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 아야
이 책을 고른 것은 물론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 덕분이지만,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책에 끌렸다. 알고리즘에 자주 보이길래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영화를 보았고, 혹시? 하며 찾아보니 영화 속 주인공이 잠자리에 들기 전 며칠이고 읽던 그 책이었다는 이야기.
제목과 간략한 소개를 보니 고다 아야라는 사람이 나무를 퍽 좋아해서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무 좋아하는 이야기를 남긴 모양인데. 나무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참 부러우면서도 궁금한 점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떤 나무를 썼으려나, 나무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았으려나, 내가 아는 나무가 있을까, 그녀도 나와 비슷한 눈으로 나무를 보았을까, 같은 세부적인 궁금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는 일’은 어떤 것인가, 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따라왔다.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는 일을 상상해 본다. 그것은 꽤 어려운 일일 것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글로 표현하는 순간 대상이 가진 진짜의 뭔가가 퇴색해 버리는 느낌이 들 테니까. 내가 그것에 대해 쓰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알던 상태와 달라지고 만다는 걸 인정해야 할 테지. 그리고 그것이 나의 실력 부족이라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할거고. 그렇게 좋아한다는 나의 감정이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걸 목격하고. 아,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별로다.
이번에는 싫어하는 것에 관해서 쓰는 일을 상상한다. 그건 기가 막히게 쉽다. 싫어하는 것에 관해서 쓸 때는 쓰는 동안 그 싫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어려움이 없다. 싫어하는 것을 망가뜨리거나 해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싫어하는 것에 관해서 쓰는 일은 아주 쉽지만 잔인한 일이었구나.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 쓰는 일은 아주 어렵지만 다정한 일이었구나.
그녀는 나무를 좋아한다. 나이든 몸을 이끌고 산을 타고 먼 길을 달릴 만큼. 그렇게 고된 시간을 건너 좋아하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실망감, 내가 좋아하는 그것이 실은 전혀 다른 대상처럼 보일 때의 기막힘, 내가 그것을 좋아하고, 안다고 믿었던 어떤 지점들이 여지없이 부서지는 황망함까지. 고다 아야의 책은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는 일이 주는 고단함을 보여준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좋아하는 대상을 글로 옮겨 적으면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의 목록을 보는 것 같다. 좋았다가 슬펐다가 실망했다가 두려웠다가 슬쩍 미워지려고 하다 끝내 다시 좋아하고 마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안간힘을 내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려는 시도.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과정을 보며 나는 또다시 ‘좋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걸까. 그건 대체 무슨 일일까.
가끔 사랑보다는 좋아한다는 감정이 더 와 닿을 때가 있다. 사랑은 너무 크고, 그래서 사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는 감각일 때조차 있는데. 좋아한다는 건 그렇지 않다. 좋아한다는 건 담백하다. 완전무결함을 바라지 않는, 인간인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 말이 내 작은 세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아서.
그런데 고다 아야의 책을 읽으며 나는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사랑도 좋아함도 결국 계속 시도하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기 위해, 사랑과 좋아함을 계속 시도하는 것.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는 발걸음, 팔을 뻗어 감싸안아 보려는 몸짓, 실망한 후에도 여전히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어떤 지점을 부정하지 않는 수용. 그렇게 사랑이나 좋아함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 노력이란 싫어하는 일에 쓰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에 쓰는 것. 싫어하기 위해서는 애쓸 필요가 없었지만, 좋아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애썼던 기억들.
“생물은 인간도 새도 짐승도 모두 그 상처를 감싸안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무도 당연히 그렇게 한다. 감싸안고, 보호해주고, 변형을 보완해주고, 되도록 상처 없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줄기를 원통형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굽은 나무가 비전문가의 눈에 얼핏 매끈한 피부를 보여주고 우수한 목재와 비교해 눈에 띄는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유는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