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방패
아이가 자신이 똑똑한 줄 알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나씩 세어가며 대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아이의 말을 해체하여 조목조목 반박한다. 아이가 같은 말을 다시 하면 아이가 한 말과 내가 한 대답을 하나씩 다시 읊어준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이가 근거 없는 말을 무기를 휘두릇이 내던지는 것이 퍽 맘에 들지 않아서이다. 아이의 말을 나는 크고 단단한 방패로 남김없이 쳐낸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초3인 아들은 또래보다 키도 몸집도 작다. 키가 작은 아이가 바닥에 앉으면 거실 테이블이 높아서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안타까워서 인터넷에서 바닥에 놓는 접이식 의자를 하나 주문했다. 그 후로 아이는 그 의자에만 앉았다. 의자에서 책을 보고, 레고를 맞추고 티브이를 보았다. 그런데 갈수록 아이의 자세가 이상해져 갔다. 의자에 바르게 앉은 것이 아니라 엎드려서 의자를 흔들거리게 만들어 놓고 문제집을 풀었다. 몇 번이나 하지 말라는 말을 했었는데 어제는 보자마자 화가 났다.
“너, 엄마가 그렇게 엎드려서 문제집 풀지 말랬잖아. 그게 차 안에서 푸는 것과 뭐가 달라? 눈도 나쁜데 더 나빠지잖아. 내일 가져다 버려야겠어”
나의 급작스런 공격에 아이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뭐할 때 더 좋은 거 없어?”
내가 화를 내면 아이가 행동을 고치며 미안한 표정을 할 줄 알았던 나는 이 두리뭉실한 질문에 어이가 없었다. 또 말도 안 되는 말을 갖다 붙일 건가 싶어 방패를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뭐할 때 더 좋은 거? 그런 건 상황에 따라 나뉘는 거지. 뭐할 때를 말하는지 정확히 말해! “
아이는 되려 화를 냈다.
“내가 그걸 잘 모르겠으니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엄마가 가까운 데 가는 거면 걸어가는 게 좋고 멀리 가는 거면 차를 갖고 가는 게 좋겠지. 그건 상황에 따라 나뉘는데 뭐할 때 더 좋은 게 없냐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순간 아이가 눈을 빛냈다.
“거봐 엄마도 멀리 갈 때 차를 가지고 가는 게 좋잖아. 근데 누가 차를 없앤다고 하면 엄마는 좋겠어?”
순식간에 아이가 하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자신에게 좋은 의자를 없애겠다는 말에 항의하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예시를 들기가 어려웠을 뿐이었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말이 안 되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말이 되는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기특했다. 내가 깔깔대며 웃자 아이가 멋쩍게 다가왔다.
“왜 웃어.”
“그러네. 엄마도 뭐할 때 더 좋은 게 있는데 누가 없앤다고 한다면 싫겠네. ”
“거봐”
아이가 내 품에 안겼다.
“그래도 엄마는 네 눈이 나빠질 까 봐 너무 걱정되니까 반대로 앉아 흔들거리는 건 하지 마.”
“응.”
“근데 말 잘했어. “
아이가 씩 웃었다.
인정.
아이를 키우면서 필요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육을 지나 교육의 시작점에 들어섰을 때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인정인 것 같다.
너의 의견을 인정해.
너의 생각을 인정해.
부모의 인정으로 아이는 더 큰 만족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성장에 안정된 발판으로 삼는다.
아이는 나쁜 감정을 무기처럼 발산하지 않았다.
나쁜 감정을 몸에 담아 온 몸으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내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 인정 인정!”
아이는 마치 엄마와의 싸움에서 번번이 이기는 승리투수처럼 의기양양해져 가고 있다.
아이가 크고 있다.
p.s 내 방패는 요즘 새로운 기능이 생겨 업그레이드되었다. 중1 딸이 호르몬의 영향인지 초3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늘어놓을 때가 있는데 그때 방패는 “그거 아니야. 다시 생각해봐.”를 재생한 후 침묵의 기능으로 전환된다.
Pitcure by Annie Spratt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