀리 날아가도 괜찮겠다.”


‘알’이 부모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아이의 껍질인 나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때는 단단하게 감싸주고, 날아가야 할 때 유연하게 받혀주고,

멀리 날아갈 때 예쁜 모양으로 남아있어 뒤돌아 보았을 때 아름답게 남아있을 수 있게.


'윤진이'라는 알껍질이 좀 더 반딱반딱해질 수 있게

오늘도 아이의 수다를 들으며 할 말을 삼킵니다.


“그래, 윤 OO 해라, 해.”








*선생님 성함은 비슷한 이미지로 가명을 썼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될까 하여.

*미드나잇 아워 - 벤저민 리드, 로라 트린 더의 판타지 소설로 어린이책으로 분류되어있으나 해리포터처럼 어른들도 좋아하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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