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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30. 2020

우리의 여행

남편이 입원한 후, 병실을 나와 병원 복도를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기까지 반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뇌척수액 배양을 위해 머리와 허리에 꽂았던 관을 모두 뺀 지 며칠 안됐던 날이었다. 그 관들은 나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 관을 통해 남편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관 때문에 남편은 감염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2주에 한 번씩 관을 교체하는 시술을 할 때면 약해진 뇌혈관이 다칠까봐 피가 마르는 기다림을 경험해야 했다. 그 시간을 견디고 다시 2주 간의 안정기를 얻으면 남편을 새로 얻은 것 같았던 날들. 매일 그대를 잃었다, 얻었다 했던 시간들. 


남편의 상황이 호전돼서가 아니었다. 더이상의 시술은 당신에게 위험하다는 판단이었다. 우선 관을 제거하고 뇌척수액이 스스로 흐를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감염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면역력이 높아지는 것. 나는 산책도 시키고 햇빛도 쏘여줘야겠다고, 그럼 더 좋아질거라고 희망을 품었다. 몸에 관을 꽂고 있지 않은 남편을 보는 게 신기했다. 남편 몸에는 원래 관이 없었는데, 막상 모든 관을 다 뺀 모습을 보니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는 남편을 데리고 복도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만약 남편의 몸에 다시 관을 꽂아야 한다면, 지금 이 금쪽같은 자유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봄날의 화창한 오후(남편은 여름에 입원했다, 해가 바뀐거다), 드디어 남편을 휠체어에 태웠다. 


고작 열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떠나기 위한’ 준비는 꽤 거창했다. 남편에게 옷을 든든히 입히고, 두꺼운 양말을 신켰다. 모자를 씌우고, 상하체에 각각 담요로 방한을 했다. 링거를 잔뜩 꽂은 팔이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오랜만에 움직이는 남편이 기립성 저혈압이라도 겪을까 살금살금. 


그렇게 남편과 다시, 첫 산책을 했다. 


나는 그 날 밤, 남편과 처음 떠났던 여행을 떠올렸다. 동해바다 어디쯤, 남편의 동료 결혼식을 보러 겸사겸사 떠났던 여행. 당신이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예약한 숙소, 1박 2일짜리 여행에 봉지가 터지도록 담았던 고기며 과자며 술과 음료수도, 아직 서로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았던 우리들도 떠올랐다. 


추운 날씨 탓인지 이상하다 싶게 우리 밖에 없던 실내 바베큐장에서 둘이 마주보며 고기를 굽다 말고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던 그 순간도. 


아직도 그 날은 미스터리하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우리가 왜 목살 구이 앞에서 펑펑 울었는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황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던 그 순간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인간에게는 육감이라는 게 있다는데, 아마 그 날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함께 힘든 순간을 겪게 될 거라는 걸 예감했던 걸까. “이상해, 너무 행복한데 눈물이 나.” 라던 우리 둘은 거의 그대로인 과자며 음료수를 다시 잔뜩 싸 들고 다음 날 서울행 버스에 올랐었다.

  

지금도 가끔, 그 날들을 떠올린다. 처음 휠체어를 타고 마주했던 햇살이 가득하던 병원 복도를, 우리의 울음 소리만 가득하던 동해 바다 어느 펜션의 바베큐장을, 그리고 언제나 우리 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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