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구석으로 가 처박힌 문제집을 들어 올렸다.
몇 장은 접히고 몇 장은 찢어진 문제집을 내려다보니 창피함이 물밀듯 올라왔다. 아이 앞에서 물건을 던지다니, 조금만 참지, 왜 이렇게 욱했지? 하지만 저 깊은 곳에서 치솟던 느낌은 선명했다. 감당이 안 되는 감정이 머리끝을 뚫고 날아가버렸다. 그 감정은 아이의 문제집을 안고 스스로를 불사르며 떨어졌다. 한심하다. 그런데 더 한심한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아이가 못 나가게 문을 막고 앉아.
-구둣주걱 헤라, 그게 소리가 커.
저마다 아이 훈육하는 방법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애를 왜 때리냐고 했다. 때리면 말을 잘 듣긴 하는 거냐고.
“애 엄청 이뻐하면서 도대체 왜 애를 때려? ”
-요즘 걔 장난 아니야.
-이미 나는 화가 났으니까.
나는 요즘 내 아이가 장난 아니게 많이 놀면서,
풀라는 문제집도 안 풀어 화가 났다.
그리고 아이에게 풀라고 펴 놓은 문제집을 들고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직접 때리는 게 나았을까?
물건을 던지는 게 그나마 조금 나았을까?
뭐가 더 나은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없다. 둘 다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문제집을 던지고 나자 마음이 가라앉았다는 거다. 뿜어져 나가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가라앉았다.
접시를 쌓아놓고 던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부스가 있었지 아마? 멀쩡한 그릇은 아니었다. 이가 나가고 헌 접시였고 돈을 낸 만큼의 접시를 들고 벽에다 던지면 와장창 박살이 났다. 혹시 내게 그런 공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접시와 감정을 던져서 깨부수는 쓰레기통 같은 공간.
‘사과를 해야 해.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걸 인정하고 사과해야지 아이도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 꺼야. ‘
생각과 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보다 30년을 더 살았어도 여전히 사과가 쉽지 않은 어른 아이다.
아이가 슬픈 얼굴로 내 눈치를 본다. 아이의 슬픈 얼굴도, 눈치를 보는 눈동자도 날 슬프게 한다. 그러게 왜 던져서는. 문제집의 찢어진 귀퉁이에 맘이 싸아. 소리를 낸다. 자국이 남았네. 문제집에도 아이의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움푹 파인 자국이 남겠네.
말없이 앉아 숨을 내쉬었다. 아이를 바라보고는 팔을 벌렸다. 아이가 와서 안긴다.
반칙이지. 이건 반칙이지. 사과도 안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다니. 아이가 날 달래주고 있잖아. 내가 어른인데! 그런데 아이가 위로가 된다. 내게 둘러진 아이의 팔과 내 머리 옆에 붙은 아이의 머리가 다정하다.
“엄마가 문제집 던져서 미안해.”
아이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응!”
“초콜릿 우유 먹을래?”
“응!”
일어서서 주방 쪽으로 걸어가는 내게 아이가 말한다.
“엄마, 몇 장 풀어? 3장? 4장?”
“풀 수 있는 만큼만 풀어.”
“아니야, 엄마가 정해줘. 정해 준 만큼 풀게 진짜! “
“그럼 4장 풀어.”
“4장? 아, 너무 많은데?”
“정해준만큼 푼다며?”
“아, 너무 많은데.. 3장? 3장 풀게! 지금 바로 풀게! “
“왜 물어봤어? 네 마음대로 할 거면?”
다시, 시작이다.
때론 다정하고, 때론 능글맞고, 때론 이뻐 죽겠는 아이와 문제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끝없는 대화가 오고 간다. 일단 초코우유 하나 먹으면서, 엄마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
“엄마가 문제집 던진 얘기는 금지. 사과했잖아.”
갑질이다. 엄마 갑질.
하지만 또 아이의 문제집을 던지면 다시는 문제집을 사지 않을 거다. 문제집 풀라는 말을 아예 할 수 없게. 엄마가 아이의 문젯거리인데 문젯거리가 문제를 풀라고 내미는 건 웃기잖아.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
시, 시, 시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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