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 <쓰고 달콤한 직업>
"적어도 제 스스로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필요한 자리에 닿을 때까지 이빨로 가죽을 당기는 구두 수선공처럼 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정해주는 종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먹으면서 제 삶을 끌고 갈 거라 이 말이지요. (...) 그러니 저를 믿으시고, 식사를 하신 다음에 이 초원의 초록 침대 위에서 눈을 좀 붙이세요. 그러고 나서 잠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실 겁니다."
직업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인 세상이지만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내고 그 일에 맞춰 만나는 사람, 사고 방식, 삶의 태도 등이 바뀌기도 하니까.
남편이 아프기 전까지 나는 오랜 시간 선생님이었다. 15년 동안 줄곧 가르치는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 일했기 때문에 선생님 외에도 다양한 일을 경험했지만, 누군가가 당신의 '일'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가르치는 일'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새로운 문 앞에 서 있다. 내가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하게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하게 될지, 내가 원하는 일은 뭔지, 내게 가능한 일은 뭔지, 나는 매일 저런 질문들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천운영 작가는 내가 섰던 그 질문 앞에 먼저 서 보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다른 삶을 살아보았고, 다시 그 문을 닫고 나와서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그녀는 소설가였지만 식당을 열었고, 2년 동안 식당 운영에 흠뻑 빠져 지냈다. 식당 문을 닫으며 이제 다시 "이 시작의 끝"을 향해 산문집을 냈다. 이 산문집은 그녀가 또 다른 삶을, 아니 또 다른 일을 하며 살아본 세월에 대한 작은 보고서다. 추억 앨범이고 일기이고, 눈물 젖은 편지다.
처음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건 '몸'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몸은 많은 것은 담고 표현한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글을 쓰던 사람이, 갑자기 식당을 열어 하루 종일 서 있거나 움직이면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했다면 몸은 아마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그 모든 상처와 흉터가, 당신이 상상한 바대로, 어떤 노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마음껏 안쓰러워하시라. 내 팔을 보고 약쟁이 환자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으니, 무슨 더한 품평이 나올쏘냐, 훈장 단 가슴을 쭉 내밀듯, 손가락을 쫙 펴고 팔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이런 변화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식당을 차리며 들었던 수많은 오지랖과 충고들 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불판 근처의 주방 도구를 함부로 덥석덥석 잡아서는 안 된다. 무조건 행주를 먼저 쥐고 잡으라고, 강조 또 강조"한 거였다는데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렇다. 그녀는 '머리'로 하던 일에서 '몸'으로 하는 일로 완전히 옮겨가야 했다. (오해 마시라. 요리가 머리 없이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니) 얼마나 많이 더듬거리고 얼마나 많이 실수했을까.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물론 그녀는 시종일관 씩씩하다. "식당 차려서 돈 벌면 좋고, 망하면 망한 얘기 소설로 쓰면 되고, 이러나저러나 꽃놀이패"라는 친구의 응원을 등에 엎고 "용감했던 것이 아니라 겁대가리가 없었다"면서도 성큼성큼 걷는다. 파에야는 절대 1인분만 만들어내지 않고(이유는 책으로 확인하시라), 대신 재료비가 판매가의 60%를 넘도록 제철 재료를 듬뿍듬뿍 아낌 없이 넣는다. 문어 삶기에 전심을 다하고, 계란과 오징어와 멸치에 진심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떤 흥겨운 축제를 보는 듯한 느낌인데, 그녀가 설명하는 음식이나 음식의 재료에 대한 얘기들을 읽다보면 왜 그녀가 식당을 차리게 되었는지 조금은 납득하게 된다. 그녀가 말하는 음식은 곧 생명이고 삶이다.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다. 15년을 함께 했던 반려견 '민'이 죽고 난 후 "누구에게든 뭘 해서 먹여야만" 했던 그녀가 아닌가. 내 살과 맞닿은 존재였을 민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삶으로 떠오르기 위해 그녀가 먹이는 일을 선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음식,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이기에. 그녀가 도축을 하는 과정을 공부하고 그런 내용들을 토대로 소설을 써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여전히 고기를 잘 먹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물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잘 먹는다.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 문제가 아니라 고기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제 살을 내주는 동물을 키워내는 일부터 그것을 죽이고 가르고 요리해서 식탁에 올리기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출 것." 그녀다운, 대답.
자, 새로운 일에 적응하며 내 몸도 마음도 바뀌고 나면 이제 주변을 돌아볼 차례다. 그녀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동료'들과 앞치마 이야기로 날을 지새고, 옆 가게 미용실 사장님과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느낀다. 함께 주방을 맡아준 자신의 어머니와 몸을 부때끼며 살아가고,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삶의 지혜도 얻는다. 사는 게 어디 좋은 일만 있을까. 쓰레기 배출을 두고 얼굴 없는 이웃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일수 광고지를 보며 인생의 절박함을 다시금 공부하기도 한다.
그렇게, 유쾌하고 신나게, 어설프면서도 당차게, 뒤돌아도망치는 법 없이 그녀는 2년 동안의 식당 영업을 종료했다. "시작과 끝은 서로 다른 동력으로 움직인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구르고 또다시 돌아가기의 무한반복. 글쓰기의 두려움은 결국 시작을 못 하는 것의 두려움이 아니라 끝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어쨌거나 시작은 해볼 일이고 끝은 반드시 맺어야 한다."
한바탕 잔치를 치른 기분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그녀의 말처럼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은 꽃놀이패였던 게 분명하다. 나는 그녀의 책을 읽으며 때때로 행복했고 자주 즐거웠다. 그 식당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얼른 서점 홈페이지 검색창에 '천운영' '바늘' '명랑' '생강' 등을 검색하다가, 아참 돈키호테가 빠질 수 없지, 라며 '돈키호테' 역시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 정도면 꽃놀이패도 아주 괜찮은 꽃놀이패다.
그리고 생각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고. 겁먹지 말자고. "어쨌거나 시작은 해볼 일이고 끝은 반드시 맺어야" 하니까. 캬, 이거 다시 생각해도 정말이지 흥겨운 꽃놀이패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