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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30. 2020

잠에서 깰 때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당신을 보면 언제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겪는다. 당신이 내 목소리를 듣고 나를 바라보려 할 때, 얼굴을 마주보고 서서도 미묘하게 나와 마주치지 않는 당신의 말간 눈동자를 볼 때, 바로 앞에 있는 장애물조차도 전혀 인식하지 못해서 여지없이 그 앞으로 다가서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러니까 당신이 살아가는 그 모든 때에 그렇다. 그 감정이라는 건 내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것이어서 조금만 방심해도 나의 모든 생각을 점령해 버리곤 한다. 


어느 날 저녁, 늘 괜찮다던 당신은 울고 있었다. 처음엔 꼭 장난처럼 입이 아이같이 일그러지더니, 결국 당신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통곡했다. 보이지 않는 내 얼굴을 더듬으며, “내가 너 하나는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 말끝을 흐린다. 아니 더는 말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흐느낀다. 나는 그저 당신을 꽉 안고 등을 쓰다듬고 머리칼을 문지른다. 매일 연습해왔는데, 당신이 힘들어하면 내가 당신을 멋지게 위로해주리라, 당신에게 삶의 환희와 행복에 대해 확신을 주리라 다짐해왔는데 그런 연습 따위, 나에게 안겨서 울고 있는 당신의 몸 만큼이나 명확히 느껴지는 당신의 슬픔 앞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어떤 말로, 어떤 비유로 그대를 위로할 수 있을까. 그나마 내가 더 큰소리로 울지 않고 그저 당신의 울음 소리가 우리를 감쌀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어깨를 내어주는 게 다였다.  


당신이 처음으로 ‘엉엉’ 소리내어 울었을 때 나는, 다행이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늘 괜찮다고 말하는 당신을 보며 마음 한 구석에 ‘다 괜찮을 수는 없을 텐데. .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당신이 의식도 없이 누워 있던 2년 여의 시간 동안 나는 매일 당신이 영영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적응해왔다. 그런데도 안보이는 당신과 함께하는 매일이 새롭다. 그런데 2년 만에 정신이 든 당신이 이렇게 빨리,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게 의아했다. 당신이 고통스러워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이 고통에 아직 가 닿지도 못하고 있을까봐, 어느 날 문득 그 고통에 가 닿았을 때 더 힘들어질까봐, 조금씩이라도 표현하고 이야기해주길 기다렸다.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그 예쁜 눈동자가 왜 나를 보지 못하는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눈동자는 정말로 아무런 죄가 없다는 생각. 당신이 그렇듯이. 


당신의 매 순간이 힘들겠지만, 내가 당신을 바라보기 가장 힘든 때가 있다면, 당신이 잠에서 깰 때다. 잠에서 깨어나 다시 눈 앞에 맞이할 암흑을 당신이 매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는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이 눈물을 흘릴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하고야 만다. 처음에는 힘들었어도 어느새 그 상황에 현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끝내 익숙해진다. 일면 맞는 일이겠고, 또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리라. 하지만 때로는 적응하지 않고 매번 눈물을 흘리겠다는 마음 역시 간절히 필요하다. 사람은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현실에 적응하므로, 그리고 너무나 이기적이므로.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 아픔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적응해서 무뎌지지 않고 함께 아파할 용기가 절실하다. 적어도 그 아픔을 겪는 이보다 내가 먼저 무뎌지지는 말아야지. 부디 내가 당신의 어두운 아침에 적응하지 않기를. ‘아직도 슬퍼하냐.’는 무신경한 말을 내뱉지 않기를. 오늘 밤에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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