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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Aug 27. 2020

"그가 가진 나약함이 그가 벌이는 악행의 동력이므로."

그러니까 그에게는 여전히 인간적인 면이 남아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나? 아니, 반대다. 그가 가진 나약함이 그가 벌이는 악행의 동력이므로. 그가 무시무시해질수록, 그의 영혼은 더 허약해진다. 공포가 그를 강하게 만들고, 괴물이 된 그는 어느 때보다 더 위태로운 존재가 된다.

-김사과, <0이하의 날들>


'강한 사람'이라는 말은 재정의 되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상황과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해야만 하고, 끊임 없이 자기 자신과 상대를 비교해서 힘의 우열을 가리려 하고, 기회를 틈 타 자신의 어깨에 맨 짐을 상대에게 떠 넘기려 하는 사람을 이 세상은 '센 사람' '강한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꼭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저런 행위를 막으려는 노력보다는 누가 먼저 저 행동을 선점하느냐로 능력치를 판단한다. 사회는 교묘하게도 나약한 인간의 특성을 마치 '강한'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 잘못된 정의에서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하고 싶은 말보다는 '해야 하는 말'을 유불리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자신과 상대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동반자로 인식하는 사람,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나는 괜찮으니 힘든 짐을 나에게 좀 건네달라는 사람이 정말 강한 사람인데도 세상이 자꾸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니, 사람들은 강한 힘을 내서 좋은 일을 하고도 억울한 마음을 갖게 된다. 실제로는 나약한 사람을 도와준 건데, 가진 게 없으니 죄라고, 참는 내가 바보라고 자신을 욕하게 된다. 권석천이 그의 책에서 "착하게 사는 것은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포기하고 내려갈 때는 너무나도 빠르고 즐겁다."고 한 것처럼.


김진영은 자신의 책에서 "부드러운 건 힘이 세고, 힘이 센 것은 부드럽다."고 말했다. "고요함은 관대함이고 관대함은 당당함"이라고도. 정혜윤은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빌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는지 얘기한다. "나약한 사람은 어떻게든 남의 힘을 꺾고 에너지를 뺏는다. 약점을 바꾸느니 무기로 사용한다. 내가 너보다 더 힘들어! 그러니 내 말대로 해야 해. 힘듦을 도덕적 우월성의 근거로 내세운다. 자신의 무게를 남의 어깨에 척 하니 얹어놓는다. 타인을 축소시킨다. 인간정신을 빈약하게 한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말만 바꾼다."






그렇게, 다시 또 차마 계단을 내려오지는 못한 채로 그렇다고 위로 올라설 용기도 없는 채로 한참을 서서 아래를 바라본다. 서글프다. 이제 내 눈에는 웬만한 상황에서는 명백한 두 갈래 길이 보인다. 하나는 비열하지도 약아빠지지도 나쁘지도 않은 선택을 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확히 그 반대의 길이다. 그렇다. 나는 이만큼 나빠졌고, 이만큼 닳아빠졌다. 그 두 갈래 길이 선연히 보이기 때문에 분명 나는 괴로워하고 있다. 세상에는 당연히 좋은 길만 있다고 굳게 믿었던 때는 몰랐던 기분이다. 지금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 두 갈래 길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으리라. 얼마쯤은 닳아빠진 자신을 탓하면서, 얼마쯤은 세상을 원망하면서.


이제 그 두 갈래 길에서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고 강한 길이라고 믿게 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이 험난한 길을 갈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될까. 서글픈 눈물을 단채로 모두가 공범이 돼버리고 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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