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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ul 21. 2020

미안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은 또 어떤가.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못해 해놓고 그 말을 하는 순간 모든 상황이 종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 번쯤은 느꼈을 불편함을 김이나는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사과를 하는 쪽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주도권을 갖는 착각을 한다. 물론 사과하는 일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과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에 심취해서 포커스를 상대가 내 사과를 어떻게 받는지에 맞추기 시작한다. '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이 문장만 봐도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 짜증이 밀려오지 않는가? 그만큼 사과를 하고 받을 만한 일에서 중요한 건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과정인 것 같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미안하다는 말이 가지는 가치는 그 말에 어떤 사족도 붙이지 않을 때만 존재한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핑계대지 않는 것, 내 말로 너의 분노가 사그라들길 기대하지 않고 너의 분노가 사그라든 후에도 미안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 포함되어야만 진정한 사과가 완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안하다는 말은 면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어 문장은 "I'm sorry."다. 응? 미안하다는 말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고? 아,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이 문장이 정말 미안한 상황을 만든 사람 입에서 나올 때 말고 슬픈 일을 겪은 이에게, 혹은 힘든 상황을 마주한 이에게 그걸 알게된 상대방이 건넬 때, 나는 저 말이 좋다. 영화나 미드, 영드를 보다가 저 대사가 저 상황에 쓰이면 마음이 뭉클하다. 잘못하고도 미안하다고 하길 꺼려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이미 사죄의 전부인 양 고개를 높이 쳐드는 현실 속에서, 내가 잘못한 일이 없어도 너의 슬픔에 '미안하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예쁜가.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은 존재만으로도 희망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 두 가지 말이 꼭 필요하고 가급적 많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미안하다는 말 보다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미안하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상대에게도 일말의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일상에서 사과를 해야 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너를 신경쓰게 해서 미안해." 라는 말보다는 "신경써줘서 고마워." 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미안하다는 말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사과해야 할 분명한 잘못이 있을 때 정확하게, 진심으로 해야한다.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상황이 정리될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말이다. (물론 범죄의 경우라면 적절한 처벌을 받는 게 우선이다. 사과와 처벌은 별개다.)


그렇게, 정말 필요한 두 가지 말이 제 자리에서 제대로 쓰이기를 바란다. 나 역시도 저 두 가지 말을 제 자리에, 제 때 빠짐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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