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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ul 23. 2020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완전히 나에게 속해있는 유일한 현실은, 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나의 행위이다. (중략)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 <모든 사람은 혼자다>, 꾸리에)


"저이가 사람은 좋은데. . ."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피해주는 말. 


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속내를 가졌는지 우주가 멸망할 때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그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는지만, 그것도 아주 단편적인 것들만 알 수 있다. 그런데 우주도 멸망시킬 만한 이해심으로 그의 속내를 지레 짐작하고 면죄부를 주는 경우를 본다. 이런 폭력적인 시선으로 지켜지는 건 주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진실이 아니라 이해관계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타인'을 바라본 첫 기억이 있다. 내가 뱉은 말이 내 마음 속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심지어 확대 해석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마음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의 어려움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나인 것처럼 타인도 타인일 수밖에 없음을 느꼈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해석의 열쇠를 쥐는 것이 모든 관계에서, 집단에서, 사건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을 자주 보았다. 내가 느꼈던 나와 타인의 간극, 내 속내를 남이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리고 여전히, 나도 누군가에게는 오해되고 있음을 느끼면서 산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내 저의는 감춘 채로 마치 일이 그런 것인양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내 입으로 외치는 말과 내가 하는 행위 사이의 간극이 너무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내 행위의 결과를 보면서도 내 속내만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에게 인간적으로 절망하는 순간이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우선, 우주가 멸망할 때까지 정확히 알기 힘든 상대의 속내를 애써 짐작해야 할 때다. 그의 행위가 내 손 안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데, 그 행위가 결코 그의 속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거라고, 나 자신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하는 것. 어쩌면 그건 사랑이겠고, 미련이겠고, 바보짓이겠다.


두 번째는, 내가 내 속내를 감춘 채로 누군가를 곤란에 빠뜨리거나, 누군가를 상처주거나, 누군가를 무시하는 걸 바라볼 때다. 그러면서 교묘한 가면까지 쓰고 위안하는 것.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가 아니라 너무나 명백하게 알고 저지르는 일. 그런 순간을 맞을 때 나는 가장 절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첫 번째 경우에는 그의 속내를 더 오래 고민하는 것으로, 두 번째 경우에는 그 기로에서 절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으로 나의 현실을 그럭저럭 버텨가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이렇다. 첫 번째 경우, 그 길고 긴 바보짓도 언젠가는 끝난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질릴 만큼이나 들여다보고 곱씹어보고 이해하다가, 드디어는 그 지난한 과정을 그만두고 내 손에 들린 그 행위만 바라본다. 도망치지 않는다. 슬프지만, 여전히 그 사실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한 번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그의 속내 따위 잊어버리고 내 눈 앞에 정확히 존재하는 그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 뿐이다. 


두 번째 경우, 내가 그 양갈래 길에서 더 많은 잘못된 선택을 할수록 나는 스스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나를 긍정하기 어려울 것이고, 신뢰하지 못할 것이고, 사랑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유혹이 강할수록, 나는 나를 속이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사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아니다. 이 모든 말은 다 내 변명이었다. '그가 저지른 일이 곧 그다.' 라는 말을 쉽게 뱉기 어려운 나의 넋두리였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다짐할 수는 있지만, 내 행위를 모두 확신할 수는 없는 부족한 인간의 반성문이다. 타인에게 쏴버리는 화살이 아니라 내 맘을 할퀴는 말로 들을 수밖에 없는 소심한 인간의 하소연이다. 


그래도 용기 내서 적어 본다. 행위에 대해 판단하고 처벌하는 문화가 절실하다. '그가 저지른 일이 곧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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