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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ul 14. 2022

옛날 옛날에

이옥선, 김하나, <빅토리 노트>

 

엄마가 쓴 육아 일기를 나 역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엄마의 육아 일기란 언제나 눈물 버튼이다. 엄마의 육아 일기는 채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끊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나의 육아 일기가 아니라 오빠의 육아 일기이고. 오빠의 갓난아기 시절을 읽으며 울만큼 내가 오빠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건 아니고, 그렇다면 내 육아 일기는 써주지 않아서 우는 거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뭐 아주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엄마가 왜 육아 일기를 쓰지 못했는지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졌다.


나와 오빠는 2년 터울, 정확히 말하면 1년 11개월 차이다. 내가 태어나고 갓 100일이 지났을 때 우리 집에는 큰 사고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첫 번째 사고는 아빠의 오토바이 사고였고 두 번째 사고는 오빠의 화상 사고였다. 오토바이 사고와 화상 사고의 예후는 그리 좋지 않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다친 두 사람을 간호하느라 엄마는 두 사람이 함께 입원해있던 그 병원에서 '살았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와 동네 사람들 손에서 자랐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덕분에 과장을 조금 보태서 동네에 나를 모르는 어르신들이 없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매해 설날에 감사한 어른들 댁에 새배하러 다녔다. 중학생 때부터는? 이제부터는 예쁜 짓이 아니라 어르신들께 세뱃돈 부담드리는 거라며 부모님이 그만 다니라고 하셨고.


나의 유아기에 대한 기억들은 덕분에 조각나 있다. 여러 목소리로 된 증언을 조합해야 한다. 배만 부르면 혼자서도 잘 놀던 나, 울지 않고 잘 웃던 나, 동네 사람들 누구의 손에 가도 스스럼없이 지내던 나, 계단에서 굴러 선인장밭에 쳐박혔던 나(선인장 화분도 아니고 선인장 밭을 왜. .), 그런데도 또 그 계단을 겁도 없이 오르내리던 나. 그리고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와 보면 어느새 쑥 자라있던 나, 그런 조각들을 모아 모아 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여기에 사진들이 더해지면 얼추 유년의 조각들이 자리를 찾았다. 늦었지만 내 돌을 기념하기 위해 색동저고리 한복과 조바위를 해 입혀 뒷동산에 데려가 사진을 찍던 날, 처음 자전거를 타던 날, 퇴원한 오빠와 손을 잡고 서서 웃는 나. 나는 그렇게 자랐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이사를 하던 중에 엄마의 육아 일기를 발견했었다. 잘 먹고 잘 자는 오빠의 얼굴을 묘사한 글, 아빠가 오시니 꼭 알아보듯 했다던 날, 설사해서 걱정하던 밤, 옹알이에 푹 빠진 엄마의 마음. 나는 이걸 왜 이제 보여주느냐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엄마는 잠시 슬퍼 보였다. 거기에 다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한 시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얼굴. 육아 일기 속 아기는 아무 죄가 없다. 육아 일기를 적어 내려가던 젊다 못해 어린 여자도 아무 잘못이 없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그냥 사랑스러워하기로 했다.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 작가가 딸의 탄생부터 다섯 살 때까지의 육아 일기를 묶어낸 책, <빅토리 노트>를 읽는다. 첫 애 때는 경황이 없어 적지 못했지만, 둘째라서 쓸 수 있게 되었다며 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기록을 남기는 사람. 할머니, 할아버지, 친인척들까지 모두가 아이가 별나다고, 게다가 못생겼다고 말할 때마다 '내 눈에는 한없이 귀엽고 예쁘다'고 적는 사람. 하지만 때로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되었는지, 엄마도 답답하고 힘든 날이 있다고 적는 사람. 나는 단숨에 책을 다 읽어버렸다. 오 년 치의 성장사를, 인생사를 흡수하듯 삼켰다.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누워서 똥만 싸던 아이가 어느새 말을 배워 "엄마! 씨발노마 하면 안 되제. 맞제?"하는 순간을, 엄마가 어제 분명 '내일' 사준다고 했는데, 하룻밤을 자고 나니 다시 오늘이 되어 내일을 기다려야 하는 우주의 신비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을, 노트 한 귀퉁이에 "그것은 좋은 일이었소. 좋은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오." 같은 말을 적어두는 순간을. 그리고 무엇보다 빈말은 잘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향해 "쾌활하고, 적극적이고, 고집쟁이고, 귀엽고, 착하고, 예쁘다."고 적는 순간들을. 나는 또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다 자란 딸이 이제는 나이 들어 늙어가는 엄마와 함께 자신의 육아 일기에 코멘트하는 부분에 이르면 가슴 뭉클한 마음이 되고 만다. 이 책은 육아 일기이면서 위로 일기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는 걸 깨우쳐 주는 선생님이고, 그 어린 시절을 건널 때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설명서다. 책 속에서는 스물 몇 살의 이옥선과 일흔이 넘은 이옥선이 만나고, 세 살의 김하나와 마흔 몇 살의 김하나가 만난다. 그런 장면은 어떤 훌륭한 철학서보다도 분명하게 삶이 무엇인지, 태어나고 자라 어른이 되고 늙어간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다.


게다가 딸 김하나의 말처럼 "이 일기는 놀라울 정도로 힘이 세"고, 그 힘은 아기 둘과 작은 집에 갇히다시피 한 채로 한 시절을 건너야 했던 한 여성의 담담한 자기 고백이기에 가능하다. 그녀는 혼자서는 도저히 외출할 길이 없어, 책을 집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다고. "아이들과 실랑이 속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3, 4, 5권을 읽고는 좀 나가떨어진 감이 있지만, 후에 박완서 씨 소설에 재미교포가 한국에서 책을 주문해서 열심히 읽는 이유가 정신병원에 상담료로 갖다 줄 돈을 책을 사는 데 썼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나는 정말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건 모두가 힘들어하는 일을 '나는 힘 안 들이고 한다'고 자랑하는 예쁜 육아 일기가 아니다. 사십 년 전에도 힘들었다고, 나도 괴롭게 그 시간을 건너왔다고,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해주는 친구의 목소리다. 마치 힘들게 오르는 등산길에서 숨이 깔딱깔딱하는데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누가 봐도 이 산을 오십 번은 더 올라봤을 것 같은 느낌의 아저씨가 "이제 다 와 갑니다. 정상까지 십오분!"이라고 경쾌하게 외쳐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덕분에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나는, 혼자 콧잔등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벌개지고 난리다. 여러모로 주책이다.




주책 그만 떨고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나는 쿨한 척 말했지만, 나의 유아기 중 많은 시간을 엄마와 떨어져 지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의 충격은 작지 않았다. 오랜 병원 생활 이후로 원래도 넉넉지 못했던 형편이 더 기울며 서로 고리눈을 뜨는 가족들 사이에서 숨이 막힐 때면 내 불행이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때때로 어린 나를 붙잡고 "네 엄마는 그저 환자밖에는 몰라서 병원에 가면 집을 돌볼 줄도 모른다."며 눈물을 훔쳤다. 윤리적 가치 판단은 권력과도 비슷한 속성이 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모종의 힘을 가진다. 그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직 그런 힘이 없다. 이야기를 듣고 잘잘못을 가려 그 이야기에 담긴 왜곡된 감정들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게 할 줄을 모른다. 아이들은 그 감정을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 말은 들은 날은 엄마도 할머니도 미워할 수 없는 내 마음이 갈팡질팡 괴로웠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거치면서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안 드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날이면 못난 마음이 곧장 나를 한 살 때의 나로, 두 살 때의 나로 데려가곤 했다. 그때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별로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나는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야, 내심 불안해하는 마음마저 생겼다.


전문가들은 세 살 이전의 양육자와의 관계는 이후 인생 전반의 대인 관계나 감정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그 말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의 세 살 시절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나는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며 나를 검열했었다. 내가 문제에 직면해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문제가 나타날까봐 전전긍긍했다. 문제가 나타나기도 전에 반드시 문제를 찾아내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나를 감시했다. 그럴 때 나는 이중적인 존재가 된다.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초라한 나이면서, 동시에 나에게만은 지독하고 악랄한 감시관이 되는 것이다.


그건 참 힘든 일이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내가 나를 문제가 있다고 보는 한 나는 반드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에 비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내 인생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을까봐 노심초사하는 동안 나의 청소년기도, 이십 대도 지났다. '나에게 문제가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그다음으로 어려웠다. 나의 이십 대는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배우는 시기였다. 새로운 내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랐다. 그리고 그 모두는 나였다.




나는 서서히 저런 똑똑한 말들을 몰랐다면 나는 나를 '문제'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게 됐다. 과연 나의 문제는 그것을 '문제'라고 규정하는 말이 없는 곳에서도 문제일까. 나의 문제는 존재하는 것일까, 발명되는 것일까. 이제는 세 살 이전에 양육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은 양육자들에게 책임감과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 살 이후의 자기 삶을 통째로 부정하거나 자기 검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리라.


우리는 의도하지 않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마치 저 전문가의 말처럼 말이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끝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부모라도 자식에게 '완벽한' 부모가 될 수는 없다. 훌륭한 부모도 자식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운이 안 좋아 상처가 많은 이는 좀 더 노력해야 할 테고, 운이 좋아 상처가 적은 이는 좀 덜 노력할 뿐이다. 삶이 저울처럼 공평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는 대신 나는 내가 나에게 좀 더 공평해지기로 했다.


세 살 때의 내가 엄마가 없어서 외로웠는지, 할머니나 다른 여러 동네 어른들의 사랑은 어딘가 좀 부족하고 불편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 있어도 끝내 부모가 자주 곁에 없었다는 게 결핍이 되었는지 나는 영원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때의 나를 나는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함부로 그때의 나를 불행했다 단정하거나 행복하라 명령하지 않기로. 무엇보다 이건 나와의 약속으로 충분한 일이라 좋다. 누구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판단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아마도 그때의 나 역시 어떤 날은 좀 즐겁고 어떤 날은 좀 슬펐겠지. 어떤 날은 허전했고 어떤 날은 채워졌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작은 아이를 오래 바라보고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뿐. 그 아이를 탓하지 않고 지금의 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뿐. 그 모든 시간을 건너 끝내 어른이 된 나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실은 나에게도 '빅토리 노트', 그러니까 <육아 일기> 있다. 그것은 병원에서   만에 집에 들른 엄마가 자는  머리맡에서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흘린 눈물과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다니는 와중에도 나를 귀여워하던 오빠의 눈빛과  배가 딴딴할 때까지 우유를 주었다던 할머니의 손길과 엄마 없이도 씩씩하더니 언제 저렇게 컸네, 하며 눈물을 훔치는 동네 어른들의 얼굴 속에 있다.  부지런한 마음들은  어린 시절의  페이지라도  채워질까 싶어 빠짐없이 나에게 닿았고, 나는  마음들을 다시  마음속 페이지에 꼼꼼히 채운다. 사진  파란  운동화를 신고 핑크색 타이즈와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죄가 없다. 우리 모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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