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족관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으며

by 채플힐달봉

화음이의 발작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뇌전증(seizure)은 엔젤만증후군 아이들의 약 90%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화음이가 모든 치료과정에서 조금씩 발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추세라면 비록 ‘정상’은 아니더라도 그 가까이쯤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 아이는 그 90%에 속하지 않을 거라고, 그 끔찍한 경련만은 비켜갈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엔젤만증후군 아이들의 경련이 발병하는 시기는 만 1세에서 3세 사이다.


화음이가 만 1세를 지나 해를 넘어가는, 2014년 겨울이었다. 가벼운 계절 감기를 앓고 있던 화음이가 해열제를 모두 토해내면서 까무러쳤다. 뇌전증의 첫 발현이었다. 일시적인 에피소드이기를 바랐지만 그날 이후,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바닥으로 퉁 고꾸라져 몸을 떨었다. 아기의 눈은 초점을 잃고 허공에 고정되었다. 나로서는 도무지 아기의 머릿속에서 어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심장을 쿵쿵 때리면서 제발 아기의 모든 신경들이 제 기능을 찾아 안정되기를 기도했다. 아기는 밤에도 발작을 일으키며 잠들지 못했다. 나는, 혹시 모를 추락을 막기 위해 아기와 혼연일체가 되어 24시간 인간 쿠션이 되었다. 아기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심장의 피가 졸아드는 기분이었다. 아기와 나는 함께 말라갔다. 신경과 의사는 아기가 너무 어려 약을 함부로 쓸 수 없다고 했다. 가장 안전하고 순한 약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약 복용을 시작하고서도 한 달 가까이 차도가 없었다. 나를 한껏 고무시키며 성장하던 발달 곡선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아기는 발작 중간중간 희미하게 웃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화음이의 뇌전증 에피소드는 크게 세 가지 증상으로 나타났다.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퉁 떨어지는 것과 눈을 빠른 속도로 깜빡이는 것,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세 가지 에피소드는 초 단위로 번갈아가며 발생했다. 세 가지 에피소드가 반복되다가 갑자기 눈이 뒤집히고 몸이 떨리는 급성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이 5분 이상 지속되면 응급이기 때문에 911을 불러야 했다. 나는 화음이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아기를 끌어안고 윽윽 울음을 참아가며 시간을 쟀다. 다행히 1-2분 만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기의 발작은 나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피도 눈물도 모두 말라 심장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한국에서 친정엄마가 나를 돕기 위해 급히 날아오셨다. 아기를 붙들고 있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딸을 위해 시차적응을 할 새도 없이 모든 살림을 떠맡으셨다.

그럼에도, 번번이 마주하게 되는 딸의 고통 앞에서 속절없이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셨다.


처방받은 약이 듣지 않아 결국 입원 하기로 결정했다. 화음이의 병실은 어린이병원 5층에 있는 간질병동이었다. 뇌전증으로 입원한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애끓는 엄마들의 울음소리가 벽을 타고 온 병동에 울렸다. 병원 문 밖 한 블록만 벗어나도 이런 고통이 존재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건강한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웃음을 머금고 뛰어다니는데 차가운 병원 벽 안에 갇힌 아이들은 죽음의 경계에서 표정을 잃고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병동 바깥 엘리베이터 앞에는 수족관이 하나 놓여있었다. 남편이 퇴근 후 나와 교대해 주면 그제야 나는 아기와 분리될 수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엘리베이터 앞에 놓인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숨을 골랐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 채 고통스러운 신음조차도 그저 웅웅 거릴 뿐인, 물속 세상은 평안해 보였다.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눈으로 좇으면서 나도 그 헤엄을 따라 무리 속에 끼어 고통 없이 자유롭고 싶었다. 그렇게 멍하니 그들의 헤엄을 부러운 마음으로 관찰하고 있었는데 한 방향으로 일제히 헤엄쳐나가던 열대어들이 뭐에 놀랐는지 일순 팟, 하고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한쪽 지느러미를 다친 물고기 한 마리가 죽을 둥 살 둥 무리를 좇아와 겨우 그들에게 닿았던 것이다. 흩어진 물고기들은 아픈 녀석을 피해 반대 방향에서 다시 대열을 정비한 후 아까와 같은 모양으로 무심하게 헤엄을 쳤다.

무리에게서 소외된 녀석은 한쪽만 남은 지느러미를 죽을힘을 다해 휘저으면서 다시 무리들을 향해 헤엄쳐 갔다. 녀석이 닿으면 무리는 또다시 팟, 하고 흩어졌다. 그 안타까운 패턴은 고장난 레코드판이 같은 구간만 반복재생하듯이 무한으로 이어졌다. 나는 어느새 수족관에 코를 박고 서서 한쪽 지느러미를 잃은 그 녀석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몰입한 내 시선은 매정하게 흩어지는 무리들을 한껏 흘겨보았다. 못된 녀석들 같으니라구!

그러다 문득, 어쩌면 무리들이 아픈 녀석을 돕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기술을 빨리 습득할 수 있도록 다소 모질긴해도 끊임없이 반복 훈련을 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시선이 불쑥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한쪽 지느러미로 고군분투하는 녀석의 반대편에서 무리들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힘내, 다시 한번 해 봐.’ 하는 것만 같았다.


다친 물고기를 이 수족관에 넣은 것은 수족관 관리자의 의도였을까, 우연이었을까. 그것이 의도된 장치였든 아니었든 간에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 것만은 분명했다.

하나님께서, 간질 병동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꼴깍꼴깍 사투를 벌이는 어린아이들을 절대 혼자 두지는 않으셨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녀석을 응원하는 나처럼, 하나님도 아이들을 바라보시며 안타깝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계시리라.

천사들의 무리를 아이의 주위에 세워두시고 포기하지 말고 전진하도록 힘을 보태고 있으리라. 아이의 초점 잃은 눈은 어쩌면 천사들의 응원소리에 고정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실제로, 우리 병실에는 교회 가족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그들의 기도와 격려는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아이의 침대를 둘러쌌다.

어느 오후, 화음이의 영아부 선생님이 헬륨 풍선을 들고 방긋 웃으며 병실 문을 열었을 때, 그 선명하고 발랄한 색의 풍선이 둥실 떠오르며 온통 회색뿐이던 병실의 칙칙함을 몰아내었다.

그래, 아가야. 우리 좀 더 힘을 내보자. 너를 응원하는 모두의 바람처럼, 너를 고꾸라뜨리는 몹쓸 경련을 휘휘 몰아내고 우리 이 병실을 하루빨리 발랄하게 둥실, 떠올라 벗어나 보자!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