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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Aug 19. 2021

그녀의 보물 주머니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참으로 무더운 여름이(었)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 사이로 답답한 숨이 겨우 새나왔다. 그 아래로 땀이 쉴새 없이 흘렀다. 산책은 이른 새벽 시간으로 옮겼고, 그게 여의치 않는 날이면 산책길이 괴로웠다. 어느 날은 분리수거를 하는 잠깐 사이에 내 정수리에서 이상한 느낌이 났다. "어? 뭐지? 내 정수리 타는 거 같은데?" 지글지글, 내 정수리에서 막 익기 시작한 고기 냄새가 난다고 너스레를 떨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던 날들.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을 자주 흘리는 내게 여름은 건너기 힘든 계절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햇빛 알러지도 생겨서 햇빛을 쬐고 돌아온 날이면 손등이나 이마처럼 가려지지 않는 부위에 오돌토돌한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작은 얼음팩을 대주거나 심할 때면 연고를 발라준다. 그러니 자연히 시원한 것을 찾는다. 뭐든 좀 시원해야지. 찬 음료, 찬 공기, 몸에 감기지 않는 차가운 소재, 차가운 이불, 이 이불로 말할 것 같으면 스스로 우리 몸의 열을 가져가요~ 그러니 시원하겠어요 안시원하겠어요?


하지만 이런 내게 딜레마가 있었으니. 나의 몸은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을 잘 견디지 못한다. 금새 눈이 따갑고 살갗이 아프다. 덕분에 여름에도 양말은 필수, 가운을 입고 얇은 이불을 덮어도 칼바람처럼 에이듯 나를 할퀴는 야속한 인공 바람들. 하는 수 없이 에어컨을 끈다. 차라리 좀 더운 게 났다며 (정말?) 선풍기를 벽쪽으로 돌려본다. 다시 땀이 쪼르륵 흐른다. 역시, 여름은 건너기 어려워.


그러므로 여름은, 나에게는 내가 얼마나 약한지를 매순간 보여주는 계절이다. 여름의 나는 약하다. 내리쬐는 태양도 반갑지 않고 뜨거운 열기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 것들 앞에서 속절 없이 무너지고 마는 자신을 확인하는 계절. 온갖 센 척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이 연약한 몸뚱어리의 한계. 몸을 가진 나는, 감정을 가진 나는 고작 계절의 변화에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으니 나도 더 힘들었지만, 이번 여름은 여름이 괴로운 나(같은 사람들) 말고도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작년 여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운 온도와 높은 습도에서는 견디기 어려울거라는 예상도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 들떠서 봄을 지났었다. 하지만 그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고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그 기세가 등등하다. 되려 바이러스가 유행한 이래 사상 최대의 감염자 수를 기록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돌봄이 절실한 사람들,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은 사람들과 겨우겨우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전염병의 최전선에서 한계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을 의료진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보고 느끼며 이 험난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바람을 넣어 만들 수 있는 간이 수영장을 샀다. 아파트에서 그 수영장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댁으로 '피서'를 떠난다. 그곳은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놀이터다. 시댁은 그래도 '앞마당'이랄 게 있는 전원주택이어서 그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아이를 놀게해준다. 친구의 아이는 네 살. 그 아이는 세 살때부터 마스크를 썼다. 생의 반을 마스크와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친구에게 잘했다고, 피서도 물놀이도 경험해본 우리는 괜찮지만, 아이에게는 고작 네번째 여름이니 물놀이가 뭔지 가르쳐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슬퍼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푸른 물결 위에서 빨간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하고 있는 저 사진에 홀리듯 이끌려(물론 정혜윤 작가의 신작이라는 걸 미리 알고 검색한 거지만) 책을 주문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책이 도착하고 한참을 표지 사진을 바라본다. 내 속이 뻥- 뚫리는 기분. 당장이라도 물에 풍덩 뛰어들어 팔다리를 문어처럼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왠지 이 책 속에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들어있을 것 같은 기대감까지.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라는 제목 탓이겠다.


과연. 간이 수영장에도 들어갈 수 없는 어른들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보물 주머니를 슬그머니 열었다. 내가 이야기 몇 개만 들려주고 갈께. 나 어릴 때는 '화장품 방문 판매원'이라는 게 있었다. '쥬단학 아줌마'로 불렸던 그녀는 말하자면 보부상의 후예다. 쥬('주'가 아니다)단학 아줌마는 남색 유니폼을 아래 위로 갖춰 입고 똑같은 색깔의 커다란 가방을 매고 썬캡을 썼다. 보부상의 후예가 오는 날은 동네 쌀집 안방에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삶이 고단했던 엄마들이 아가씨로 돌아간듯,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줌마가 다녀간 방에서는 정말로 '향기'가 나기도 해서 나는 꼭 마법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만고만한 형편들이니 대부분은 선뜻 화장품을 사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평소에 볼 수 없는 표정과 눈빛으로 서로를 칭찬하고, 샘플을 나눠가졌다.


그녀도 꼭 쥬단학 아줌마처럼 자신의 주머니를 열어 향기를 전한다. 그녀의 가방에는 화장품 대신 사람들이 들어 있다. 정확히는 그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건 바다 냄새가 나는 사람의 이야기에요. 이건 눈물 냄새가 나는 사람의 이야기에요. 이건 조심해야 돼요. 슬픔의 냄새가 나는 사람의 이야기거든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다면 이 이야기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로 변할 거에요. 마치 마술처럼요. 에이 기분이다, 이건 서비스에요, 하자 이번에는 반딧불이가 돌고래가, 일몰이, 시가 나온다. 나 오늘 기분 좋아서 내 가방 다 털고 가련다!


그녀의 책을 열면 마치 다른 시공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머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법사의 영역을 처음 엿보는 해리포터처럼, 분명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을 '알고 있다'고 여겼었는데, 그녀의 책만 열면 내 현실은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 그곳에는 '말'을 믿는 할머니가 살았고,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가 등에 지고 있는 '무게'를 먼저 가늠하는 사람이 살았고, '내가 겪은 아픔을 당신은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살았고, 용기가 있어서 누군가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이 살았다. 그곳은 살인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어떻게 키운거냐!"는 온갖 멸시와 원망의 시선을 딛고 이렇게 말하는 세계다. "사랑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니까요." 동시에 생존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세계다. "사실 이상한 말이지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데 나는 트라우마가 아주 싫지는 않아요. 덕분에 나는 훨씬 관대한 사람이 되었고 인간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어요. 트라우마는 우리를 묶어주는 피 같은 거예요." 그리고, 딸의 뼈를 만진 손으로 찬란한 해바라기를 수놓는 사람이 산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므로, 작가는 말한다. "그토록 깊게 슬퍼한 사람이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놀란다."


그녀의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을 덮고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보고, 책을 덮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책을 덮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았다. 그곳은, 그들은 여전했다. 다시, 그녀의 책으로 돌아가길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스틸 뷰티풀(Still beautiful)"이라고 말할 때, 나는 비로소 웃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나는 내가 앉은 책상으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곁으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돌아가겠지. 그곳에서, 그들 곁에서 나는 할 일이 있다.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다.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분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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