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보다 잠들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오늘 드디어 자지 않고 다 보았다.
사실 이번에도 초반 10~20분 가량은 어쩐지 나른해지는 느낌이어서 ‘엇, 위험해’ 했는데 그 부분이 지나니 이야기가 다가오면서 즐겁게 보았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서사가 슬프고 아프게, 하지만 또렷하고 강렬하게 자리한다. 멀어져버린 후 수년 만에 그림으로 재회한 엘로이즈는 손에 마리안느가 선물한 책, 28페이지 사이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지. 통념을 넘어서고, 극복하고, 그래서 ‘무언가가 되어라!’라는 메시지는 사실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그럴 때는 그 ‘무언가’조차도 그걸 이루려는 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도 많고. 그러니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결말이 실은 어떤 것보다도 ‘이루어짐’에 가까웠다. 둘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서로를 잊지 않은 채로.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이고, 만약 그것이 아프고 아쉽다면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 손에 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두 주인공의 이야기보다도 나를 더 사로잡은 것은 엘로이즈의 집에서 일하는 소피와 엘로이즈, 마리안느 세 사람의 우정이었다. 소피의 곤란한 상황을 알게 된 후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정말이지 어떤 의문이나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다정하게 그녀를 보살피는데, 그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어떤 우정이나 연대는 긴 시간이나 자세한 설명 없이도 가능하니까. 같은 고통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데서 우리는 이미 함께인 것. 그것이 슬프고도 애틋했다.
장면 장면이 한 폭의 유화처럼 고왔고, 엘로이즈를 연기한 아델 에넬은 웃는 얼굴과 무표정한 얼굴의 선명한 대비가 강렬했다.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 마리안느 역의 노에미 메를랑은 프랑스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같다는 느낌. 중성적이지만 섬세한 이목구비(특히 눈썹과 코의 직선적인 모양새)가 아름다웠다.
#타오르는여인의초상