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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Dec 28. 2021

그게 뭐 별거라고 그리 호들갑이야?

초등학생의 토론, 그 정리까지.


아이들의 저력을 발견할 때가 있다.

없었지만, 아예 없었던 건 아니고

서서히 쌓였다가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발현되는 걸 보는 것이니까

발견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 같다.


학교에서 대토론회가 열렸다.

6학년 딸아이의 마지막 토론.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사서 선생님 등 몇 분의 선생님이 청중으로 들어오셨고 타학교 선생님 몇 분도 참석하셨다.

그동안 몇 번의 토론회를 거치면서 아이는 무척 많이 성장했고 토론의 형식도 꽤 익숙해졌다

사회자가 주제발표를 끝내면 찬성팀의 입론서 발표와 반대팀의 입론서 발표로 이어진다. 발표시간은 주어진 시간 내에서만 해야 하고 발표가 끝나면 팀별로 소회의실로 전환된다.

소회의실에서 서로 상대편의 입론서에 반박할 질문을 찾는다. 출처나 근거의 타당성 등에 대해 질문한 뒤 다시 팀별 회의를 거쳐 서로의 입론에 반론을 제기할 시간을 갖는다.

반론이 끝나면 서로의 주장에 대해 서로 질문을 하는 교차질의를 하고 청중 참여자들에게도 질문을 받는다. 각 팀에서 마지막 주장 다지기를 발표한 후 토론은 끝이 난다.


학교의 토론회는 한쪽의 의견으로 결론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음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갖는 것에 의의를 둔다. 해서 서로의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한다. 토론회지만 토의로 끝을 맺는것이다.


하지만 정작 각 팀 발표자들은 그리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일회용품의 사용은 바람직한가’였다. 찬성팀을 맡은 딸아이는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얼굴에 시뻘건 채로 방에서 나와 상대팀 발표자 이름을 잘근잘근 씹듯이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이름이 써진 돌이 제 손에 쥐어져 있기라도 한 듯이 주먹을 쥐고 분노했지만 나의 웃는 얼굴과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너네 팀 자료조사가 너무 빈약했던 것 아니야?”라고 말하자 아이는 내게 한숨 섞인 탄식과 함께 말했다.

“엄마, 일회용품을 쓰자는 근거가 뭐가 있겠어. 이미 찾을 대로 다 찾아봤지. 쓰지 말자는 내용만 잔뜩 있어!”

“아…”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아이에게 들으니 순간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일회용품을 쓰자는 주장의 뒷받침 근거는 반대의 근거보다 빈약할 수밖에. 편리함이 주는 크나큰 이점은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치부하면 끝이다.

나는 수고했다는 뜻으로 그저 아이의 등을 몇 번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누나의 토론에 청중 토론자로 참여했던 둘째 아이가 쓴 노트를 들어 보였다.

“이거 엄마가 쓰라고 한 거야?”

“아니, 엄마 전화 와서 통화하고 왔더니 써 났던데?”

평소 동생에게 무척이나 무관심하던 아이가 ‘이건 인정’이라는 느낌으로 웃어 보였다. 자신의 토론회에 동생이 가져준 관심이 고마워서일까 아니면 어린 동생의 정리가 기특해서일까. 둘 다 비슷한 감정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만.


딸아이와 노트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맞춤법은 엉망인 그 노트를 보면 볼수록 웃음이 피어올랐다.

아이 내면의 저력을 조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이런 종이 한 장 써놓은 걸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1시간 40여분의 시간 동안 자리 이탈 없이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대견스러워했을 것이다. 그 흔한 방문 선생님도, 학원도 다녀 본 적 없는 아이인지라 집에서 문제집 한 장 풀 때도 그렇게 산만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는 아이에게 어떠한 정리도 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 스스로 뭔가를 써야겠다고 느꼈다는 점은 평소 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가장 놀라운 건 도식화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몰랐던 것을 분류하고 질문을 만들기 전 첫 단계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딸아이는 동생의 노트를 가져가서 자료집에 한 장 끼워 넣어주었다. 자료집은 학교 토론 동아리에서 1년에 한 번 1년간 자료를 묶어 발행하는데 남들에게는 어찌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가장 값비싼, 소중한 책이 되었다.

사진첩이 사진으로 추억을 보관하는 것이라면 사진의 자리를 글로 대신한 이 자료집은 좀 더 깊숙한 내면을 드러낸 여러 아이들의 성장 기록이다.

이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딸아이를 대신해 내년부터는 동생이 자료집을 가지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아이의 저변에 쌓여가는 생각하는 힘. 사유의 방.

넓게 쌓여서 보잘것없어 보일지 몰라도

실 한올이라도 부지런히 쌓여가고 있다면 나는 더 바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단속해본다.


그렇지만 아이의 저력을 마주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욕심은 아무 때나 고개를 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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