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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01. 2020

"몇 번이고 돌아보는 일"

누군가 내게 사랑이 뭐냐고, 사랑을 어떻게 하는거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몇 마디, 이런 게 아닐까 저런 게 아닐까 대화를 이어가볼 수도 있겠지만, 이별이 뭐냐고, 이별은 어떻게 하는거냐고 묻는다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사랑과 이별 중에 더 숙명적인 무언가를 따지자면 나는 당연히 이별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어떤 만남도 이별과 짝이 아닌 것은 없다. 하다못해 나는 나 자신과도 이별해야 하니까. 끝내는 우리 모두 사라지고 마니까. 그런데도 대체 이별은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다.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그냥 내가 떼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헤어지기 싫어, 이별하기 싫어 하면서.


떼를 쓰는 나를 어르고 달랜다. 이별이 뭘까. 그건 아마 몇 번이고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한밤 중에 달려가서 그 집 앞을 서성이고, 부치지 못한 편지를 몇 번씩 다시 쓰고, 카톡 창에 "뭐해?" "잘 지내?" 같은 질문을 썼다 지우고, 다 잊은 척 씩씩한 척을 하다가 밤이면 이불로 온 얼굴을 덮고 우는 것.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서 일하고 멀쩡히 퇴근해 집에 오다가 24시간 뼈해장국집에 문득 들어가서 소주 한 병 시키고 헛웃음 웃으며 눈물에 만 밥을 먹는 것. 그렇게 몇 번이고 돌아보고 돌아보고 돌아보는 것. 헤어졌다는 걸 믿을 수 없어서, 하지만 분명해서 울다가 웃다가 미친 사람처럼 굴고 마는 것.


이제 정말 잊었다고, 우린 인연이 아니었다고 말해놓고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내고 찾아내고 알지도 못하는 이의 SNS까지 뒤져가며 그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 손톱 한 마디라도 찾아내려 애쓰는 것. 모니터 앞에 앉아서 그 사람이 보냈던 이메일을,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삭제 버튼 대신 내 눈물 버튼만 잔뜩 누르고 마는 것. 그렇게 꾹 참았던 카톡을 결국 술에 취해 허무하게 보내고 창피함에 쌍욕이 나오는 것.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그 사람에게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못하고, 괜찮은 척, 다 잊은 척 하는 것. 몇 년이 지나 이젠 정말 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낯선 사람이 뱉은 비슷한 이름에 문득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는 것.


쓰다 보니 알겠다.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고 생각했던 건 너무나 성의 없는 구분이었다. 사랑과 이별은 별개의 일이다. 게다가 이별도 사랑만큼이나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은 이별하면서도 사랑하는 중이고, 그 이별은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별은 평생동안 이어진다. 그와 헤어졌어도 이별은 나와 함께다. 어느 날에는 추억이 되고 어느 날에는 미움이 되고 어느 날에는 충만한 슬픔이 된다. 그의 자리에 다른 이가 온대도 나의 이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 한 켠에 남아 자신의 생명을 다할때까지 살아간다. 다행인가.


"처음에는 이별이 너무 힘들었어. 아프고 밉고 싫었어. 그 사람을 잊어도 좋으니까 제발 이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원했어. 그러면서 늘 이별과 함께 있었어. 잠에서 깨어나면 이별이 내 곁에 함께 누워 있곤 했어. 나는 이별을 아파하는데 이별은 그런 나를 아파하는 것 같았어. 나를 위안해주는 것 같았어. 마치 자기만은 나를 잊지 않겠다는 것처럼, 결코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러다보니 이별과 함께 사는 일이 편해졌어. 그사이에 이별과 정이 든 걸까? 이제는 이별과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이별이 끝나면 몹시 아플 것 같아."

- 김진영, <이별의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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