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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나와 우는 우는>

하은빈

by 이상희


고백하건대 장애를 가지게 된 남편(의 몸)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나의 바닥을 매일 매 순간 경험하게 했다. 나의 인내심과 이해심과 상상력과 사고력은 매번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달라진 그의 몸 앞에서 무식하고 무력했다. 더구나 그 무식과 무력은 남편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몸’이 살아갈 삶을 허겁지겁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이 낯설지 않았다.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 하염없이 헤매는 일이, 그 앞에서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버스를 타거나 내릴 때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기다리고 기다려도 잡힐 줄 모르는 장애인 콜택시를 끝도 없이 기다리는 일이, 어디를 가기 전에 계단이 가파르거나 많지는 않은지 살피는 일이. 그리고 그런 이유로 끝내 목적지를 변경하고 마는 일이.


그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느껴진 건 그런 순간마다 여러 갈래로 분열하는 그 마음이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내 나를 갈라지게 만드는 순간들. 나의 최선이 나에게만은 최선이 아닌 모든 순간. 나는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처절했으나 분열되지는 않았었다. 그를 살리려는 노력으로 굳건하게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퇴원해 온 후로 나는 처참하게 분열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나로 지낼 수 없었다. 그녀가 건너온 분열과 파열의 시간이 나의 시간 위로 슬며시 겹쳤다.


남편이 나보다 먼저 잠든 드문 밤이면, 나는 나에게 묻곤 했었다. 괜찮냐고. 정말 괜찮냐고. 나는 두려웠다. 내가 어떤 말을 할지 몰라서. 정말 모르겠어서. 우리 앞에 닥친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매일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니 괜찮냐 묻는 말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어본 적은 없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감히 그녀가 건너온 시간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어딘가 조금 닮은 마음이 여기에도 있노라고 말하려는 것뿐이다. 그렇게 나는 허락도 없이 그녀 곁에 오래 앉아 있다.


나는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듯 살고 싶다가도, 그게 어떻게 가능해 이토록 모든 것이 달라졌는데, 하고 바른말을 하는 내 마음에 매번 진다. 이토록 모든 것이 달라졌어도 기어이 어떤 것만은 절대 바뀌지 않기를 바라면 안 되는 거냐고 떼를 쓰면, 마음은 말하지. 왜 안 되겠어. 다만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아주 어려울 뿐이지.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예쁘다, 잘 어울리네’라고 말해주길 기대하며 그의 앞에 서는 일이, 우리가 각자의 볼일을 보고 낯선 어딘가에서 시간을 정해 만나는 일이, 남편이 나에게 ‘내가 데리러 갈게’라는 말을 건네는 일이. 그렇게 너무 사소해서 ‘한다’는 감각조차 없던 어떤 순간들을 모두 잃어버렸다는걸. 나는 나에게 여전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과 우리 사이에 ‘장애’가 들어서고, 마치 그것이 나와 남편보다도 더 크고 중요한 일이라는 듯 자신의 존재감을 맘껏 과시할 때. 그래서 남편과 내가 거의 매번 그 녀석에게 모든 걸 항복하고 무릎을 꿇다시피 했을 때.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빌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질리도록 깨닫고도 다 못 깨달은 것 같을 때. 그래서 실은 우리가 여기 있고, 살아 있고, 서로의 곁에 있다는 것조차도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사랑도 희망도 기쁨이나 웃음도 미웠다. 그것들이 대체 내게 무얼 해주었느냐고 따졌다.


그리고 지금, 남편과 내가 아주 조금 무릎을 세우고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작은 걸음을 걸어보려 한다고 해도. 우리 사이에 또다시 ‘장애’가 고개를 쳐들 수 있음을 안다. 온몸으로 매 순간 느낀다. 그저 애써보는 것이다. 장애보다는, 그와 나의 살아있음을 먼저, 그와 내가 여기 있음을 먼저, 우리가 서로의 곁에 있음을 먼저,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장애는 그다음이야. 나는 장애가 낡아빠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더는 우리가 그 앞에서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러지 못했던 수많은 날과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순간들을 미리 용서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은빈과 우의 잘못이 아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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