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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Nov 18. 2020

안과 외래

지난 주에는 남편의 안과 정기 검진이 있었다. 병원에서 날짜를 잊지 말라고 보내주는 알림 문자를 받는 순간부터 내 심장은 오그라들었다.


우리는 대학 병원에서 세 계절을 보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시간이었고,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차가운 병원 복도에 앉아 내 손을 쥐었다 펴면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학 병원에서 어쩔 수 없이 퇴원한 후에는 격리가 가능한 요양 병원에서 두 계절을 보냈다. 그 다음 재활 병원에서는 꼬박 다섯 계절을 보냈다.


그 계절과 공간에는 비슷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고통의 기억들이 들어차 있다. 어느 하나를 떠올리면 기억이라는 그물에 그 이야기들이 줄줄이 딸려올라온다. 가능하면 그런 낚시질은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 가령 안과 정기 검진, 신경외과 션트 관리 같은 일들 말이다. 피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마중물이 되어, 찰랑거리면서도 넘치지 않는 균형을 애써 유지하던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어떤 때는 마중물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돌이 되어 떨어지기도 한다.








남편을 간호하는 동안 어쩌다가 나에게 잠깐의 휴식이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이 보이지 않게 됐다는 생각이 들이닥쳤다. 생각하지 않으려해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서는 남편의 목숨이 위중하니 앞이 안 보이는 일은 어쩐지 별 일 아닌 것처럼 취급되었다. 그건 철저히, 목숨의 위중함으로만 모든 일을 분류하는 병원의 냉정함이었고 그 냉정함의 필요성이 절실히 와 닿아서 투정할 수도 없었다.


당시의 남편은 의식이 불문명해서 하루 종일 자거나 깨어 있어도 대답이 없이 멍-한 상태였다. 그때 겪게 된 안과 검사라는 건 좀 잔인한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최첨단의 기계로 눈의 상태를 검사해도 실제로 눈이 보이는지 여부, 얼마나 보이는지 여부는 개인차가 심해서 언제나 환자 본인의 의식으로 그것을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남편은 분명 보이지 않는데, 남편의 의식이 불분명하니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묻는 상황이 반복해서 연출됐다. 어느 날의 남편은 안 보인다고 했다가, 어느 날의 남편은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안과 의사는 그 이유 때문에 '남편의 눈이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안과 외래였다. 우리는 항생제 내성균으로 인해 대학 병원이 아닌 근처 요양 병원에서 기약 없이 격리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 병원에서 퇴원 하기 전에 중요한 검사들을 받아두고 싶은 마음에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시신경의 위축이 심합니다. 회복이 어려우실 것 같아요." 라는 설명을 하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 남편은 "하아-품"을 했다. 회복이 어려울 겁니다와 하아-품은 어쩐지 어긋난 것이어서 나는 그 둘 사이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 되었다. 당신의 하아-품도 의사의 회복이 어려울 겁니다도 싫었다. 하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것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회복이 어려울 겁니다를 견디며, 하아-품을 견디며 휠체어를 밀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 공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잠을 자도 피곤하다. 살아 있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있는데도 죽어가던 당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피가 마르던 그 감각은 날카롭게 내 심장을 할퀸다. 부조리하고 부당했던 말들이 귓전을 때린다. 마음을 채 추스르지도 못한 채로 옷이라도 든든히 껴 입고 병원으로 향한다.


안과는 여전히 어렵고 불편하다. "눈이 안 보이셔서 검사가 어렵네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안 보이니까 검사를 하려는건데 안 보여서 검사가 어렵단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 상황에 처한 모두가 난처하고 아프다. 남편과 나는 묘하게 적극적이 된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 알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시간을 살아내기로 마음 먹었다는 신호다. 곤란해하는 그 얼굴들이 어서 빨리 우리와 헤어질 수 있도록.


남편과 병원을 나서면서 우리는 한참 동안 갈 곳을 잃어 길 위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수만 갈래로 찢어져있음을 그냥 알 수 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길 잃은 사람들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던 우리는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꾸역꾸역 돌아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그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는 채로,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용히 손을 쥐었다 펴본다. 예전에 병원에서 들었던 그 소리를 더듬는 건가.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는 듯 소리는 사라지고 없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내 손이 아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신혼 여행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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