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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ul 16. 2020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흘러간다."

그렇다. 그토록 사랑했던, 오랜 시간을 같이했던 당신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흘러간다.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얽힌 진정한 슬픔과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한때 서로의 곁에 머물다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너그럽고 관대하게 서로를 지켜봐줄 수 있었나보다.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한겨레출판)


나는 사랑이 좋다. 사랑이라는 발음도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구경하는 일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좋다. 사랑이라면 인간이 가진 어떤 한계도 극복하게 해줄 것 같고, 사랑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고, 사랑이라면. . . 박주영은 그의 책에서 "사랑은 실용적이어서 중요하다. 사랑은 무관심과 질시와 모욕과 폭력을 없애는 백신이나 해독제 같은 것" 이라고 했다.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김영사)


남편이 중환자실에서 응급 수술을 받을 때, 온통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서류에 서명을 하고 나오면서 나는 내가 당신과 절대로 하나가 될 수도, 영원히 함께 할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에 나는 평소에는 인정하기 힘든 어떤 진실과 마주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 흐르던 어떤 감정도, 갈등도, 사랑조차도 영원하지 않았다. 몇 분 후에 의사가 저 문을 열고 나와서 내뱉는 말로 그 모든 것이 그대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당신과 내가 헤어짐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 관계가 당장이라도 끝나버릴 수 있다는 절박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겨우 당신이 고비를 넘기며 버티는 동안 세상은 그대로 돌아갔다. 고지서가 날아오고 예비군 통지서가 배달됐다. 그 일상을 견디는 일이 그렇게 서글플 수 없었다. 잔인하고 냉정하게도, 모두의 삶은 그 나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당신과 내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우리의 사랑이 멈춘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가리라는 확신. 그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것이었다. 


속 넓은 사랑에 매달려 떼를 쓰는 대신 그저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다는 걸, 활자가 아니라 경험으로 배웠다. 사랑에 대한 진실이 있다면, 사랑하는 실천 하나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건 내부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외부로의 표현이다. 사랑의 마음, 그건 사랑의 행동과 동의어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모두가 열심히 사랑했으면 좋겠다. 온전히 나를, 상대를, 그리고 사랑하는 어떤 것들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눈치 보지 말고, 주눅들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 끝에 뭐가 있을지 염려 하지도 말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사랑 밖엔 난 몰라." 라고 흥얼거리면서, 백 만송이 꽃을 피워 자기 별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심수봉의 노래, "백만송의 장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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