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을 여는 기도
신경과 의사의 가장 우선되는 목표는 뇌전증의 발현을 멈추는 것이다. 뒤따라오는 부작용이나 부수적인 어려움들은 지금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기를 초마다 고꾸러뜨리는 발작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가장 긴급한 과제였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많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지 못해서 수년간, 혹은 평생 뇌전증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맞는 약을 찾더라도 부작용 없이 발작만 딱 잡아내는 용량을 확정하는 것은 매우 예민하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작업이다. 화음이의 담당 신경과 의사는 앞서 복용 중이던 약의 용량을 조금 늘리고 부작용의 위험을 안고 있는 새로운 약을 동시 투약해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수를 생각하기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아기의 고통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의사의 판단에 동의했다.
아기의 작은 몸이 발작으로 흔들릴 때마다 나는 아기의 고통을 눈으로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워 아기를 꽉 끌어안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기의 발작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함께 느끼면서 나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매 순간 처절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끝내 붙들어 잡은 신앙의 끈도 아기가 발작할 때마다 조금씩 녹아 곧 떨어져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교회 권사님 중 한 분이 담임 목사님께서 치유의 은사가 있으시니 직접 찾아가 기도를 부탁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는 무엇이든 붙들어야 했기에 그 권사님의 말이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 말이 하나님의 계시인 것처럼 나는 반짝 정신을 차리고 목사님께로 달려갔다. 비가 내리는 오전, 교회 본당과 교육관을 잇는 다리 위에서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다. 목사님의 기도는, 질병의 완전한 굴복을 기대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지금의 상황을 통해 이 가정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더 굳건히 하고 하나님의 뜻하심을 깨닫게 되는 기회”이기를 구하셨다. 나는 ‘아멘’ 했지만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절박한 나의 심정으로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셨던 가시적이고 폭발적인 하나님을 기대했다. 아기를 괴롭히는 몹쓸 질병이 기도 한 번으로 싹 사라져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나는 목사님의 기도가 이어질수록, 한껏 부풀었던 소망이 구멍 난 풍선처럼 푸시익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고린도후서 12:9
바울의 몸에 남겨두신 ‘가시’처럼 화음이의 연약함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남겨두실 거라는 씁쓸한 확신이 들었다. 마구 달음질치던 내 마음이 실망과 깨달음으로 뒤엉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여전히 아이의 뇌전증이 즉각 멎기를 기도했지만 내가 기대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의 일대일 성경공부 리더를 맡고 있던 언니로부터 자주 안부 전화가 왔었다.
나는 언니에게 지금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호소했고 울면서 기도 부탁을 했다. 언니는 이성적인 사람으로 상황에 대한 판단과 위기 대처 능력이 나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언니의 현실적이고 다소 냉소적인 반응에 때때로 흥 토라지기도 했지만 그가 건네는 위로의 방식이 그 누구보다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번 언니에게 고해성사하듯 미주알고주알 다 터놓곤 했다. 그날도, 아기의 멎지 않는 발작에 대해, 나의 의심과 고통에 대해 두서없이 하소연하고 있었는데 흔들림 없이 듣고 있던 언니가 말했다.
“나는 너가, 화음이의 연약한 육체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그 아이의 영혼이 얼마나 깨끗하고 안전한지 볼 수 있기를 바래. 하나님 안에서 화음이의 영혼은 더없이 완전하고 정결하다는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위해서 나는 기도할게.”
그 말은, 그간 나를 옭아매었던 병든 육체의 감옥에서 내 영을 해방시키고 발작으로 빛을 잃은 아이의 눈 속에서 자유로이 뛰노는 티 없이 맑은 영혼을 보도록 만들었다. 육체에만 고정되어 꽉꽉 닫혀있던 나의 영안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감히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엘리사가 시종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군대를 목도하게 한 것과 같은(열왕기하 6장) 감격과 놀라움이 나에게도 어렴풋이 체험되는 순간이었다.
아기의 육체는 여전히 촌각을 다투며 사투를 벌였지만 나는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아기를 안고 찬양을 불렀다.
훗날, 이 모든 시련의 시간들이 지나간 후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나의 영안을 깨워주었던 언니의 딸이, 선율이에게 써 주었던 그림일기를 발견하였다. 나는 부끄럽게도 그 무렵의 선율이가 어떤 모습으로 그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꼴깍꼴깍 넘어가는 둘째 아이를 끌어안고 마치 세상에 너와 나 둘만 있는 것처럼 절절하게 매달렸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읽어낼 여력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선율이에게 그날들의 기억에 대해 묻지 못했다. 그저 아이의 기억이 바래져 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다 마주친 선율이를 향한 두 살 위 언니의 그림일기는, 나를 끝끝내 울게 했다.
나보다 두 살 위 리더 언니도, 선율이 보다 두 살 위 그녀의 딸도, 그 당시 우리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든든한 위로의 천사들이었다. 영적 싸움은 결코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다. 쉽게 끊어지지 않는 기도의 삼겹줄로 우리 가족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세심하심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된다.
신경과 의사의 공격적인 처방은, 잠들지 않고 폭주하던 화음이의 발작을 서서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비록, EEG(Electroencephalography)에는 발작 에피소드가 여전히 기록되었지만 적어도 육체 밖으로 발현되는 것은 막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화음이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육체의 연약함을 뛰어넘어 영적 세계를 살아가는 법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 가족을 둘러싼 공동체의 울타리가 얼마나 단단하고 끈끈한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