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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ul 09. 2020

삶이 쉽다거나 확신에 차 있다는 건 아니다

*제목은 메리 올리버의 책에서 따왔습니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마음산책)


불안한 영혼에게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십 대의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 굳건한 진심, 변치 않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들만이 불안하고 불안정한 내 영혼을 달래줄 수 있을거라고, 위로해줄거라고 믿었다.  


지금은 그 모든 '확실하다'는 것들이 실은 인간의 나약한 영혼에 기댄 더 나약한 주장들일 뿐이라는 걸 어렴풋이 안다. 메리 올리버는 말했다. “변덕스럽기를 멈춰선 안 된다”고,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고. (메리 올리버, <긴 호흡>, 마음산책) 


내가 살아가고, 읽고 쓰고, 말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떤 정해진 것들 덕분이 아니다. 고정되지 않으려고 지치지 않고 싸워 온 것들 덕분이다. 확실한 것들을 바랄수록 더 많이 비난하고 불신하게 된다. 은유의 말처럼 인간이란 불확실한 존재여서 확실함을 추구할 뿐이다.(은유, <다가오는 말들>, 어크로스) 


자연은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살아간다. 풀을 살게 하는 건 진리도 진심도 약속도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힘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비가 오면 오는대로, 해가 비치면 그런대로 스스로를 일으킬 때를 알고 필요한 때를 놓치지 않는 힘. 절대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계절같은 것. 


삶에서 고난은 참 피하고 싶은 존재지만 고난이 준 하나의 선물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 아닐까. 은유는 고난 앞에서 말했다. “우박이 쏟아지든 산사태가 일어나든 밥 짓고 빨래하고 살아갈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나는 삶 외부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닌 나의 하루를 모셔야 했다”고.(은유, <싸울때마다 투명해진다>, 서해문집) 나 역시 그 모든 불확실한 것들을 껴안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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