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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07. 2021

지금이 조금 더 길어지도록,

게일 콜드웰, <먼길로 돌아갈까?>



제목만 보고 이미 눈물 버튼이 클릭 돼서 먹먹한 가슴을 안고 책을 열었다. 나는 캐럴라인 냅과 동시대를 살지도 않았고(두 사람은 거의 우리 엄마뻘이다), 두 사람을 직접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 서로가 싫어하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들, 서로의 단점을 잘 알고 그걸로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불안할 때 전화를 걸면 "아무래도 그 녀석이 또 찾아온 것 같은데?"하면서 단번에 내 기분을 뒤바꿔줄 수 있는 사람들, 함께 걷는 산책길이 아쉬워서 "우리 먼길로 돌아갈까?(Let's take the long way home?)"이라고 묻는 사람들.


그런 사람 둘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죽었고, 그 둘은 그 죽음까지도 함께 했다는, 게일 콜드웰의 표현을 빌자면 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울었다.








상실에 대해 생각한다. 나와 아주 가까운, 동반자였던 이의 상실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는 오랜 시간 맏며느리로 살아왔고, 일 년이면 몇 번씩 제사와 차례를 지내느라 손에 물 마를 날 없었다. 겨울이면 김장을 장독이 그득하게 담가서 집 근처 텃밭에 묻었고, 그 김치가 알맞게 익으면 종일 그 김치를 다져서 만두를 빚었다. 명절이면 집에 다녀가는 손님들을 빈 손으로 보내지 않고 만두며 전을 보기 좋게 담아 들려 보냈다.


나는 머리가 굵어지자 그게 그렇게 불만이었다. 수고로움을 모르는 입들이 얄미웠고,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입들이 괘씸했다. 그들을 막을 힘이 없어서 나는 그렇게 많은 음식들을 해내는 엄마를 답답해하기도 했다. 몇 시간이고 김치를 다지던 엄마를, 허리가 아프도록 반죽을 치대던 엄마를, 나눠줄 얼굴들을 떠올리며 냉장고가 가득하도록 만두를 빚던 엄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결혼한 그 해 겨울에 엄마네 집에서 김장을 담갔다. 제법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김장 날의 분위기가 되었다. 절임 배추를 씻어서 물을 빼는 동안 갓이며 쪽파며, 마늘이며 생강을 손질하고 무를 채썰고, 풀을 쒔다. 엄마네 집 거실 가득 김장용 비닐을 깔고 집에서 제일 큰 다라이(라고 발음해줘야 느낌이 산다)를 꺼내 김칫속을 버무렸다. 가스레인지에서는 수육용 고기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나무랄 것 없던 그 날, 나는 갑자기, 속절없이 슬퍼지고 말았다. 이제는 며느리 역할을 졸업한 엄마의 말대로 배추는 우리 먹을 만큼만 준비했는데, 막상 버무리면서 보니 정말 몇 포기 되지도 않아서 엄마와 내가 마주 앉아 속을 채우자 일이랄 것도 없이 김치가 되어 냉장고로 직행했다. 수육과 함께 먹으려고 남겨둔 김치 보쌈과 겉절이를 상에 두고 김장 날은 술 한 잔 하는 거라며 모두 잔을 채우고 부딪히는 동안 나는 느닷없이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건 생각이라기보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내 가슴 속으로 단번에 스미는 뜨겁고 뭉클한, 그러면서도 서늘한 감각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엄마를 상실하는 일에 대해 때때로 생각한다. 엄마가 내곁에 없다면, 그러니까, 엄마가 죽는다면.


나에게는 엄마가 없겠지?

당연하지 엄마가 죽는다면,

그럼 나에게는 엄마가 없는 거니까.


김장을 하고 엄마가 싸 준 김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니,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그러니까 그 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걸 나는 그 날 깊이 받아들여야 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건지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또 생각해봐도) 도통 모르겠지만, 엄마가 갑자기 아프지도, 김장을 하다가 싸우지도, 김장이 맛 없게 되지도 않았는데. 설마 너무 행복해서 그랬다면, 이건 또 무슨 조화속인가.


(아니. 사실 모르지 않는다. 어떤 모녀 관계도 단순하고 간단하지 않겠지만, 나와 엄마가 살아온  역시 그랬으니까. 우리 가족이 살던  작은 집에서 우리는 가장  거리에  있었다는 느낌. 우리에게는 서로를 궁금해하고 보듬을 여유가 없었다. 나이듦과 결혼,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다양한 관념들이 존재한다는  안다.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있다. 다만, 나이 먹고 결혼해야 철이 든다거나, 그래야 엄마를 이해할  있다는 말로  복잡한 관계를 단순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정도로 단순한 존재들이 아니지 않나?  지면에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니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같고. . . . 이쯤하자. . )


아둔한 나는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아니 대부분의 날들 동안 죽음을 잊고 살았지만) 사실 죽음은 내곁에 가까이 있었다. 김장 날의 그 일이 있고 불과 3년 뒤에 나는 남편을 잃을 뻔한 경험을 하면서, 내 삶의 아주 많은 부분에 대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삶의 우선 순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분노하는 일, 내가 슬퍼하는 일도 달라졌다. 이제 나는 누가 아프다는 말만 들어도, 누구의 가족이 병원에 있다는 말만 들어도, 금새 멍-해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 기억이 곧 지금 그이의 현실이 되고 만다. 순식간에 내 마음은 그들 곁으로 간다.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정말로 '잃게' 되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의 남편은 여전히 살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내 곁에 있다. 그게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고 다행한 일인지 내가 다 안다고, 나는 차마 말할 수 없다.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그 일을, 끝내 우리 모두가 걸어갈 그 길을 어쩌면 인간은 이토록 모른 채로 살아가는 걸까. 삶과 죽음은 아주 가까이 있고 어떨 때는 그 거리가 마치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느껴지지만, 그 종이 한 장이 가르는 차이는 너무나 선명해서 내가 아무리 그 근처를 배회했어도 나는 아직 그 종이 너머를 가보지 못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 반응은 단순한 호의나 동지애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도 조용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할 줄 알았다. 진지함이 나와 엇비슷하고 때로는 나를 능가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은 날아갈 듯한 해방감을 주었다."


내가 죽어갈 때, 그러니까 세상을 떠났다거나 하늘 나라로 갔다는 완곡한 표현 대신, 말 그대로 '내가 죽어갈 때' 내 어깨를 기대고 싶은 사람. 내가 나답게 자유롭고, 하지만 그걸 무기 삼아 상대를 옭아매지 않고, 상대 역시 있고 싶은 대로 있지만, 그걸로 무기 삼지 않는 편안하고 존중받는 관계. 서로의 취미를 함께 공유하고, 오랜 시간 노를 젓고, 좋아하는 개를 키우고, 나의 집보다 상대의 집 거실이 더 완전하게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관계.


나는 궁금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처음은 어땠을지.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본건지. 알아봤다면 그 다음 날은 어땠는지. 서로의 기대를 어떻게 알아보고 어떻게 맞춰갔는지. 언제 실망했고 언제 후회했는지. 그 반짝이는 것을 어떻게 가꾸고 지켜냈는지. 너무 애쓰지는 않았는지, 그러다 지쳐본 적은 없는지.


그녀들의 우정이 '첫 눈에 반한' 그 순간으로 그치지 않아서 좋았다. 싸우고, 오해하고, 갈등을 겪으면서, 그러니까, 반짝이는 찰나 말고 지난한 매일의 일상을 견디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그리고 끝내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서로가 서로를 서서히 물들이고 바꿔가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게일 콜드웰은 "전에는 끔찍하다고 - 창피하고 과장되고 슬프다고 - 생각했던" 자신의 금주 이야기를 이 책에서 들려준다. 그렇다. 그건 어디까지나 캐럴라인 냅의 덕분이다. 자신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봤던 사람,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캐럴라인 냅 역시 게일 콜드웰에게는 마음을 놓았다. 게일 콜드웰이 둘의 산책길에 먹을 간식을 조금씩 늘려갈 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캐럴라인에게 초콜릿을 건넬 때,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캐럴라인이 그 초콜릿을 받아 먹을 때, 나는 이 우정이 더 깊고 진지해지는 순간을 보았다. "캐럴라인은 무언가를 거부하고 통제하는 가혹한 내면의 목소리와 수년간 싸움을 치렀다. 그런 그녀가 내가 내미는 먹을 것을 - 처음에는 마지못해, 그러다 차츰 안도하며 - 받아들이고 있었다."


캐럴라인을 콜리(영리함과 예민함과 충직함)로 정하고, 게일 콜드웰을 젊은 저먼셰퍼드 암컷이라고 정하는 장면에서는 뭉클한 웃음을 짓는다. 그녀들은 이런 농담 속에서도 서로를 함부로 상처주지 않았다. 그녀들 사이에 "이쯤하면 됐어"는 없었다. 늘 최선을 다했고, 서로에게 최선이 되고자 했다. (게일 콜드웰을 왜 저렇게 긴 분류에 넣었는지는 책으로 확인하시길.)


두 사람이 함께 정한 은유들, 관용적인 표현들과 서로를 위해 기꺼이 웃음거리가 되기를 자처하는 순간들은 우리가 우정을 통해 꿈꾸는 모든 것들이다. 짧지만 진솔한 통화, 서로를 다독이는 잦은 메시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이지만 강력한 약속들은 우리가 단 한 명이면 만족할 아주 깊은 관계의 모든 상징이다.






김장 날의 체험 이후로, 남편의 긴 투병 이후로 내가 엄마나 남편에게 천사같은 딸, 천사같은 아내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게 어딨나. 나는 나고, 천사는 천사. (굳이 천사같아질 필요도 없지만) 삶은 섬광같은 깨달음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삶과 죽음은 너무나 큰 차이여서 살아 있음은 결코 죽음이 될 수 없다. 살아 있음은, 살아 있음이다. 그 자체로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달래지지 않는 나의 불안이 부끄러웠다. 클레먼타인은 살아 있고 캐럴라인은 죽었음에도 나는 지금 목숨을 구한 쪽을 두고 괴로워하고 있었으니. 애도의 지침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우리는 산 자를 위해서만 애를 태운다. 나는 아마 일생 동안 캐럴라인을 애도하겠지만, 더이상 그녀를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엄한 삶의 명령을, 그래서 누군가는 '삶은 고통'이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는 생의 타고난 성질을 우리는 살아가야 하므로. 너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인 채로 나는 살아있는 온갖 것들을 걱정하며 끝의 끝까지 살아가야 하므로. 때로는 사는 것이 꼭 죽을 것처럼 서글프고 괴로워도 나는, 차마 죽지 않은 나는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경험 이후로 달라진 것을 굳이 찾는다면, 누군가가 내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반대로 내가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언제든 아주 간단하게 다른 길로 접어들 수도 있음을 잊을 수는 없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그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으니 대신, 오래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을 상실에 대해. 익숙해지지도 괜찮아지지도 않을 그 시간들에 대해. 오직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을 그 감정들에 대해. 나는 아직은 기어이 살아있음에 두 발을 담근 채로, 그 너머를 오래 상상하는 것이다.


아아, 이제 그만하자. 내가 이 책에 대해, 아니 상실과 아픔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려면 나는 아주 아주 '먼 길로 돌아가야' 할 테고, 그럼 그건 글이 아닐 테니까. 그건 내 마음으로 할 이야기들. 혹시 또 언젠가, 참을 수 없이 말하고 싶어지면 불쑥 꺼낼 수밖에 없을, 긴 이야기. 오늘은,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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