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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15. 2020

다시, 일상으로

상대방의 불행에 공감하되,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평정심이다. 영혼의 소진 없이 타인을 지혜롭게 돌보려면 연민과 평정심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돌봄은 단순히 타인에 대한 돌봄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돌봄까지 포함한다. 나도 나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더숲)


남편을 간호하는 동안 여러 번 읽었던 책.


당시에는 류시화, 박노해, 틱낫한, 에크하르트 톨레, 그밖의 불교 경전이나 명상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 책들은 차라리 내가 다시 책이란 걸 읽을 수 있게 해준 기회였다고 해야 맞겠다. 병실에 두고 읽느라 생긴 이런저런 얼룩과 낙서가 눈에 띤다.


병원에서의 일을 떠올리다보니 계단이 생각난다. 갑자기 웬 계단? 이야기는 이렇다. 의사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기다림'이 필수다. 수술이라도 시작되면 하루 온 종일을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계단을 이용했다. 남편이 입원했던 과의 의사들은 바빠서 엘리베이터 보다는 계단을 주로 이용한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다. 계단실에서 우연히 만나면 간단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워낙 오래 입원해 있다보니 나중에는 의사들이 먼저 질문을 해오기도 한다. "오늘 드레싱 좀 늦어질 것 같아요. 저희 이제 수술 들어가거든요. 기다리실까봐 말씀드려요." 라든가, "남편분 오늘 열 안났어요?" 라든가.  


물론, 길게 붙잡고 서서 하는 하소연은 금물. 정말 중요하고, 궁금한 점을 요점만 간추려 물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의사는 그런 죽음을 막을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너무 진지하다고? 아니, 정말 그렇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숨막히는 느낌은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데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긴장감 혹은 경건함일 것이라는게, 2년 반 동안 병원에서 먹고 자며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또 있다. 하다못해 예비군에 불참하기 위해서도 남편의 현재 상태를 상세히 증명해야만 하고,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 사람이 완전히 일상에서 멀어지면 얼마나 많은, 처리할 일들이 생기는지. 본인의 의식이 없으니 사소한 결정도 전부 내가 대리해야 했고, 그럴때마다 절차상 매번 남편과 나의 관계와 남편의 상태를 증명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본인이 아니면 뗄 수 없는 서류가 많아서 남편의 신분증과 도장, 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는 늘 가방에 넣어 다녀야 했다. 재밌는 건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서 무슨 서류를 발급하려고 해도 절차는 마찬가지라는 것. 같은 병원 6층에서 떼 준 진단서를 1층에 내야만 남편의 상태를 믿어주는 시스템. 뭔가 서류가 계속 돌고 돌고 도는 듯한.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보호자로서의 생활이란, 절박하고 치열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절대적으로 소홀한 기형적인 것이 돼버리고 만다. 류시화의 말대로라면 남편을 돌보는 동안의 나는 '나'를 돌보는 데서 늘 실패했었다. 안다. 아는데도 자꾸 실패했었다. 나는 남편이 병원에 있는 2년 여의 시간 동안 거실에서만 먹고 자며 생활했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지내던 안방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귀찮아졌다.  




그 시간들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한 명의 인간이 자아를 잃어버린 채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모두 타인에게 맡기고 오직 살기 위해 애쓰고, 또 한 명의 인간은 자신의 모든 욕망을 뒤로 한 채 다른 한 존재의 실존을 위해 애쓰는 과정. 나는 이보다 더 간단히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일을 피부로 겪은 나의 입장일 뿐, 저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그저 절망적이고 괴로운 어떤 것이었을지 모른다. 돌보는 이도, 돌봄을 받는 이도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곳에서도 실은 어엿한 두 생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하루하루여도, 그 극한의 불안함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깨어 있어도 멍-한 상태로 좀 전에 먹은 음식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나를 가엾게 보기 시작했다.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고, 우리가 ‘끝나버린 것처럼’ 여겼다. 그건 마치 남편의 의식이 전처럼 회복돼야만, 눈이 보여야만 다시 살아가는 것이고, 그 전까지의 시간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반항하는 마음이 되었다.  


남편은 기억력이 형편 없었고 하루 중 대부분을 자면서 보냈지만, 가끔은 추운 날 병원에 들어서는 내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피곤해하는 나에게 자기 옆에 누우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의 남편은 흔히 말하는 ‘정상’의 범주에는 한참 못미쳤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 하루하루가 그의 소중한 삶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건 물론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살려내야 한다는 가장 큰 목적에 힘쓰고 있었을 뿐, 어떤 욕망도 가질 줄 모르는 무생물이 아니었다. 우리가 저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이라해도, 그 시간마저도 우리에게는 눈물 나게 소중한 삶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매일 간절하고 절실했다. 끝도 없는 절망을 이고, 눈 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슬픔을 견디며, 더 나은 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썼다.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거나 멋있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거대한 절망에 금방 무릎 꿇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 숨쉬는데도 포기를 선언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나약해서, 애쓸 수밖에 없었다. 삶은 내가 겪어온 모든 것의 총체로써 현재적이다. 굳이 과거로 가지 않아도 지금의 내 모습과 선택에 이미 그 모든 과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험들은 한 인간을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정희진은 "한계를 넘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살아남는 것은 '시간이 약'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에 삶도 자아도 변화하기 때문" 이라고 했다. 그녀는 "없었던 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고통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고 했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교양인) 신형철은 어떤 인간이 보여주는 '안간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낸 사람만을, 바꾼다"고 했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남편과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 삶이 얼마나 달라졌으며, 당신과 나는 또 얼마나 변했는지. 그 변화는 결과이면서 동시에 어떤 시작이다. 우리는 소망한다. 그 변화를 놓치지 말자고, 그 시작을 간직하자고.  


아, 그래서 우리는 늘 슬픈 기쁨을 느끼는구나. 아니, 슬픔에서 건져올린 어떤 것들을 매일 새롭게 확인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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