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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30. 2020

그 날의 기억

새벽 한 시 사십 분에 경찰로부터 사고 연락을 받고 집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크게 다친 남편은 쇼크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자꾸 어디론가 가려고 했다. 그게 왠지 집으로 오려는 것 같아서 애처로워보였다. 응급 처치를 하려면 남편이 움직이면 안되는데, 남편은 자꾸 어디론가 가야할 것처럼 침대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응급실 의사들은 나에게 남편이 안정될 수 있게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아주라고 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았다. 


당직 의사는 나에게 더 큰 병원으로 당장 이송해야 하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고 했다. 나는 부탁드린다고, 다시 한 번 연락을 해봐달라고, 부탁드린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바로 옆 침상에서 당신은 몸부림을 치고, 의사는 이송 병원이 없다며 당황해 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뭘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상황은 안좋아 보였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세 시를 향해가고, 나는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남편이 위중한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고, 주변에 아는 의사가 있으면 제발 연락을 해달라고. 


세 시쯤 됐을까(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근처의 대학 병원 신경외과에서 남편을 치료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앰뷸런스에 인턴까지 함께 올라타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 사이에도 남편은 계속 괴로워했다. 혈압은 솟구치고, 호흡도 일정치 않았다. 앰뷸런스에는 운전자 외에 보조 치료사가 동승하는데, 의사와 치료사는 운전자에게 더 밟으라고, 더 밟으라고 소리쳤다. 새벽이었고, 길은 텅 비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남편의 손을 잡고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남편이 만약 지금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걱정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대학 병원으로 이송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신경외과 교수는 남편의 외상은 매우 위중하고 다발적이어서 함부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겨우겨우 찍은 엑스레이 만으로는 외상의 범위와 깊이를 판단할 수 없고 남편이 진정되고 좀 더 정밀한 검사를 진행한 후에야 어떤 치료든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다량의 진정제로도 남편은 겨우 안정을 찾았고, 수없이 많은 검사를 받았다. 그 검사들을 시작으로 남편과의 기나긴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피투성이가 된 남편의 손을 잡았던 순간이, 치료를 위해 마구 잘라낸 남편의 옷과 가방을 받아들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던 그 순간이. 


사실 나는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 정말 두려웠다. 괜찮다고 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해주고 싶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남편 곁을 지키는 것 말고는,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 사실이 나는 참 막막하고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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