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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Aug 13. 2020

당신이 살아난 것이 정말 원하는 일이었느냐고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 회진에서 신경외과 교수는 보호자를 찾았다. "환자분 보호자 되시죠? 지금 상황이 아주 안좋습니다. 뭐, 앞이 안보이시게 된 건 차치하고라도 우선 사실 수 있을지가 관건이에요." 


저 짧은 문장 안에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건만, 저 말을 듣고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앞이 안보이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그 일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당신이 살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은 살아 있게 되면 가장 큰 어려움이 될테지만, 그마저도 '살아 있어야' 가능한 걱정거리니 당장은 소용없다는 이야기.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삶에서 써 온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꼬박 2년을, 나는 당신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신 머리에 관을 새로 꽂기 위해 수술실 앞 대기 의자에서 밤을 꼬박 새울 때도, 실은 나, 당신이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을 했었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무감각하다. 나도 그랬다.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를 맡고, 감각을 느끼는 모든 것이 아직 잃지 않고 가지고 있는 기능들임에도 잃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모든 건 '당연'하다. 당신에게 그 당연했던 감각 하나가 사라졌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실을 당신이 듣게 된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할까. 


환자의 정신적 삶은 갈림길에 선다.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 살 것인가, 그것과 결별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인가의 양자택일. 선택은 쉽지 않고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그건 어느 쪽이든 나의 삶은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다는 것. 이제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는 단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환자의 정신은 자신의 삶을 향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데, 당신에겐 그 기로에 서서 스스로의 운명을 마주하고 고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사고를 당하고, 그 이후에는 의식이 불분명한채로 2년을 보냈다. 당신의 인간적 존엄성은 전부 타인의 선택에 매달려 있었다.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고, 심지어 존재에 대한 기억마저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당신은 거기에 있으나 실제로는 거기에 있을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이 어쩌려고 그렇게 간호에 매달리느냐, 그러다 남편이 잘못되면 당신 인생은 어떻게 할거냐고 물을 때 나는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뾰족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어 늘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긴 시간이 흘러 이제 그 대답을, 그것도 어렴풋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당신이 당신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당신을 혼자 둘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데 그런 당신을 어떻게 혼자 두겠는가. 멍-하니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고, 심지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누구나 살면서 자신을 놓치는 순간이 온다. 그게 꼭 남편처럼 사고를 당하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은 나 자신을 놓치고, 헤매인다. 당신이 어디서 헤매이든, 그 곁을 지켜야 했다. 당신이 당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래야만 했다. 




어느 새벽에 당신이 말했다. "아내야, 이제 내 눈이 진짜로 안 보이나보다." 그리고 가만히 들리는 숨소리. 우리 사이에 저 말이 그대로 머물었다. 나도 당신도 저 말에 무엇을 더 보태지도 어떤 결론을 내리지도 못했다. 그렇게 당신은 의식을 되찾았고, 잔인하게도 그대 앞에 또 다시 삶이 펼쳐졌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체성 앞에 서 있는 당신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 이렇게 살아난 것이 어떠냐고, 당신이 정말 원하는 일이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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