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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Aug 06. 2020

"그것을 하지 않음"

난 사람이 늘 죽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단순히 뭔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않아요.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에요. 물론 삶은 어느 순간에나 돌아올 수 있어요. 어느 하루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죽음을, 또한 많은 탄생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나는 죽어 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늘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말>, 마음산책) 


사람은 언제 가장 자유로울까. 아니 어떤 걸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때? 내가 나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때? 내가 돈을 벌어 나를 먹여살릴 때? 맞다. 이 모든 조건들도 자유롭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저런 조건들이 충족되어도 무조건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의 촉수가 모두 살아 있음을 느낄 때' 자유롭다. 슬픈 것도 짜증스러운 것도 실망스러운 것도, 다시 말해 어떤 부정적인(혹은 그렇게 이름 붙여진) 감정들까지도 모두 자연스럽게 느낄 때 내가 가장 나 답고 자유롭다. 부정적인 감정 뿐만 아니다. 긍정적인(혹은 그렇게 이름 붙여진) 감정들도 정확히 제대로 겪어주지 못할 때가 많다. 기쁠 때, 행복할 때, 성취감이 들 때, 자신감을 느낄 때, 사랑받을 때도 그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느껴보면 뭉뚱그려서 느꼈던 감정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그럴 때, 나는 나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낀다. 


이렇게 느끼기 위해서는 타고나기를 예민하면 되는 걸까? 내 감정의 변화에 촉수를 곤두세우고 민감하면 되는 걸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내 경우처럼 내 감정의 모든 촉수가 살아 있으려면  우선 용기가 필요하고, 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늘 '깨어서 바라보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 자유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연수는 자신의 책에서 '함(doing)'과  '함을 하지 않음(undoing)'이라는 개념을 빌려 이 느낌을 설명한다. 프레데릭 알렉산더가 그의 책 <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에서 밝힌 개념인데, '함(doing)'이란 우리가 '자신은 옳게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애쓰는 일'을 뜻한다. 그렇다면 '함을 하지 않음(undoing)'은? '자신은 옳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을 뜻한다. 잠시 그의 글을 읽어보자. 


"'doing', 이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습관이 되어 자신에게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뜻한다. (중략) 고집스런 둔재의 불행, 어쩌면 인간 모두의 불행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 속한다면, 깨어 있는 시간 전부를 피아노 연주에 쏟아 부어도 실력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그는 덧붙인다. "'undoing'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습관적으로 행하던 행동의 진행 과정 하나하나에 깨어 있는 것"이다. (김연수, <시절일기>, 레제)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자연히 보르헤스의 말을 떠올렸다. 보르헤스가 말한 우리가 매일매일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그 느낌은 김연수가 알렉산더의 입을 빌려 말한 'doing'은 아닐까? 


살면서 나도 그런 doing의 순간을 느끼곤 했었다. 말하자면, '무의식적'으로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할 때,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순간말이다. 내가 지금 깨어 있는 것이 맞는지, 그저 습관대로, 옳다고 확신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야 하는 순간. 그런 순간을 만나면 우선 ‘습관적인 그것’부터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습관적인 데서 오는 안정감 대신 알 수 없는 세계가 주는 불확실성과 변덕스러움에 몸을 맡기자고 되뇌인다. 그건 꽤 용감해지는 일이고, 하고 나면 내가 불쑥 자란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그러니 살면서 정말 해야할 일은, 무언가를 계속 덧입히고 보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라리 내가 옳다고 믿는 '그것'을 과감히 '하지 않음'으로 많은 것들이 자연스러워지고 제자리를 찾는다. "그것을 하지 않음",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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