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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Jan 15. 2022

내 아이의 졸업식

당연했지만, 더는 당연하지 않은 졸업식.


한 해가 시작된 지 7일째 날에

내가 무척이나 기대했던 졸업식이 열렸고,

내 아이는 그토록 하기 싫다던 졸업을 했다.


아이는 학교가 너무 좋아 졸업이 싫다 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너무 좋고, 반 친구들도 너무 재밌어서 헤어지기 싫다며 텅 빈 교실에 혼자 교과서를 챙기러 갔다가 울고 돌아왔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 발표되던 주에 학교에서는 교육부 공문을 받아 3학년 이상 학부모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방학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인지라 안전하게 가정 보육하려는 학부모들이 많았는지 투표 결과가 전면 온라인으로 결정이 났다. 학교에서는 졸업식 또한 학사과정이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안내와 함께 운동장 포토존 여부를 물어왔다.

졸업식까지 포함이라니, 그걸 어떤 학부모가 예상했을까?


하필 마지막 등교일이었던 금요일에 아이는 학교를 가지 못했다. 동생 반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한 반 전체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아이는 밀접접촉자의 동거가족으로 등교 중지에 해당했다. 아이는 교과서도 챙겨 오지 못해 주말에 혼자 책을 챙겨 와야 했고 이대로 온라인 졸업식이 열린다면 그토록 애정 했던 학교를 인사 한번 제대로 못하고 떠나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코로나로 둘째 아이 입학식을 못했을 때도, 초등학교 1학년이 등교한 날짜가 손에 꼽을 정도였을 때도 속상하긴 했지만 이 만큼 허탈하진 않았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에 누구 하나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니 학교 또한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 전 3주를 온라인 수업을 하고도 졸업식에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다는 사실에 꽉 막힌 체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눈이 핑그르르 굴러갔다.


처음으로 학교에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께 전해주겠다는 말만 듣고 끊어야 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기를 들었으나 똑같은 대답과 이런 의견을 내신 분이 몇 분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뭐라도 해야겠는데 6학년쯤 되면 학부들끼리 모일 일도 연락할 일도 없으니 아는 이들이라고 해야 저학년 때 알던 몇 명이 전부였다.


학교 홈피를 살펴보았지만 게시판은 없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라곤  아파트 커뮤니티 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는 아파트 4개 단지가 하나의 초등학교를 보내는 과밀 학교다. 4개 중 하나에 불과한 아파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어떤 변화가 있기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학부모들이 알았으면 했고 자신의 의견을 학교에 전달해 주길 바랐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교 담임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교장선생님께서 졸업식 관련 회의를 열겠다고 하는데 참석이 가능하냐는 연락이었다. 몇 시간 만에 온 연락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학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어 나는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말 졸업식을 대면으로 바꿀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서류상 끼워 넣을 핑계가 필요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하루 동안 교육부에서 내려온 자료를 찾아서 뒤졌다.  수도권 학교의 밀집도 권고사항과 학교장 재량에 따른 변경 가능 여부, 온라인은 지양하라는 보도자료를 출력하고 교육청에 문의 전화를 했다. 내 해석이 맞는지 확인하고 회의에 가서 할 말과 순서도 정리했다.


2주간 전면 온라인 후에 아이들만의 대면 졸업식을 설득해보고, 거부하면 학교 설문조사의 타당성을 따져 볼 생각이었다. 학부모 참석은 바라지도 않으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아이들끼리 인사하고 사진 남길 시간만 마련해 달라고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함께 참석한 타반 대표는 1, 2학년과 함께 등교 시 밀집도에 문제가 있다면 오후 졸업식을 해도 된다고, 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말했다. 아이의 ‘대면 졸업식’이라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돼버린 이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했다.


회의는 학년 부장 선생님이 작성해오신 두 개의 계획안으로 급물살을 탔다. 학부모 대표들은 전원 대면 졸업식을 택했고 교사진들은 반대표를 내지 않으셨다.

몇몇 교사는 깊은 우려를 표했지만 학부모들의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교장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대면 졸업식으로 확정 지어 주셨다.

며칠간 머리를 싸맸던 문제가 시원하게 풀렸고 끙끙거렸던 속과 달리 최대한 쿨하게 “대면 졸업식으로 결정 났어”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그저 뜨뜻미지근하게 “오, 좋지” 하고 답했다. 폴짝폴짝 뛰며 “엄마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건 초2까지인듯하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알리느라 바쁜 아이를 보니 ‘좋은 거겠지’ 하며 내심 뿌듯해졌다.


코로나는 호흡기 관련 전염병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우리에게 뺏어가는 건 건강뿐만은 아니다. 코로나는 사람들 사이에 두려움과 불안감을 조성한다. 코로나를 막기 위해 세워진 투명 가림막은 비말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세웠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급식실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밥을 먹는다. 콧물이나 작은 기침에도 친구들 앞에서 집으로 되돌려 보내질까 불안해하고, 어쩌다 확진자가 된 아이는 끝없는 부모의 사과를 보며 친구들의 놀림에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

슬픈 코로나 시대이다.


내 아이의 졸업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졸업식 전 열흘 동안 아이 동생을 학교에 등교시키지 않았다. 혹여 반에 확진자가 나오면 누나는 졸업식을 못하게 되니 말이다. 또한 둘 다 학원도 보내지 않고 자발적인 자가격리를 했다. 아이의 졸업식 참석을 위해서.


한 해가 시작된 지 7일째 날에

내가 무척이나 기대했던 졸업식이 열렸고,

내 아이는 그토록 하기 싫다던 졸업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차가운 겨울을 꿰뚫는 쨍한 햇살이,

내 아이의 졸업식을 함께해주어 좋았던 날.


꽃다발을 들고 ‘졸업 축하해’ 란 말을 인사처럼 하며 찍는, 뻔하디 뻔한 졸업식 사진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아이가 6학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아쉬운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아이의 인생 한 칸에 작은 마침표가 찍히는 동시에

시작의 큰 따옴표가 떠올랐다.

맞춤법에서는 틀릴지 몰라도 하나의 쉼표가 되어 줄 이 한 칸이 아이의 기억에 행복하게 채워졌길 바라며,


늦은 졸업식 후기를 늦은 새해 인사와 함께 올려본다.



어슬렁어슬렁, 새해 복 가득 가지고 범 내려온다. 

희번뜩한 눈으로 노란 복 보따리 내려놓고

씩 웃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Picture by Taisiia Shestopal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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