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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ul 30. 2020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늙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지표들이 있다. 인터넷 안에는 정말 천재가 넘쳐난다. 


1)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의 마지막 문장을 믿지 않게 되면 늙은 것이다.

2) 만화 둘리를 보면서 둘리 일당보다 고길동이 불쌍해 보이면 늙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젊은이들은 둘리를 모를 수도 있다.)

3) 인사하는 목소리가 우렁차면 늙은 것이다.

.

.

.

하아. . . 여기까지만 하자.  


(마음을 추스르며) 나는 저 뒤에 '4) 희망, 행복, 좋은 일 따위의 단어에 경미한 두드러기 반응이 생기고 왠지 저런 단어를 순수한 마음 그 자체로 믿는 다는 게 쑥스러워지면 늙은 것이다.' 를 추가하고 싶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그 좋은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늙은이(?)들이여! 일어나서 두드러기 나는 단어를 외치자! 


우리는 문득 알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만화나 소설에서처럼 인생이나 삶이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갑작스런 해피엔딩은 없다는 걸. 어디 그뿐인가. 끝나버린 이야기에 바득바득 살을 붙인다. '그 둘이 매일 행복할거라고? 웃기시네! 매일 지지고 볶겠지. 그게 인생이라고!' 


그건 눈물이 줄줄 흐를 만큼은 아니지만, 산책길에 문득 가슴이 찌릿한 정도의 변화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지점을 통과해버렸다는 느낌이다. 이제는 너무 순수해서 민폐인 시절이 가버렸구나 하는 애틋함이다. 말을 줄이고 지갑을 열어야 할 시절이 도래했다는 빈정상함이다. 누가 궁금해하지 않으면(설사 조금 궁금해한다고 해도!) 나서서 내 얘기 같은 건 꺼내지 말자, 다짐을 해보는 날들. 


그렇다고 내가 몇 해 전의 나와 굉장히 달라졌느냐(혹은 철이 들었느냐) 묻는다면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답은 '아니오.'다. 나는 여전히 못난 나다. 서툴고 겁 많고 잘 울고 소심하다. 그런데도 이상한 그 느낌은 지울 수가 없는 거다. 순수한 눈망울을 하는 게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만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그 느낌 말이다.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늙어도 내 삶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덜 운다고 마음의 상처가 덜 깊은 건 아니니까. 젊은 날보다 늙어갈 날이 훨씬 많이 남았다는 걸 알게 되면 삶은 더 애틋해지곤 하니까. 


그래서 저 문장이 좋다. 희망이라는 말을 다시금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게 해줘서. '아니야, 어른도 순수를 갖고 있어. 나는 그런 어른이 좋더라.'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좋은 일만 있을거야." 라는 말을 믿지 않게 돼서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던 나에게 반박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나는 무조건 행복할 것이어서 괜찮은 게 아니다. 그 모든 시간을 딛고 지금 여기에 서 있기에, 그 모든 과거가 헛된 것이 아니기에 괜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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