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인라인과 글쓰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이것저것 많은 걸 시켰었다. 더 크면 할 시간이 없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에 수업을 같이 하자는 권유는 받는 족족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다른 수업이 생겼을 때 불러주지 않을까 봐 불안한 마음 반, 첫째 아이를 키우는 미숙한 엄마로서의 불안함 반이었다. 내겐 불안함으로 시작해 버거움으로 이어지던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며 듣는 수업에 별 불평이 없었다. 꼭 배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친구와 함께 다니니 배울만해. 정도의 느낌이랄까.
인라인 스케이트도 그런 수업 중 하나였다. 우리 클 때 누가 그런 수업을 돈 주고 배우냐는 남편의 말에도 당당하게 말했었다. 애가 운동신경이 떨어지니 잘 타진 못해도 타다가 크게 다치진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지금 생각하면 평생 탈 일도 없는 인라인, 자기가 타고 싶으면 그때 타도 된다고 과감히 패스했을 수업이다.
몇 달을 인라인 가방을 메고 달려가 아이 발에 신기고 보호장비까지 휘감아 내보냈지만 지금 아이는 인라인은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다 한 번 신겨 봤더니 휘청대기만 한다. 아이는 이 인라인 수업을 하고 남은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나마 다행인지 나는 크게 배운 점이 있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다 보면 인라인이 일렬로 되게 발을 번갈아 가며 앞 발 뒤에 뒷발 앞 코를 콩 하고 찍는다. 이 과정이 무척이나 어려운지 아이들은 발을 들다가 앞 발이 흔들려 넘어지거나 아예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그러면 인라인을 신겨주고 의자에 앉아 수업을 구경하는 학부모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선다.
“들어, 들어!"
“뒤로 찍어야지 뒤로!"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외치는 소리가 커지자 코치가 달려와 그 사이를 막고 섰다.
"어머님들~ 앉아서 보니까 쉬워 보이시죠? 이게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세요? 혹시 한 번 해보실래요?"
그제야 학부모들은 멋쩍게 웃으며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때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과의 괴리를 깨달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쉬워 보인다는 것도,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그런 목소리를 내지도 못 할 만큼 수줍은 사람인지라 아이에게 소리치진 않았지만 앞으로 아이가 하는 모든 것에 더 조용해져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나도 잘 못 쓰는 글쓰기를 누구에게 가르치고 있는지 반성하면서도, 한 글자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아이부터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글을 한 바닥 가득 쓰는 아이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가르친다.
아이들의 생각은 엉킨 실타래 같다. 온갖 생각들이 여기 불룩, 저기 불룩 튀어나와 있다. 색깔도 굵기도 다양하게 엉킨 실타래. 하지만 그 끄트머리를 잡아당기면 신기하게도 생각이 풀려 나온다. 술술. 게다가 비유도 예시도 자유자재다. 틀린 예시를 말하면 ‘그거와는 좀 달라’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예시를 찾아온다.
내가 하는 일은 아이들의 생각이 풀려 나올 끄트머리를 찾아 주는 것과 다 쓴 글을 조금 더 매끄럽게 이을 수 있도록 문맥에 대한 생각을 흘리는 것, 딱 두 가지이다.
왼쪽의 글은 공부에 대한 생각을 써보라는 말에 온몸을 뒤틀며 싫음을 표현하다가 혼자 아무렇게나 쓴 글이다. 그리고 오른쪽은 아이의 생각을 묻고 충분히 이야기한 후, 문맥을 정리해가며 쓴 글이다. 아이가 글을 고쳐 쓰기까지 대략 30분이 걸린 듯하다.
아이의 글에 나는 얼마나 많은 칭찬을 했는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았다. 기특하고 또 기특했다.
나는 아이가 쓴 문장에 감탄하고 환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내 반응에 의아함을 실은 눈빛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와 학부모 사이의 인라인 스케이트 코치처럼 외치고 싶어 진다.
직접 써 보시라고.
한 문장이라도 직접 써보시고 말씀하시라고.
불변의 진리,
쉬워 보인다고 쉬운 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글은,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반짝인다.
Picture by David Pennington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